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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편집장 김보람 (yullov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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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사라졌습니다. 화재 직후, 모 포털사이트에는 ‘지못미’라는 단어가 인기검색어로 올라왔습니다.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입니다. 전소(全燒)된 숭례문을 애도하는 뜻을 담아 누리꾼들이 ‘광클(빠르게 클릭함)’로 검색순위를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온오프 가릴 것 없이 사과(謝過)가 넘쳐나고 있지만, 미안하다는 말 하나로 모든 책임이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한 때 ‘내 탓이오’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1989년 9월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시작한 그 운동의 목표는 교회 안팎의 신뢰 회복이었습니다. ‘내 탓이오’는 천주교 미사의 고백기도 순서에서 신도들이 손으로 가슴을 치는 통회 의식에서 따온 것이었죠. 약 40만장의 계몽 스티커가 배부되면서 많은 호응이 뒤따랐습니다. ‘내 탓이오’의 진짜 의미는 단순한 시시비비(是是非非)보다, 자기책임의 원칙을 확인하고 생활 속에서 주인의식을 실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이어 이제는 ‘내 탓’임을 인정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닐런지요.

그러고보면 지키지 못한 것은 국보 1호뿐만이 아닙니다. 눈 앞에서 숭례문이 불타는 순간에도 서울 곳곳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했던 이주노동자, 지도자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 운동 선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침해당했던 대학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 장애 학우들의 이동권, 심지어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지켜주지 못했던 것들을 위해 기자들은 아이템을 찾고 기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독자들의 알 권리만큼은 확실히 지키도록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도 애매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 탓’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