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 특집
'불온한' 예술인들의 온당한 저항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응하는 예술인들을 조명하다
등록일 2017.05.02 15:08l최종 업데이트 2017.05.15 14:48l 정수경 기자(coramdeo64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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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4일 전국 288개 문화예술단체 소속 예술인 7,449명이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수많은 시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촛불을 수놓은 결과, 지난 3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선고했다. 이것은 큰 수확인 동시에 출발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상규명, 인적 쇄신, 대책 수립 등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예술인들은 크고 작은 단위로 연대하며 차근차근 이를 풀어나가고 있다.

 

광화문광장, 예술의 공공성을 회복하다

 

  지난해 115일 광화문광장에 30여 개 텐트로 이뤄진 광화문 캠핑촌(캠핑촌)’이 결성됐다. 정부로부터 배제된 예술을 자유롭게 펼치고자 각지에서 무용, 마임, 연극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지난 110,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 사태에 항의하고 예술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캠핑촌에 광작극장 블랙텐트(블랙텐트)’를 세웠다. 블랙텐트 홍예원 운영위원은 블랙텐트 설치는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인력과 후원금을 구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많은 연극인이 각자 물품을 구비해오고 조금씩 돈을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3일만에 극장이 세워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해고노동자들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홍 위원은 연극인은 수십 년간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해왔는데, 이번엔 노동자들이 와줬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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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세워진 블랙텐트의 모습 ⓒ김명주 기자



  블랙텐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일본군 위안부’, 해고노동자 등 국공립극장이 외면했던 목소리에 주목했다. 극단 돌파구의 연극 노란봉투는 파업 이후 거액의 손해배상금으로 가압류 당해야했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풀어냈고,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의 넋을 달래는 굿 형식의 연극 씻금을 선보였다. 지난 116일 블랙텐트의 포문을 연 극단 고래의 연극 빨간시위안부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관객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공연 1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모여 7분 만에 130장의 티켓이 팔렸고, 이후에도 관객들은 계속 줄을 서서 기다렸다. 홍예원 위원은 많은 사람들이 위태로운 극장에 힘을 실어주러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블랙텐트는 무용, 마임, 낭독, 굿 등으로도 분야를 확장해나갔다. 사회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텐트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함께 고민했고, 텐트 안에서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배제되지 않았다. 현재 블랙텐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해체한 상태다. 현재 블랙텐트 주최 측은 지난해 12월부터 블랙텐트를 운영하며 생성된 기록물을 수집 중이며, 연극계 적폐 청산을 논의하는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미술계에서도 세대를 넘나드는 작가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지난해 1230, ‘궁핍현대미술광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상실된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캠핑촌에 세워졌다. 신유아 궁핍현대미술광장장은 기성 미술관의 규격에 맞지 않는 미술인들도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지난 2월 열린 광장 목판화전은 세화(한 해 동안 행운을 기원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를 전시해 세월호 인양을 기원하는 모든 시민에게 희망과 격려를 전했다. 이후 미술전 ‘A small movement is a great miracle'은 미술로써 사회 움직임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고, ‘촛불 역사전은 광화문광장에서 일어난 촛불혁명의 생생한 현장을 그려냈다.


  관객과 작가도 더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다. 운영시간이 기성 미술관보다 길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었고, 궁핍현대미술광장이 운영하는 SNS를 통해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신 위원은 전시가 반드시 한 공간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라며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형 전시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광화문 미술행동에서는 토요일마다 총 15차례의 현장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차벽공략 프로젝트에서는 시민들의 그림과 메모, 미술작가의 작품들로 경찰버스 차벽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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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현대미술관의 모습 ⓒ홍인기 사진기자


  검열에 대항하는 예술인들의 1인 시위도 이어졌다. 정영두 안무가가 지난해 가을 런던에 있는 주영한국문화원 앞에서 국립국악원 검열사태를 규탄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악원은 공연 예정이던 소월산천에서 특정 연출가를 배제하도록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연극인들은 광화문광장에 나와 화요일마다 1인 시위를 벌였고, 김윤진 안무가를 비롯한 무용인들도 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무용인 1인 시위는 30여 명이 참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계속됐다.


  김윤진 안무가는 검열 게이트가 밝혀지기 전에도 정부가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리라 추측했다라며 이 자체로도 사전검열이 작동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실제 블랙리스트 문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땐 모든 감정이 서로 연결된 공동체 속에서 뭔가에 이끌리듯 광장에 서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김 씨는 지난해 113눈먼 선녀 퍼포먼스를 광장에서 선보였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는 해당 퍼포먼스는 최순실 씨의 비밀 사조직으로 지목된 팔선녀를 풍자하고, ‘현실에 눈을 멀게 하는정권을 비판하고자 기획됐다. 관객도 자유롭게 눈을 가리고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김 씨는 “‘눈을 가리자 다른 이들의 고통이 생생히 다가오는 듯했다라고 소감을 밝힌 관객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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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안무가가 광화문광장에서 '눈먼 선녀'로 선 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op Con

 

 

예술인 각자의 자리에서 낸 하나의 목소리

 

  문화예술 각계는 광장 밖에서도 대응에 관한 논의를 활발히 이어나갔다. 지난 318일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상생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블랙리스트 사태를 분석하고 문화예술의 민주화를 주창했다. 특히 김재엽 연출가는 블랙리스트와 검열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헌법유린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문체부의 사과 및 대응은 이를 문체부와 문화예술인 간 문제로만 축소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발제자로 나선 <한겨레> 손준현 기자는 기존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무용계에서 250여 명의 무용인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이라며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인 스스로 판도를 바꾸는 예술혁명이 일어났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영두 안무가는 무용계는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뤄 저항이나 문제제기가 어렵다라며 입시비리 등 무용계 내부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성혜 무용평론가는 지원 사업이 줄어드는 등 변화가 있었음에도 무용계에서 인식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다수의 무용인들도 기득권에 야합하는 인사가 심사관 자리에 앉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연극계에서도 지난 323일 연극인연석회의를 열어 블랙리스트 사태의 후속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한 100여 명의 연극인은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의견을 모아 새 정권에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연극계에 대한 자성도 이뤄졌다. 장성희 평론가는 이 자리에서 정부 검열을 묵인, 협조한 내부 부역자들을 규탄했다. 정대경 한국연극협회(한연) 이사장이 박근혜 정권 당시 문화예술위원회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며 검열행위를 방조했다는 혐의도 제기됐다. 이날 연극인들은 이에 대한 해명 없이 한연 측에 의해 자의적으로 소집된 블랙리스트 비상대책위원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범연극인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기로 결정했다. 사회를 맡은 이해성 연출가는 연극인들 간 연대를 통해 동력을 키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무용계와 연극계는 앞으로도 토론회와 회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편 대선후보들이 앞다투어 문화예술 관련 공약을 제시하는 가운데,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이 모여 정책제안을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지난 47일 문화연대 포함 20여 개 문화예술단체는 ‘2017년 대통령선거 문화정책 공동제안을 위한 문화예술인 공개 포럼을 주최해 새로운 정권에서의 대응책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는 문체부 산하기관 소속 연구원, 공연예술노동조합 조합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원, 정당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국장은 문화예술인이 직접 문화예술행정의 혁신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후보들에게 제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연극계에서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기록물로 남기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박영수 특검과 검찰이 문체부 산하 모든 기관을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지난해 1226일 검열백서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검열백서준비위원회는 직접 블랙리스트 사태를 조사하고 기록해 2018년에 해당 내용을 책으로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재엽 검열백서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은 블랙리스트 관련 공무수행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기 위해선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라며 기록을 통해 이후의 검열을 방지하고 훗날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검열백서준비위원회 홍예원 운영위원 역시 증거가 유실되거나 당사자들의 기억이 왜곡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진실을 밝히고 기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328일 검열백서준비위원회는 첫 포럼을 열어 진전 상황을 공유했다. 이날 주최 측은 그동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예술검열 관련 주요 공공기관 및 책임자에 대한 공식 질문들’ 17개를 공개했다. 이 질문들은 주로 블랙리스트 배후세력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밝혀내고, 각각의 검열사태 인지 여부와 관여 정도 및 책임 범위 등을 물었다. 검열백서준비위원회는 해당 질문을 관련 기관에 발송해 공식 해명과 자료 공개를 요청한 후, 돌아오는 답변을 검열백서에 게재할 예정이다. 6월로 계획된 다음 포럼에선 박근혜 정권의 화이트리스트(친정부적 성향 문화예술인 분류 및 지원배정)’와 관련된 의혹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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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백서 3월 포럼에서 발제자들과 참석자들이 열띤 논의를 나누고 있다.


  문화융성을 표방한 박근혜 정권이 도리어 문화말살을 자행했다며 수많은 예술인이 분노하고 일어났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처음 폭로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예술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광장에 나와 공공적인 예술을 논했고, 여러 차례의 토론을 통해 예술계 내부를 성찰했다. 현재는 예술인 당사자가 정확하고 엄밀하게 블랙리스트 사태를 기록함으로써 대항하고자 한다. 김윤진 안무가는 예술계의 활동들과 관련해 지금 이어지고 있는 행동 자체가 변화다라고 말했다. 한 차례 촛불혁명을 이룩한 시민과 예술인은 현재 두 번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블랙리스트, 예술에 가한 검은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