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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비건 페스티벌
등록일 2019.06.11 19:20l최종 업데이트 2019.06.11 19:26l 김가영 PD(samun1592@snu.ac.kr), 김혜지 PD(khg6642561@snu.ac.kr), 여동준 기자(yeod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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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8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6번째 ‘비건 페스티벌’이 열렸다. ‘모두의 비건, 모두의 지구’를 주제로 개최된 페스티벌에는 지구와 동물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70여 개의 부스는 동물에서 나온 재료를 전혀 쓰지 않는 비건 음식을 만들고 비건 패션과 생활용품을 판매했다. 공연과 강연 프로그램도 축제의 시간을 다채롭게 채웠다.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한데 어우러져 즐기는 ‘모두를 위한’ 축제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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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넘치는 비건 페스티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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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페스티벌은 올해로 6번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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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의 행동 수칙을 보여주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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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건 개념을 소개하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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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건 페스티벌에선 다양한 비건 음식이 판매됐다. 비건 라멘은 채소 등 비건 재료를 이용해 국물을 우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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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 함바그 플레이트는 현미, 수수, 채소 등이 주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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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트초코 푸딩은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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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로푸드’를 판매하는 김연주 씨

 
  낯선 비건 문화, 그보다 낯선 비건 로푸드(raw food)를 만드는 이가 있다. 비건 페스티벌에서 마카롱, 브라우니, 에너지 바와 같은 디저트를 판매하는 김연주 씨다. 비건 로푸드는 비건 음식 중 불을 쓰지 않고 만든 음식을 말한다. 연주 씨는 불을 쓰지 않는 로푸드에 먼저 관심을 가진 후 채식을 시작했다. 디저트를 좋아했던 연주 씨는 디저트 위주의 비건 로푸드를 연구하고 평상시엔 요리 교실을 운영한다. 그는 비건 로푸드를 비건 페스티벌 내에서도 “오는 사람만 계속 오는 매니아의” 음식 문화로 설명했다.
 
  비건 로푸드를 처음 접한 기자를 위해 김연주 씨는 마카롱 조리법을 들려줬다. 계란 대신 재료를 접착하는 역할을 하는 반건식 곶감을 넣고 반죽을 굳혀 마카롱 꼬끄(coque)의 바삭바삭한 식감을 살린다. 필링(filling)은 설탕 없이 코코넛의 과육을 가공해 채운다. 연주 씨는 어려워 보이지만 로푸드를 만들 때 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조리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연주 씨는 ‘비건 페스티벌’ 이전에 열렸던 ‘비건 플리마켓’부터 꾸준히 부스를 열어왔다. 시장에서 로푸드의 입지가 좁음에도 매년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주최 측과의 원활한 논의 덕분이다. 올해 비건 페스티벌에서 달라진 점을 묻자, 연주 씨는 이전에는 부스를 찾는 손님의 대다수가 외국인이었다면 올해는 한국인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답했다. "채식 문화가 한국에서도 많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는 연주 씨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만 오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번 페스티벌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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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을 올린 브라우니. 석류, 카카오, 코코넛 등이 재료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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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로푸드가 진열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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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페스티벌에 참여한 통지, 호연, 유쾌가히, 찌루(별칭) 씨



  페스티벌이 무르익자 사람들은 계단과 잔디에 자리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서울대저널>은 페스티벌에 참여한 네 친구 통지, 호연, 유쾌가히, 찌루(별칭) 씨를 만났다. 이들은 비건 캠프, 동물권 시위, SNS에서 왕래하며 비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통지 씨는 “비건은 워낙 소수라 다 알게 된다”며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별칭을 부르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비건 페스티벌에서 즐거웠던 점을 묻자 유쾌가히 씨는 “푸딩은 우유가 들어가서 (비건 푸딩을) 찾기가 어렵지만 여기선 먹을 수 있다”며 다양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호연 씨는 비건 핫도그를 예로 들며 비건 소시지를 사서 요리해 먹을 순 있지만 페스티벌서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고 말했다. 비건 식당이 아닌 경우 일일이 재료를 감별해야 하거나 집에서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하는 비건에게 비건 페스티벌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여러 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만큼 이들은 비건 페스티벌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호연 씨는 과거 비건 페스티벌에서 콩고기를 먹었는데 맛이 없어 놀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현재는 “음식의 맛도 훨씬 좋고 비건 식당을 운영하는 판매자도 많아져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장식 축산을 적나라하게 다룬 영상을 보고 비건을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기 채식이나 페스코(우유, 달걀, 어류를 허용하는 채식)로 시작했지만 이들은 점차 종을 구별해 먹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이후 동물을 음식이 아닌 생명으로 생각하고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생각의 결실로 지금은 모두 비건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비건 음식을 먹는 것뿐 아니라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용품을 사용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텀블러나 재활용 그릇을 쓴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동물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기에 환경을 보호하는 움직임은 결국 동물 보호와 상통한다. 이들은 “이미 집에 있어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페스티벌에서 친환경 용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다”며 생분해성으로 만들어진 빨대 솔, 빨대 주머니, 세제 없이 기름기를 없애는 삼베 수세미 등을 소개했다. 비건 페스티벌의 주최 측은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자 참가자들에게 개인 식기와 수저를 장려했고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도 그릇을 대여하고 설거지를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 수많은 인파에도 거리의 쓰레기통이 채 차지 않은 모습에서 환경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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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음식 외에도 비건 제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은하선 씨는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한 성인용품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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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페스티벌은 일회용 용기 사용을 지양하며 ‘플라스틱 제로’ 행사 목적에 맞춰 나무를 베지 않고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그릇을 대여하거나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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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가죽제품이 진열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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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운동단체 ‘Anonymous for the Voiceless’의 신상헌 씨(오른쪽)와 활동가들



   페스티벌에서는 비건 음식과 물품을 사고파는 부스 외에도 다양한 단체들이 부스를 운영했다. ‘Anonymous for the Voiceless(AV)’도 그 중 하나다. AV는 말하지 못하는 동물을 대변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흰 가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채, 도살 과정을 담은 영상을 틀고 거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AV는 2016년 호주 멜버른을 시작으로 지금은 전 세계 450여 개의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팀은 2017년 활동을 시작했고 2주마다 명동에서 가면을 쓰고 동물착취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신상헌 씨는 AV 서울팀의 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비건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도살되는지 알지 못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문제”라며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V의 거리 활동을 통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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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이 쓰는 가면은 AV의 상징이다. 회원들은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서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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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30분부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 이지연 씨와 비건 보디빌더 도혜강 씨가 발언하는 ‘릴레이 스피치’ 코너가 진행됐다. 사진은 도혜강 씨. 혜강 씨는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 갖는 편견을 지적하며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먹을 것을 제안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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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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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음악인이 비건 페스티벌의 무대를 채웠다. 그룹 ‘이고트립’이 뱀을 묘사해 만든 자작곡 ‘각성’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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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건≫의 저자 김한민 씨가 강연하고 있다.



  어느덧 야외에서 비건 페스티벌이 마무리될 무렵, 실내에선 비거니즘에 대한 강연이 열렸다. 《아무튼, 비건》의 저자인 김한민 씨는 자신의 경험으로 화두를 던졌다. 어느 순간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형제로부터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한민 씨는 삶을 타자에게 할애하자고 결심했다. “사회에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소외를 가장 절실히 경험하는 타자는 비인간동물”이라는 생각에 그는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김한민 씨는 축산 시스템의 잔혹성을 지적했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수많은 닭을 밀어 넣어 키우고 서로를 쪼지 못하도록 부리도 잘라버린다.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 있는 닭가슴살 부위를 늘리기 위해 유전적으로 닭을 개조한다. 이로 인해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닭은 쓰러져 죽는다. 수컷 돼지는 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취 없이 거세당한다. 암소는 강제 임신과 출산 직후 송아지를 빼앗기고 기계로 우유를 짜내는 과정을 평생 반복한다. 해양 생물도 다르지 않다. 거대한 기계가 바다 바닥을 밀어 수백 톤의 물고기를 어획한다. 새우 한 마리를 얻는 과정에서 10마리 이상의 물고기가 압사한다. 한민 씨는 가학적인 살육의 원인을 영리를 목적으로 빠르게 작업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찾는다. 누군가의 도덕적 결함이 아닌 구조가 만들어낸 학살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이전까지 동물에게 얼굴이 있다는 걸 잊었다고 얘기한다. 고통에 찡그리는 얼굴을 인지하는 순간 ‘내가 어제 먹은 스테이크에도 얼굴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학대받고 도살되기 전까지 동물은 소리 내 울고 눈물을 흘린다. 얼굴의 표정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한민 씨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면 (동등한 생명으로 존중하는) 윤리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동물을 살덩이가 아닌 같은 존재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앞으로의 비건 생활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김한민 씨는 “비건을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생각하라”고 권했다. 비건이란 고정된 인간형을 찾기보다는 동물과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자는 의미이다. 한민 씨는 공중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비누조차 비건 용품이 아닐 수 있기에 “완전한 비건이 되려고 마음먹기보다는 조금씩 비건의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늘은 이것만 먹지 말자’라는 최소한의 행동 원칙을 세우고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가는 것도 한민 씨가 추천하는 하나의 방안이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비건의 길은 생각보다 우리와 멀지 않다.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비건’으로서의 삶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