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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는 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2018.10.26 17:21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1l 이상호 기자(seoroleee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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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얼마 전에 친구가 느닷없이 단톡방에 물었다. 대학생 5학년보다는 새내기에게 적절한 질문이었다. 칸막이 자리에서 조그만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해가 져있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고개를 넘어 도착한 자취방에서는 적적한 게 싫어서 반사적으로 음악을 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냐니. 당장 내일 점심으로 뭘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다 됐고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자판을 치던 중에 “나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라는 친구의 답변이 나왔다.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호와 함께 나갈 다큐멘터리는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서울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비지모)’ 회원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비건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소위 ‘빻은’ 질문에 대해 터놓고 반박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질문들 중에는 ‘너 하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라는 비웃음 섞인 말이 있었다. 엉망진창인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에게 흔히 던져지는 모욕이다. 이를 본 인터뷰이 중 한 명은 “왜 달라지는 게 없냐”며 되물었다. 예컨대 내가 오늘 치킨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한 마리의 닭을 살릴 수 있고 이것이 쌓이면 수백, 수천 마리의 비인간 생명체를 살리는 일인데 도대체 뭐가 달라지지 않느냐고 그는 힘줘 말했다.


  나의 몸을 거쳐가는 사물의 발자취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쓰레기통 속으로 휴지를 밀어 넣으면 그 후의 여정에는 관심이 없듯이, 우리는 쉽게 습득하고 소비하고 유기한다. 심지어 그들 중 다수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희생시킴으로써 얻어진다.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도,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고 입는 옷에도 이름 모를 생명체의 고통이 묻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깨끗하게 정돈된 공산품을 접하며 애써 이를 모른 척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본 사람은 결코 우리의 생활이 무해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해마지않는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의 건너편에조차,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피와 눈물이 흥건하다. 내 앞에 놓인 세 대의 카메라를 경계로, 알지 못하는 동물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며칠 후, 비지모가 올린 카드뉴스를 봤다. 먹는 비거니즘 뿐만 아니라 ‘입는’ 비거니즘도 가능하다며 롱패딩을 고르고 있을 육식주의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흠집을 내려는 움직임은 급진적이지도 실현불가능하지도 않다. 단지 우리가 게으르고 무뚝뚝해서 곁눈질하며 지나쳤을 뿐이다. 누군가 고장 난 세상에 작은 나사 하나라도 끼우려 든다면, 이를 통해 또 다른 친구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