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호 > 특집
공약에 공략 당하지 않는 방법 공약의 내용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투표해야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덕현 기자 (deokhyun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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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측이 제시한 정책 자료집은 230여 페이지에 달했다. 공약집에는 경제성장, 지역개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정책이 실렸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변경되거나 백지화됐다. 동남권 신공항, 반값등록금 등이 대표적이다. 공약 불이행과 변경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야기했다. 이런 공약 불이행은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들의 공약 이행 정도를 돌아보고 공약제시와 이행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봤다.

공약, 여러분 이거 다∼거짓말인거 아시죠?
1987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당선되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는 중간평가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취임 후 중간평가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연내 내각제 개헌 공약을 내세웠으나, 취임 후 내각제 연내 개헌을 유보했고 결국 이행하지 않았다. 두 대통령은 당선 후 공약 추진을 연기하고 결국 임기 내에 추진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14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세기 내 통일 실현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논의가 중단됐다.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제시했다. 충청지역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 국회, 중앙행정기관들을 이전해 국토의 균형 잡힌 개발을 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이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 경우 두 대통령은 공약을 강력히 추진하려 했으나 외부적, 법적 요인 등으로 인해 공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됐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물류비용 절약, 일자리 70만개 창출, 국민 통합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로 인해 현재 이 대통령은 사실상의 대운하 건설 공약 폐기를 선언하고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간 7% 경제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 ‘747 공약’도 에 따르면 현재 사실상 폐기됐다.

정책공약집에 나와 있는 정책만 ‘공약’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첫해 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반값등록금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정책자료집에 제시된 공약은 아니다. ⓒsbs
대선에서는 후보 개인의 공약뿐만 아니라 정당 차원의 공약도 제시된다. 또한 유세와 TV토론 과정에서 정책공약집에 수록되지 않은 정책들이 약속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느 범위까지를 후보가 지켜야할 공약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의 내에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만들어 ‘반값 등록금’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등록금절반인하위원히의 위원장은 당시 후보 신분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이명박 후보의 대학관련공약 중 대표적인 공약으로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임기 첫해 텔레비전 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치적으로 공약들이 나온 데가 많다’며 ‘내 자신은 반값으로 등록금을 하겠다고 공약을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덕진 교수(사회학과)는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라면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겠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통치, 정치, 소통을 하는 것이다”며, 후보 시절의 약속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약에 대한 선호도와 득표율은 정비례하지 않아
‘[대선기획] 제 2편, 2007 핵심쟁점, 누구를 뽑을 것인가’ 편은 지난 17대 대선에서 공약 지지도만으로 후보의 지지도를 평가할 경우 문국현 후보가 20.9%의 지지를 받아 후보자 중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그 뒤를 이어 이명박 후보가 17%, 권영길 후보가 14%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실제 선거의 득표율에서 문국현 후보가 5.8%, 이명박 후보가 48.7%, 권영길 후보가 3.0%의 득표율을 보인 것과는 다른 결과다. 장덕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후보자를 지지하는데 전통적으로 공약보다 지역 등 다른 요인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선심성 공약, 백화점식 공약 남발 경계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충청남도 권역 공약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 정책은 백지화됐다. 사진은 17대 대선에서의 한나라당의 정책공약집.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정책공약집을 통해 충남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구축할 것을 공약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2011년 2월에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제가 충청권 선거 유세에서 표 얻으려고 관심이 많았겠죠. 그러나 이것은 국가백년대계이니까 공정하게 과학자들이 모여서 생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후보시절 내세웠던 공약이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국가백년대계’에 대한 정책을 사전 검증 없이 쉽게 공약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개별적으로 툭툭 던져주는 지역별 공약은 큰 틀에서의 고려라기보다는 선심성인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역대 대선 당선자들의 공약에는 같은 분야지만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리해고 요건 엄격화, 정년 상향조정,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법 적용 확대 등 노동권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동시에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와 구조조정 촉진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노동자에게는 노동권 보장을, 기업에게는 노동의 유연화를 약속한 것이다. 이렇듯 공약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여러 정치적 입장을 모두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강원택 교수는 “후보자들이 공약들을 백화점 식으로 늘어놓지만 어디에 무게중심이 있는지, 정책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해야한다”고 말했다. 유권자는 큰 틀에서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에 공약의 우선순위를 분석함으로써 후보가 제시한 정책의 방향을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공약들이 검증을 거치지 않고 남발되다보니 공약 자체가 내부적인 모순을 지니기도 한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747공약’을 통해 7% 경제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의 이광재 사무처장은 “7%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이뤄도 세계 7위 국가가 안 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공약의 내용이 그 자체가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후보들이 공약을 단순히 선거의 도구로써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니페스토, 후보자 스스로 시작해야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해 대통령이 앞장선다,” “모두를 위한 창의적 교육.” 대선 후보들의 공약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추상적인 목표를 담고 있어서 구체적 이행을 검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매니페스토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후보자가 정책의 목적, 우선순위, 달성시기, 예산 조달 방법 등의 구체적 내용을 공약에 포함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유권자가 후보의 공약의 타당성을 검증해 투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책으로 승부하지 않고 가공된 이미지로 승부하지는 않는지”를 검증해야한다고 판단했다. 공약 검증 기준으로는 공약의 실효성, 타당성, 이행률 등이 있다. 유권자와 얼마나 성실하게 소통했는지의 여부와 공개한 자료의 신뢰정도도 검증 대상이다.
강원택 교수는 매니페스토 검증이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후보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경쟁하는 후보 간에 정책 공방이 이뤄지고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이 정책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 스스로가 책임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 후보 간의 토론, 시민단체, 유권자들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치프레이즈를 캐치하라!
역대 대선에서는 후보의 공약들을 압축해 보여주는 캐치프레이즈들이 사용됐다. 지난 선거들에서의 캐치프레이즈를 돌아보고 다음 대선에서는 어떤 내용이 제시될지 예상해봤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당시 서민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고, 유세 도중 사망한 신익희 후보는 180만 표의 무효표를 양산했다. ⓒ중앙일보
신익희(민주당)-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승만(자유당)-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산다”
궁핍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억압과 가난에 서민들이 야당 구호에 관심을 갖자 자유당은 이에 맞선 표어를 붙였다.


박정희(민주공화당)- “새일꾼에 한표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
송요찬(자유민주당)- “배고파 못살겠다 황소라도 잡아먹자”
‘황소’는 당시 공화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징이었다. 송요찬 후보는 군 출신으로서 박정희 후보의 출마에 반대했다가 구속됐고, 옥중출마 한 것이었다. 결국 송 후보는 선거를 중도에 포기했다.
군사정변 후 황소 이미지를 사용한 박정희 후보에게 송요찬 후보는 일침을 가했다. “배고파 못살겠다 황소라도 잡아먹자.” ⓒhttp://kr.blog.yahoo.com/swh0077/20363


박정희(민주공화당)- “황소힘이 제일이다 틀림없다 공화당”
윤보선(신민당)- “지난 농사 망친 황소 올봄에는 갈아보자”
“박정해서 못살겠다 윤택하게 살아보자”
윤보선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농사일에 비유하여 비판했고, 정권 교체를 촉구했다. ‘박정해서 못살겠다’는 부분에서는 언어유희를 이용해 상대 후보를 풍자하는 모습이 보인다.


노태우(민주정의당)-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김영삼(통일민주당)- “군정종식 김영삼”
김대중(평화민주당)-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
제 13대 대선에서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를 비판하는 야당의 후보들과 군 이미지를 벗어나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홍보한 노태우 후보의 대립 구도를 보였다. 후보의 이름을 이용해 캐치프레이즈를 만든 것이 눈에 띤다.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 “가족이 행복한 나라, 좋은 대통령”
이명박(한나라당)- “성공하세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제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행복’, ‘좋은’과 같은 추상적 단어를 사용했다. 반면 이명박 후보는 ‘성공’, ‘경제’ 등 후보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는 구체적인 요소들로 캐치프레이즈를 구성했다.


‘먹고 사는 문제’, 복지, 남북관계...?
대선을 한 해 앞둔 2011년 한국사회. 강원택 교수는 한국사회에 “사회 경제적 불안감과 안보 불안감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양극화, 지역적 차이, 고용문제 등이 심화됐고, 남북관계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