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 사회
'선진화' 바람에 흔들리는 재건마을 외면받는 판자촌의 주거권
등록일 2016.11.11 15:17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5l 정지훈 기자(fighter144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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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는 ‘세계 선진 일류도시 강남’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거주 환경이 열악한 판자촌을 정비하는 ‘선진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남구 내 4곳의 판자촌을 대상으로 주거환경개선 및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2015년부터 부구청장 직속으로 ‘도시선진화담당관’ 제도도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오히려 이 계획 때문에 선진화와 더 멀어져 행복하지 않은 마을이 있다. 바로 개포4동 1266번지에 위치한 재건마을이다.

  대한민국 법 조항은 주거권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제25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역무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며 주거권을 적절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재건마을 주민들의 주거권은 지금껏 확보되지 못했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불법 점유자’ 주민들의 짓밟힌 주거권

  재건마을은 박정희 정부 시절 결성된 자활근로대의 일부와 상이용사 가구, 관공서 신축 용지에 살던 거주민 등이 8~90년대에 마을 부지로 강제이주되면서 처음 형성됐다. 당시 재건마을 부지는 하천 부근의 빈 땅이어서 주민들은 주변의 흙과 돌로 천변을 직접 메워 아무 것도 없던 땅에 마을을 만들어야 했다. 힘을 모아 지난한 세월을 버텨오면서 마을 주민들은 떼어놓기 어려운 정서공동체를 구성해 왔고 서로를 이웃 이상의 의미로 여기게 됐다. 

  1989년부터 시작된 재건마을 주민들의 주거권 문제는 이들의 공동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1989년, 재건마을의 주소지가 포이동 200-1번지에서 226번지로 변경됐다. 주소지가 변경되고 나자, 주민들은 새로 바뀐 주소지에는 주민등록을 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그들이 강제로 이주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재건마을 주민들을 불법 점유자로 판단한 것이다.

  재건마을 주민들의 주거지가 행정적으로 사라지면서 마을은 일순간에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시유지로 바뀌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0년부터는 불법 점유 명목으로 마을에 토지변상금까지 부과되기 시작했다. 토지변상금을 내면 불법 점유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어 주민들은 변상금 납부를 거부했다. 강남구에서 직접적으로 주민들을 내쫓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부과되는 변상금 때문에 불씨는 남아 있었다.

  분기점은 2003년이었다. 2003년 서울시와 강남구는 마을 부지의 용도를 학교 부지로 바꾸려 했고 이 계획이 진행되면 마을이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 재건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고 2009년이 돼서야 비로소 재건마을 거주 사실과 주소지를 인정받고 주민등록 등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법 거주민에 대해 부과된 토지변상금은 아직까지도 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고, 새로운 주민등록 신청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불안정한 주거권 문제를 인식한 주민들은 이 무렵부터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주거권 보장’을 지자체에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재건마을 주민들의 주거 불안정 문제는 2011년에 발생한 화재 이후 더 불거졌다. 2011년 6월 12일의 화재는 마을의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켰다. 주민들은 ‘주거 복구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강남구에 주거 복구 및 생계 지원을 요구했다. 강남구는 이에 난색을 표했고 오히려 16일에는 서울시와 협의해 화재 주민에게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재건마을 측의 자료에 따르면 며칠 뒤인 22일 강남구는 임대아파트 대신 다가구매입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는데 그마저도 상태가 좋지 않은 주택들이었다. 주민들은 주거권에 대한 숙고가 부족한 이런 이주 대책에 반대했고 주거 복구를 원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6월 30일 강남구는 재난구역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주민들이 주거 복구를 감행할 시 공권력을 행사해 강제철거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8월이 되도록 화재 잔재가 치워지지 않아 향후 마을에서의 주거가 불투명해지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주민들은 8월 2일 1차 주거 복구를 통해 숙소 3채와 공부방을 세웠고 11일에는 2차 주거 복구에 돌입했다. 2차 주거 복구가 있던 바로 다음 날 새벽 강남구는 약 140여 명의 직원과 용역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진행했고 1, 2차에 복구된 숙소 7채가 반파 혹은 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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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마을 화재 당시 모습 ⓒ프리데일리



  재건마을 주민들의 주거권에 대한 위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월 강제철거 이후 주민들은 생활을 위해 3차 주거 복구를 단행했지만 강남구와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9월 초에 이뤄진 마을 주민들과 강남구와의 면담에서 강남구는 화재 현장의 절반을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하니 복구한 집을 자진 철거하라고 마을 측에 요구했다. 다만 이어진 면담에서 다른 공터에 집을 복구해도 제재하지 않겠다는 강남구의 약속을 받은 주민들은 이에 따라 9월 24일과 25일에 숙소 7채를 이전해 복구했다.

  그러나 복구 직후인 26일 강남구는 복구한 7채에 철거계고서를 붙이려 했고 주민들이 이를 막자 29일 새벽에는 강남구 직원과 용역 50여 명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진행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주거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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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개발계획, 주거권 보장과 마을 공동체 유지는 도대체 어디에?

  화재와 철거의 소용돌이 이후 재건마을과 지자체는 ‘재건마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마을 주거에 대한 입장을 본격적으로 교환했다. 서울시와 강남구, 마을 대표가 참여한 TF 회의가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총 13차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서울시와 재건마을 측은 각자의 주거 개발 방안을 제시했다.

  개발사업 주체인 서울시는 2012년 4월 ‘30년 무허가촌 재건마을 공영개발’ 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마을 개발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의 골자는 재건마을 부지에 장기전세주택 234호와 마을 주민들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82호를 혼합해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건마을 주민들은 서울시의 대안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서공동체 유지 및 그 기반이 되는 주민들의 주거권 확보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시의 계획안이 재건마을 주민들의 장기적인 주거를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계획이 공공주택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주민들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재건마을의 철거가 선행된 후 공공주택들이 일괄적으로 건설된다. 주택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주민들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마련한 여러 곳의 임대주택에 선입주한 후 건설이 끝난 뒤에 새로 준공된 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문제는 재건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폐지나 고물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저소득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주민의 상당수는 국민임대주택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 송희수 재건마을 공동대표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사람들은 결국 마을의 기초생활수급자들인데 (그들은)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기도 어렵고 임대료를 두세 번만 못 내도 쫓겨난다”며 서울시 계획안이 결국 마을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를 비췄다.

  공공주택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도 문제지만, 마을 주민들은 갈 곳 없이 내몰린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재건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이들에게 재건마을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삶을 지탱하는 지지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을 공동체가 해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마을 주민들이 서울시의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또한 서울시의 개발계획은 주거권을 인정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응답하고 있지 않다. 계획에서 제시하는 임대주택으로의 이주는 주민들이 원하는 주거권의 보장과는 거리가 먼 대책일 뿐이다. 앞서 일어났던 주소지 등록 문제, 강제철거 등 일련의 사건들은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주거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주거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선 개발이 진행돼 이주를 하게 돼도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개발에 대한 논의 이전에 주거권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거권 확보를 위해선 아직 불법 점유자로 분류된 주민들의 지위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그 발단이 강제이주였다는 것 역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 김용금 씨는 “우리가 임대(주택)가려고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마을에서 살아온 것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의의 출발점이 주거가 아닌 주거권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주민들의 힘으로 짓는 협동조합 주택, 공동체와 주거권 보장의 길

  주민들의 본질적인 주거권 보장보다 표면적인 상황 해결을 목표로 하는 서울시의 대안에 마을 측은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자체적인 주거 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공공토지임대형 사회적주택협동조합(협동조합)’ 모델이다. 이 모델은 재건마을 토지의 약 1/4 정도를 무상으로 혹은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임대받은 후 협동조합을 구성해 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같은 대안은 국내에서는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립대 박인권 교수(도시행정학과)는 “임대주택을 개발한 후 기존 거주민을 그곳에 이주시키는 방식이 제도권에서 진행해 오던 재개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에는 주택협동조합이 활성화돼있지도 않아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협동조합 모델은 마을은 물론 사업주체인 서울시에도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이다. ‘토지+자유 연구소’ 이성영 연구원은 “(협동조합 모델은) 마을 주민들의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이들이 임대주택에 들어갈 때 크게 우려하는 공동체의 상실을 막을 수 있다”며 이 대안의 장점을 설명했다. 서울시의 개발안에 비해 주민들이 중요시하는 주거권 확보와 공동체 유지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또 협동조합 모델에 따르면 주민들 중심의 자치 구조가 형성돼 마을 공동체의 강화도 기대할수 있다. 

  한편 서울시 역시 기존 계획에서 마련하려 했던 임대주택이 협동조합 주택으로 대체될 뿐이기 때문에 마을 부지 대부분에서 여전히 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 잃을 것이 없는데다가, 투입되는 재정도 줄일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정부가 건축비와 관리비를 거의 모두 부담하지만 협동조합 모델은 이러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때문이다. 이성영 연구원은 “토지는 임차하고 건물은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방식보다 정부재정 투입을 낮출 수 있고 초기에 토지를 빌려주거나 토지 구입비용만 부담하면 계속되는 재정투입 없이도 서민들이 지불 가능한 수준의 주택가격을 지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의 이런 제안에 대해 서울시는 2013년 1월 21일 열린 회의에서 임대주택 중 재건마을을 위해 별도로 1개 동을 관리형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중재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13차례의 회의가 모두 끝난 이후에 관련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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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확보를 위한 주민들의 의지가 담긴 재건마을의 구호들 행동하는 의사회



흔들리는 공동체 지지할 관심과 대화 필요해

  마지막 TF 회의가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재건마을과 지자체는 이렇다 할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주거권에 대한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 마을 주민들은 강남구가 내세운 선진화 개발계획을 우려하고 있다. 판자촌 개발에는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이 가장 우선시돼야 하지만 강남구의 선진화계획이 이런 기조에서 이뤄질 것인지는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박인권 교수는 “물리적인 개발만으로는 삶의 질이 반드시 좋아지지 않으며, 이렇게 개발된 사회기반 시설들을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역량이 함께 증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주민들이 개발된 곳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서 박 교수는 “직업교육을 제공하거나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통해 그들이 사회의 정당한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서울시와 강남구는 세부적인 개발 계획과 선진화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처럼 불안해하는 주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다. 송희수 대표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자체와 이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진정한 선진화는 거주민들의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보장할 수 있을 때 이뤄진다. 마을과 지자체의 대화가 끊긴 지금, 흔들리는 재건마을 공동체를 위한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