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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의 무게
등록일 2016.11.17 15:55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31l 김경우 기자(kwkim903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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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하를 일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끼리는 친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당시의 시각에서도 도를 넘은 표현이 많았다. 언젠가 그런 발언에 대해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말에 대한 친구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난 좀 더 솔직할 뿐이야.” 난 그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당연하다는 듯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 친구의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 그 친구와는 자연히 거리를 두며 지냈다.

  미국 대선이 뜨거운 화제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가지각색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대선 후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트럼프 후보를 향한 지지의 원천은 예전에 그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서 느껴지는 ‘솔직함’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자신이 차마 못 했던 말들을 대신해주는 그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솔직함’은 모욕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모욕을 주지 않으면서도 솔직해지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자세다.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실이 담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이번 커버스토리 기사를 쓰면서 그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단순한 사실 전달에 집중했던 이전의 기사들과는 달리 이번 기사는 표현 하나, 문장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적절한 표현이었는지, 혹시나 타자화의 여지는 없는지 주변 기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민을 거듭했다. 기자가 ‘솔직하게’ 담아냈다고 하더라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말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솔직함’의 무게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볍지 않다. 고등학교 때의 그 친구, 혹은 트럼프 후보처럼 고민이 결여된 솔직함은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폭력이 될 뿐이다.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날것 그대로의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