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 > 특집
한눈에 알아보는 서울대 정치지형 2011년 오늘, 관악 학생회를 들여다보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박하정 기자 (polly6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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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는 그 동안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표출하는 공식적인 루트로 인정받아왔다. 선거를 통해 뽑힌 학생회장들은 소속 학생들을 대의하며 의사 결정을 해 나간다. 과거에는 학생사회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학생회지만, 최근 늘 문제시되는 학생들의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 정치에의 불신 등으로 인해 학생회가 학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꾸준히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활동을 기획하는 등 학생회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의 대의원으로, 총학생회운영위원회(총운위)의 총운위원으로 활동하며 각 단과대의 사업까지 총괄하는 등 학생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은 각 단과대 학생회의 최근 동향과 지난 1년간의 주요 활동, 학내 사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 등을 바탕으로 ‘서울대 정치지도’를 만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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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 지윤(인류 07) 씨는 지난 해 당선 직후, “총학생회(총학)를 세운다는 것은 대표자를 뽑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논쟁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저희를 지지하지 않은 학생들이 말하려 했던 바가 무엇인지 밝혀나가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렇듯 총학은 대표자 역할뿐만 아니라 공론장을 만들고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총학생회 10년'으로 그간 학생사회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12년 전, 최초로 비권 출신 총학생회장이 탄생했다. ‘광란의 10월’ 선본의 허민(응용화학 95) 씨는 기존 학생정치조직을 비판하며 43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재밌는 축제와 문화네트워크 만들기’가 주된 공약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운동권 선본이 연이어 당선됐다. 교육투쟁, 반성폭력 제정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2002년 46대 총학선거에서 또다시 비권 선본인 ‘서울대생, 학교로 돌아오다’가 당선됐다. 하지만 이라크파병 반대 동맹휴업을 벌이는 등 정치적인 입장을 전혀 피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 차례의 비권 총학 이후, 2004년 48대 총학선거에서는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열(현 서울대 학생행진) 선본이 당선됐다. 48대 총학생회장 정화(국어국문 01) 씨는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이 됐고 당시 비상총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49대 총학생회장 황라열(종교 00) 씨는 반권 성향을 보였다. 아크로 집회 금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황 씨는 허위이력과 한총련 탈퇴선언 당시의 비민주적 행위 등이 문제가 돼 결국 탄핵됐다.
2007년과 2008년, ‘실천가능’ 선본이 학생 복지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51대, 52대 총학으로 당선됐다. 이들은 비권으로 불리며 기존의 학생정치조직과 거리를 두면서도 하나의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52대 총학생회장 박진혁(경제 05) 씨는 53대 총학선거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투표함을 미리 개봉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 3월 명예 탄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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