142호 > 특집
아픔은 이곳에도 있다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을 찾다
등록일 2017.04.16 19:48l최종 업데이트 2017.04.16 22:08l 조시현 기자(whtlgus090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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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초, <연합뉴스>를 비롯해 일부 언론은 추모관에 새겨진 리본의 문양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가 교묘하게 편집해 유포한 문양과 같아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일반인 대책위)’ 김영주 부위원장은 “그런 일들로만 언론에 오르내린다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일단 속상하고 허망하다”라고 쓸쓸한 어조로 답했다. 김 부위원장은 “2주기, 3주기가 되거나 무슨 논란이 있어야만 언론이 찾아온다”라며 언론이 일반인 유가족들의 문제를 산발적으로만 다루고 있다고 토로했다. 

찾아 헤매야만 도착할 수 있는 추모관

  그 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일반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1호선을 타고 부평삼거리역 1번 출구로 나와 5분가량 걸으면 인천가족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인천가족공원은 인천시에서 조성한 공동묘역이다. 과거의 이름은 부평공동묘지였지만 인천시에서는 주변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산책로와 생태하천 등을 정비해 묘지공원으로 재조성했다. 3월 초, 아직은 쌀쌀한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공원을 걷는 시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정비사업 덕택인지 다행히 시민들이 인천가족공원이라는 공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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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의 안내판. 세월호 추모관의 존재는 나와있지 않다.


  공원입구에서 1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추모관은 고요했다. 조심스럽게 위쪽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들의 위패가 담긴 방이 보였다. 세월호 전체 희생자 304명(사망자 295명, 실종자 9명) 중 일반인 희생자는 총 45명인데 추모관에는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일반인 미수습자 3명, 단원고등학교(단원고) 학생과 함께 안치된 고인 1명을 제외한 41명의 봉안함이 안치되어 있다. 봉안함이 없는 4명의 희생자를 위해 추모관에서 대신 영정과 위패를 함께 마련했다. 

  추모관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 왼쪽으로 돌면 바로 보이는 것은 실제 비율에 맞추어 축소한 세월호 모형을 양 손이 떠받들고 있는 동상이다. 벽에는 작은 스크린들이 연달아 배치돼 참사 당일의 세월호 갑판, 복도, 선실 등의 CCTV영상과 당시의 언론보도영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또 참사의 과정을 재현하는 샌드아트 영상과 희생자들의 유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고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추모관이 마련됐지만 이곳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사를 통해 추모관이 인천가족공원 내부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공원입구의 안내판에서는 추모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기자조차도 방문객이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블로그 글의 약도를 본 후에야 추모관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공원입구에서부터 추모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주변을 둘러봤지만 추모관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오로지 갈림길에서 왼쪽을 가리키는 표지판 하나뿐이었다. 공원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추모관의 존재를 알기란 어려워보였다.

  추모관 2층에 자리 잡은 일반인 대책위 사무실에서 김영주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 추모관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부위원장은 “정부에서 예산을 줘야 포스터라도 붙일 텐데 그런 용도로 편성된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아마 이 근처에 사시는 분들도 많이들 모르실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추모관이 어떤 상황에 처했기에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지 현주소를 살펴봤다.
 
“일반인 희생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알려야 했다” 

  일반인 대책위는 말 그대로 일반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모인 단체다. 일반인 희생자 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이중고에 시달렸다. 정부의 불통과 무능한 대처에 분노해야 했던 것은 물론, 상대적인 무관심과 차별 대우까지 겪어야 했다. 언론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단원고등학교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일반인 희생자에 대한 보도는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생 전원 구조’라는 참사 당일의 오보가 대표적이다. 당시의 오보는 정부와 언론의 잘못된 대응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오보에서조차 일반인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김영주 부위원장은 “지금은 아니지만, 참사 초기에는 세월호에 일반인이 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적잖았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정부가 참사 직후 안산에 설치한 정부합동분향소에 일반인 희생자들의 위패가 존재하지 않았고 유족들이 정부 측에 거세게 항의하고 나서야 위패가 배치됐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추모공원 조성 사업에서는 추모공원에 안치될 희생자가 단원고의 학생과 교사로 한정되기도 했다. 전태호 일반인 대책위 위원장은 “일반인들도 똑같은 희생자인데 정부와 안산시는 일반인 희생자들만을 제외시켰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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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내의 세월호 조형물 


  이와 같은 차별에 항의하던 유족들은 결국 일반인 대책위를 꾸리고 일반인 희생자들을 안치하는 별도의 추모관 건립 추진에 나섰다. 처음부터 추모관을 분리해서 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일어났던 차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또 차별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에게 죄를 짓게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추모관을 건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모관은 당초 2015년 4월내로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예산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5월 말에야 국비 30억 원 가량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인천시가 추모관 건립 계획을 세우고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추모관의 건립 장소 선정 역시 미진함이 있었다. 당초 대책위는 세월호가 출발한 곳이 인천이기에 추모관을 인천에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가 출발했던 장소인 연안부두가 가장 먼저 후보지에 올랐지만, 납골당과 같은 ‘혐오시설’이 설치되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면서 추모관은 연안부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내륙의 인천가족공원에 마련됐다. 전태호 위원장은 “당초 연안부두 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장소를 두고 인천시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생각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하면서 “9.11 테러 추모 시설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기본적인 예산지원마저 부족한 추모관의 현실

  지난 2016년 4월 16일에는 참사 2주기를 맞아 일반인 대책위의 주관으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이 추모관 앞에서 열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완공된 추모관의 개관식이기도 했다. 유족들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 지역 인사들, 정부 측의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등 총 3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추모관은 개관한 바로 다음 날부터 문을 닫아야 했다. 추모관 운영을 위한 정부 예산이 지급되지 않아 관리인력을 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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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내에 보관된 희생자들의 유품 



  전태호 위원장은 “유족들은 처음 추모관 공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운영 예산이 편성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정부 부처 인사를 만날 때마다 늘 운영비를 완공 전에 책정해달라고 요청했고 공무원들은 정부에서 추모관을 만들었는데 예산이 안 내려오겠냐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완공 이후 유족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예산의 공백은 5개월간 지속됐고 그 동안 국민안전처와 해양수산부는 추모관 운영비를 편성할 책임을 서로에게 미뤘다. 

  관계 부처들의 이런 책임회피에 유족들은 또다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닫혀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유족들은 인천시교육청 앞 YWCA 건물에 있던 일반인 대책위 사무실을 추모관 2층으로 옮겼다. 추모관이 계속 닫혀 있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일반인 대책위 간부들이 번갈아가며 추모관을 지켰지만 최소한의 인력도 예산도 없는 탓에 추모관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었다. 부처 간의 떠넘기기 끝에 해양수산부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추모관은 관리인력을 고용하고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추모관은 해가 바뀌면서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일반인 대책위는 2017년도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예산 편성을 요청했지만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 일반인 대책위의 설명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으니 3월까지만 추모관을 맡아달라고 인천시에 부탁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인천시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결국 해양수산부가 2월에 다시 예산을 편성해 운영이 재개되기 전까지 추모관은 또 한 달이 넘도록 운영되지 못했다. 게다가 2018년에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태호 위원장은 “정부가 만들어놓고도 이토록 위태롭게 운영되는 것이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다”라며 “부족한 인력으로나마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우선 추모관의 안정적인 운영이 일차 목표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인 대책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예산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면서 추모관을 관리하고 방문객들을 안내해야 하는 직원들의 고용상태도 불안정했다. 단순 기간제 직원으로 고용된 직원들은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단기간의 고용과 해고에 시달렸다. 현재는 추모관 운영을 인천시설관리공단에서 임시로 맡고 있는 상황이다. 추후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4.16 재단이 설립돼 추모관의 운영을 맡게 되면, 정규직 직원을 고용할 수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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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이 폐쇄되어 있던 2017년 1월 당시의 모습 ⓒ인천일보



  기본적인 운영 예산조차 편성이 지연되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추모관을 알리기 위한 예산편성 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영주 부위원장은 “홍보예산이 없어 추모관의 존재가 알려지지 못했고, 이에 사람들의 방문이 적어지자 정부에서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상황을 근거로 삼아 예산을 지급하지 않아 악순환이 지속됐다“라고 지적했다. 앞장서 추모관을 알려야 할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작년에 비해 올해는 추모관이 일찍 열려 훨씬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김영주 부위원장은 전했다.

  4월 16일 오전 10시, 추모관 앞에서는 1년 만에 다시 추모행사가 열린다. 일반인 대책위는 추모관의 운영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고 나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사회의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무엇보다도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와주셨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추모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