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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같은 삶
등록일 2019.06.15 01:18l최종 업데이트 2019.06.15 01:18l 신화기자(hbshin120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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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임신, 출산. 요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이십대 중반에 들어 이런 고민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고민은 자주 나도 모르겠다는 식의 씁쓸한 회피로 마무리된다. 경제적 여건, 가족이나 파트너의 상황, 사회의 지지 등 출산 결정에 선행하는 수많은 제약 조건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탓이다.

 

  재생산과 관한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난 4월 헌재 앞에서 울려 퍼지는 낙태죄 폐지의 외침을 들으며 실감했다. 다만 모두에게 고민의 정도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소수자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기사 주제를 정할 때만 해도, 당연히 이들의 권리가 나의 권리보다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취재를 하면서 얻은 얄팍한 지식에 의하면 그랬다.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등 많은 집단이 성과 재생산 권리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멋대로 이들의 고통을 나의 그것과 구분지어 위계화했던 과거의 시도가 부끄러워졌다. 누군가를 인권을 위협받는 존재, 그래서 늘 고통받고 불행하며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의 나머지 이야기는 삭제된다. 그렇게 편집된 비정상성이 가시화될수록 정상성과의 구분은 더 극적이고 뚜렷해진다. 이 때가 국가와 사회가 책임으로부터 가벼워지는 순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대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다만 나는 편집된 이야기엔 어떤 이름표도 붙이지 않으려 한다. 이들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완벽히 등치될 수 있다는 오만함이나, 이들을 나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기며 동정하거나 배려하려는 섣부른 경각심 모두 경계하려 한다. ‘장애는 유니콘이 아니다는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 다르지만 또 같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