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고엽제와 함께 묻힌 환경주권 2011년 주한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을 돌아보다
등록일 2016.11.13 16:56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9l 성소진 기자(power233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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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초제의 일종인 고엽제는 울창한 숲에 뿌리면 나뭇잎을 고사시켜 떨어뜨리는 화학물질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정글에 숨어있던 베트남 게릴라군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포됐다. 정글 자체를 없애기 위함이자 그 속에 숨어있던 사람에게 강력한 독성으로 피해를 입히려는 시도였다.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다룬 참전 수기 ‘에이전트 오렌지’의 저자 조판철 씨의 세 아들은 모두 두개골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기형아였다. 심지어 조 씨는 고엽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도 아니었다. 2011년, 한 주한미군 출신의 노병의 입에서 이처럼 강력한 독성 화학물질이자 화학무기인 고엽제가 현재 대한민국 국토에 매립돼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땅 속에 묻힌 진실, 3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드러나다

  지난 2011년 5월 13일 미국 CBS 계열의 한 지방방송 탐사보도가 전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Steve House)씨의 폭로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주한미군 전투공병대 중장비병이었던 하우스 씨는 1978년 한국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롤에 주둔할 당시 상부의 명령에 따라 고엽제의 일종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가 들어있는 55갤런(gl) 드럼통 250개를 땅에 매립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그는 당시 드럼통에 ‘베트남 지역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글귀마저 쓰여 있었다고 전했다. 스티브 하우스 씨의 증언 이후 또 다른 퇴역 주한미군 레이 바우스(Ray Bows) 씨 역시 부천에 있는 캠프 머서에서도 독성화학물질을 매립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엽제와 다른 군용 화학물질로부터 이들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들과 같은 피해가 재차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폭로의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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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캐롤을 찾은 고엽제 매립 증언 노병 스티브 하우스(좌) ⓒYouTube



  노병들의 폭로 이후 각종 언론은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는 보도를 쏟아냈고,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해당 기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두 정부의 합동조사는 매우 은밀하고 불투명하게 진행됐다. 녹색연합을 포함한 환경시민단체와 칠곡군민들은 민간 전문가의 조사 참여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정부는 군사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인의 기지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7개월 후 정부는 합동조사 결과 해당기지에 고엽제나 여타 화학물질이 매립돼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지만, 조사 시기, 장소, 방법 등은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정부가 정확한조사 절차를 공개하지 않은 채로 고엽제 매립 증거가 없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강한 의혹을 표출했다.

  이처럼 고엽제 매립이 사회의 큰 주목을 받고 문제가 되는 것은 고엽제 자체의 위험성과 큰 연관이 있다. 고엽제는 색깔별로 6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앞서 언급된 에이전트 오렌지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도 제초작업의 일환으로 살포된 적이 있다. 녹색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한·미 정부가 1960년대 비무장지대에 고엽제를 살포했으며, 주변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 고엽제 살포를 위해 동원됐다. 녹색연합 측은 “당시 동원됐던 민간인들은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국토에 극독성 물질을 살포한 한·미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어떤 성분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독성은 어느 정도일까.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은 “에이전트 오렌지는 2,4,5-T와 2,4-D라는 두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제초제로, 2,4,5-T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부산물로 발생한다. 다이옥신은 폐암과 혈액암, 유방암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임과 동시에 불임, 유산, 기형, 발달장애 등을 일으키는 생식독성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엽제 자체도 위험하지만, 고엽제에 포함된 부산물 다이옥신의 경우 소량만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이다. 나열된 질환의 종류로만 보더라도 고엽제의 사용이나 매립은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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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항공기가 고엽제를 살포하고 있다. ⓒNBC News



  고엽제가 매립돼 있다면 어떤 식으로지역사회와 환경에 피해를 끼칠까. 매립 의혹이 있었던 당시 언론과 사회의 가장 큰 우려는 땅 속에 매립돼 있는 고엽제가 지하수를 타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었다. 비록 고엽제는 성분의 특성상 물에 잘 용해되지 않아 지하수로 인한 피해의 가능성은 낮지만, 이러한 가능성을 제외하더라도 고엽제의 위험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최경호 교수(보건대학원 환경독성학과)는 “땅 속의 고엽제가 건설 공사와 같은 이유로 토양 표면 위로 드러난다면 바람에 날리거나 빗물에 섞여 광역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땅 위로 노출된 고엽제가 비로 인해 강이나 바다로 유출되고, 이를 통해 오염된 물고기를 사람이 먹는다면 사람 또한 다이옥신이나 다른 유해 성분에 노출될 수 있다. 베트남에서도 이와 같은 경로로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합동조사를 시작하면서 캠프캐롤이 위치한 칠곡군에서 캠프 밖 토양·수질 오염조사와 칠곡군민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병행했다. 김신범 실장은 “2011년 당시 캠프 캐롤 주변 지하수 수질 검사 보고서에 따르면 트리클로로에틸렌 같은 발암물질과 중금속 농도, 프탈레이트와 같은 환경호르몬의 수치가 매우 높게 측정됐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고엽제 성분이 아직 검출되지 않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미군기지에서 유출된 각종 오염물질 등이 주민들에게피해를 많이 끼쳤다”며 당시 역학조사 결과 주민들에게서 트리클로로에틸렌의 수치가 높게 나왔음을 강조했다. 기존의 미군기지로부터 누출된 화학물질만으로도 지역사회의 환경과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고엽제가 매립된 것이 사실이라면주민들의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없이 커질 것이다.

  고엽제 매립에 대한 정확한 진위를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다. 처음 고엽제 매립 증언을 했던 스티브 하우스 씨 측의 변호사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파악하고 싶다면 땅을 파보면 될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언제,어디서, 어떤 식으로 조사를 했는지 밝히지 않은 채 단순히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말만 발표했다.

  하우스 씨의 증언처럼 미군이 고엽제를 한국기지에 묻었다면 이는 엄연한 범법행위다. 이와 같은 화학폐기물 불법매립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이미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미국의 ‘러브캐널 사건(Love canal accident)’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미국 후커케미컬(Hooker Chemicals)사가 나이아가라 강 주변 발전소 건설을위해 만든 운하인 러브캐널에 각종 화학폐기물을 매립했다. 이후이 지역에 학교나 주거시설이 건설되면서 사람들이 거주를 시작했는데, 1970년대가 되자 인근 주민들에게서 암, 기형아 출산, 지체장애와 같은 각종 질환들이 발생했다. 조사에 착수한 미 당국은 러브캐널 근처에 매립된 화학폐기물을 이러한 질환들의 원인으로 지목했다.이후 미국은 1980년 환경피해의 원인제공자가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는 ‘슈퍼펀드법’을 제정했다. 러브캐널 사건에서 보듯 화학폐기물 매립은 불법행위로, 오염제공자는 이로 인해 발생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의 묵묵부답, 국민의 환경주권은 어디에?

  2011년 5월 한국을 충격에 빠뜨린 미군 노병의 증언으로 정부는 미국 정부와 합동조사 특수 작업반을 조성해 진위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군 기지 내부의 기밀 보호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된 조사는 캠프캐롤에 고엽제가 묻힌 증거가 없다는 공식발표를 끝으로 7개월만에 마무리됐다. 그 후 언론의 관심은 시들해졌고, 국민들 또한 사건을 잊어갔다. 2016년 현재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도 고엽제 매립 관련한 언론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며, 환경시민단체와 칠곡군민만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2011년 12월 공식발표를 끝으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엽제 매립 의혹은 미군에 의해 한국의 환경주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고엽제 매립의 가능성은 확신할 수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칠곡군민들에 대한 역학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미군이 대한민국의 환경과 국토에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고엽제 매립 의혹은 국민들이 한국의 환경주권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현재 경기도 내에서 미군으로부터 반환된 미군기지는 19곳이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가 심각하게 오염된 채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 외곽에서는 유류오염물질이 고농도로 검출되고 있으며, 반환된 동두천 캠프 캐슬에서도 지하수에서 벤젠을 포함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반환된 기지 19곳의 오염된 땅 면적을 모두 더하면 14만328㎡에 달한다. 이러한 환경오염 \외에도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 사건 등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미군의 환경 관련 의혹들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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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캐롤 조망도와 고엽제 매립 추정지역 ⓒ연합뉴스



  정부는 대한민국의 환경을 지키고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고엽제 매립을비롯한 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의혹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환경오염에 관한 엄연한 법제도적 대책이 존재한다. 최경호 교수는 “한국에서는 사업장으로부터 배출되는 폐기물 가운데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유해한 물질을 지정폐기물로 정해 폐기물의 배출부터 처리에 이르는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유해한 지정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하는 것도 금하고 있고, 사용이 종료된 매립지에 대한 나름의 관리대책도 세우고 있다.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 건강과 환경상의 피해를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화학물질관리법’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법과 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알려진 일련의 사건들에 따르면 미군은 정부의 간섭이 불가능한 기지 내에서 규범을 무시한 불법매립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보인다. 정부에 반환된 토지의 대다수가 오염된 상태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염된 토지에 대해 환경조사권을 행사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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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매립 규탄 시위 ⓒ민주노총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대부분 독성검사를 하는 수준에 그쳤고 추가적인 진상 조사나 미군에 대한 경고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 폭로 이후 전국적인 관심으로 정부는 합동조사 실시를 선언했지만 국민에게정확한 절차와 과정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이 틀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정부가 미군의 불법적인 활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국제적 정세가 과연 국민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까. 환경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아직까지도 고립제 매립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것 역시, 국민의 환경주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침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명하고 면밀하게 미군에 대한 환경조사권을 행사하고 범법적인 오염행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앞에서 그 부대의 땅 속에 무엇이 묻혀있는지 보여주고, 미군이 대한민국의 환경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