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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도록 생생한 우리들의 이야기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과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
등록일 2016.11.11 20:51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8l 김세영 기자(birdy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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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하고 미묘하다. 찬란하고도 잔인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우리들’에 대한 리뷰다. ‘우리들’이 초등학생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해보면, 조금은 낯선 반응들이다. 그러나 회고해보건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수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누구보다 예민했고, 그 예민함을 이용해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만큼 잔인하기도 했다. 재지 않는 관계에서 상처도 깊었다. 영화는 파스텔톤으로 흐려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파고들어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애들한테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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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선과 지아는 서로가 내뿜는 공기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Imdb



  ‘우리들’은 주인공 선의 클로즈업 된 얼굴로 시작한다. 피구 경기 시작 전, 아이들이 편을 가른다. 선은 아이들이 가장 마지막에 찾는 아이다. 자기의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데룩데룩 눈을 굴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선의 얼굴에는 반복되는 기대와 좌절, 난처함과 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는 표정 틈새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감정을 다룬 영화가 하나 더 있다. 2010년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다. 왁자지껄한 남고의 한 교실, 소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 어느덧 화제가 부모님 이야기가 되자 기태의 표정이 굳는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 입매는 굳었고 눈은 눈치만 보고 있다. 더 이상 대화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다. 무섭다. 기태는 화제를 전환한다. “야 어제 존나 어이없는 일있었던 거 아냐?”
 
  두 영화 속 아이들의 표정은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먼 ‘과거’의 이야기가 이토록 강렬하게 그 시절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은 이 영화들이 철저히 ‘애들’의 시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애들한테 일이 어디 있어”라는 선의 아버지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애들한테는 일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일이 있었고, 그땐 그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민한 그들, 관계 맺기의 어려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비밀을 갖고 있다. ‘우리들’의 선은 왕따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남들 다 갖는 핸드폰도 없고, 밤마다 소주를 한 병씩 사들고 오는 아빠 때문에 집안 곳곳에 소주병이 널려있다. 다른 애들이 학원에 갈 시간에 선은 집에서 동생 윤을 돌봐야한다. ‘파수꾼’의 기태는 엄마가 없다. 소위 잘나가는 ‘일진’이지만 외롭다. 단짝친구 동윤의 말대로 옆에 있는 모두가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만, 이렇게 주목받아본 적도 없으니 졸업 전까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

  친구 사이에 이런 비밀은 서로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코드가 된다. 처음 만난 선과 지아가 친해지는 과정은, ‘너는 이래? 나는 이런데’로 요약된다. 서로의 집에서 드러나는 조금은 부끄러운 사정들은 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똑같기만 하면 노는 것도 재미가 없다. 그들은 서로가 내뿜는 공기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선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안 좋은 지아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우리 봉숭아 물 들일까?”하고 제안한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 예민함은 작은 일에도 크게 상처 입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엄마가 없는 지아에게 선이 엄마를 향해 부리는 투정은 상처가 된다. 선과 엄마의 친근한 대화에 상처받은 지아는 지나가듯 선을 타박한다. “핸드폰 좀 사, 솔직히 요새 핸드폰 없는 애가 어딨냐?” 핸드폰을 살만한 사정이 안되는 선에게, 지아 나름의 복수다.

  사소한 복수로 인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상처들이 점차 쌓여간다. 둘만의 대화 소재이자 은밀한 비밀이었던 것들은 이내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교실이라는 그들만의 정치공간에서 폭로전이 시작된다. 공격하고, 되갚고, 또 다시 공격하고. 한번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다. 틀어진 관계는 회복될 줄 모르고 평행선을 달린다.

  ‘파수꾼’의 사춘기 소년들은 소녀들만큼이나 예민하다. 욕이 난무하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대화는 투박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미묘한 시선이다. 교실에 모여 앉아 대화를 하던 중, 기태가 부모님 이야기에 늘 그렇듯 화제를 돌리자 희준과 준호는 ‘역시’라는 시선을 주고받는다. 시선 교환을 느낀 기태는 준호를 다그친다. “너희 나 몰래 시선 주고받았잖아!”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그만큼 섬세하지 못하다. 너의 그 시선이 나에게 상처였다고, 엄마가 없는 나는 부모님에 대해 할 말이 없어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다고, 네가 좀 이해해달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쩐지 소원해진 희준에게 화해를 청하고 말을 거는 기태의 방식은 폭력적이기까지하다. 나를 좀 봐달라고 괴롭힌다. 욕을 하고, 싸움을 건다. “미안해”로 시작했던 대화는 어느새 “미안하다잖아!”라는 윽박지름으로 변해버린다.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럼 언제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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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소년들은 소녀들만큼이나 예민하다. ⓒKmdb 



  결과는 파국이다. 결코 말해서는 안 될 비밀까지 폭로해버린 선과 지아는 더 이상 서로를 쳐다볼 수조차 없는 사이가 됐다. 교실 내 서열관계의 끄트머리에서, 둘은 이도 저도 못할 처지에 놓인다. ‘파수꾼’의 결말은 더 처참하다. 소년들은 전학을 가고, 자살을 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도대체가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문제의 단 하나의 해결책,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는 놀랍게도 선의 동생 윤이다. 힘이 센 친구와 놀다가 매번 다치는 동생이 안타까운 선은 윤에게 맞으면 때리고, 또 맞으면 또 때려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주고받다가 멈추면, 결국 멈춘 쪽이 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윤은 “그럼 언제 놀아?”라고 되묻는다. 그렇게 서로 때리기만하면 놀 수가 없다고, 자신은 그냥 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럼 언제 노느냐는 윤의 질문에 선은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 그냥 놀면 되는 거였다.

  ‘우리들’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피구시합으로 끝난다. 폭력적인 편 가르기에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던 선의 얼굴에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본 지아와 선의 표정은 비장하다. 마지막 장면, 지아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선의 입술이 달싹인다. ‘파수꾼’ 속 해사했던 동윤의 미소에는 어른의 흔적이 남았다. 기태가 자살한 후, 함께 가던 기찻길을 찾아간 동윤은 비로소 너무나 외로웠던, 그래서 누구에게든 인정받고 싶었던 기태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대사는 “그래, 니가 최고다, 친구야”다. 동윤은 너무도 늦게 그의 파수꾼이 됐다.

  서툰 관계 맺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들이 되고,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서로의 파수꾼이 된다. 영화 속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다.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성장은 아픔을 동반하기에,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더 깊숙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