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 학원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의 방', 모유수유실 증설됐지만 지속적 환경개선 필요해
등록일 2016.11.13 01:36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6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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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학내 모유수유실이 증설됐다. 기존 간호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수의과대학, 음악대학, 의과대학, 보건진료소의 7개소에 더해 공과대학(2개소), 국제대학원,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인문대학, 자연과학대학, 치의학대학원, 환경대학원, 보건대학원, 약학대학, 그린바이오과학기술원에 12개소가 추가로 설치됐다. 현재 서울대학교에는 관악캠퍼스 15개, 연건캠퍼스 3개, 평창캠퍼스 1개의 총 19개 모유수유실이 있다.


  서울대학교 재적 대학원생 총 1만 1,300여 명 중 기혼자는 2,500여 명으로, 이들은 언제든 ‘부모학생’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교육통계 연보’에 따르면 여성의 첫 출산 평균 연령인 30.7세를 초과한 국내 여성 대학원생 수는 8만 700명에 이르며, 이는 전체 여성 대학원생 수인 15만 9천여 명의 50.5%에 해당한다. 학업과 가정을 동시에 신경써야 하는 dl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 역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 역시 부모학생들이 불편함 없이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 내 모유수유실 이 증설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 내 수유·유축 (乳畜) 공간은 기혼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2015년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전국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기혼 학생 281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에 따르면 학교 내 수유 공간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27%, 유축 공간이 있다고 응 답한 학생은 18%에 불과했다. 이에 서울대 부모학생협동조합 ‘맘인스누(Mom in SNU)’는 대학 건물 안 모유수유실 마련을 요구했고, 지난해 말 평의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여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본부 장학복지과 관계자에 따르면 본부는 각 단과대의 모유수유실 수요를 조사 해 모유수유실 마련을 원하는 경우 최대 300만 원까지의 예산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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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복지과에서 제공한 학내 모유수유실 현황에 관한 표.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해당 장소가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장학복지과



  서울대학교의 부모학생들 및 전문가들은 서울대 내 모유수유실 증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진화(디자인학부 박사후 연구생) 맘인스누 대표는 “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 캠퍼스 안에 모유수유실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대는 기초적인 수준은 해결됐다”며 서울대의 모유수유실 시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라 말했다.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 역시 “서울대가 부모학생의 복지 증진을 위해 인상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학습공간과 가까운 수유·유축 시설은 부모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시설이다.



통합 시스템 없어 알음알음 정보 공유, 관리도 천차만별


  모유수유실은 늘어났지만, 학내 부모학생들은 증설된 모유수유실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모유수유실을 운영·관리하는 것 역시 학교 차원에서 운영해온 보건진료소 내 모유수유실을 제외하고는 본부가 아닌 각 단과대의 자율에 일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로서는 모유수유실 위치나 시설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문대학 6동의 모유수유실을 자주 이용하는 A 씨는 캠퍼스 내 모든 모유수유실에 관해 총망라된 정보가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A 씨는 다른 건물에 가게 되는 경우 해당 구역에 있는 모유수유실을 이용하고 싶어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그 안에 어떤 설비가 마련돼있는지 등을 알 수 없어 유축을 하려면 다시 6동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진화 대표 역시 모유수유실을 증설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했음에도 각 모유수유실의 설비나 이용 방법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보건진료소 홈페이지에는 관악캠퍼스, 연건캠퍼스 각 1개씩의 모유수유실에 관한 정보만 게재돼있고 나머지 17개의 시설은 언급돼있지 않다. 보건진료소와 장학복지과는 단과대별 모유수유실 설치 현황을 모르기 때문에, 이용을 원하는 부모학생이 단과대나 학과의 담당자를 찾아 연락해야 한다. A 씨는 “해당 담당자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필요한 학생이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부모학생들은 같은 단과대학 혹은 학과 내 이용 경험이 있는 선배들에게 물어보거나, 맘인스누 등의 모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곤 한다. A 씨는 이러한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면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유수유실이 어디에 있고 여기에 어떤 장비가 마련돼 있는지 등의 정보는 사실상 알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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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진료소 홈페이지에는 관악캠퍼스, 연건캠퍼스 각 1개씩의 모유수유실에 관한 정보만 나와있다.  ⓒ보건진료소



  위생 관리 또한 각각의 모유수유실에서 다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진화 대표는 인문대학 수유실의 경우 중앙도서관과 가깝고 설비가 잘 구비돼 이용자가 많다고 말하며, 맘인스누 회원들이 직접 돌아가면서 청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모유수유실은 해당 단과대학 학생회에서 직접 관리하거나 예산을 받아 청소 인력을 고용하기도 하고 있었다. 학생회마저 관리를 담당하지 않는 경우 이용자의 자율적인 관리에 맡겨져 있었다. 보건진료소 내 모유수유실을 이용하는 B 씨는 전반적인 위생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하면서도 “유축기 등 위생이 중요한 기구는 점검이 좀 더 철저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회대 소속 C 씨는 “수유 공간은 위생이 아주 중요한데, 단과대학 학생회가 관리하는 것으로는 청결한 상태가 유지되기 힘들다” 고 말하기도 했다.


  이진화 대표는 본부에 모유수유실을 총괄하는 부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모유수유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없다 보니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고, 위생 관리 역시 단과대에 따라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유수유실 증설을 추진했던 서정원(사회복지학과 박사 후 연구생) 맘인스누 초대 대표는 미국 대학을 바람직한 사례로 제시하는 글을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기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부모학생을 위한 정 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대신, 각 대학에서 학업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담당 부서에서 직접 부모학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례로 하버드대학은 담당 부서가 부모학생에게 생활 반경에서 가장 가까운 모유수유실의 위치와 비밀번호, 캠퍼스 내 전체 모유수유실의 위치가 나와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위생 관리 역시 총괄해 각 시설 간 격차가 거의 없다.



설치된 19개 모유수유실 중 수유·유축 전용 공간은 ?곳


  본부 장학복지과 담당자에 따르면 모유수유실 증설 당시 본부는 모유수유실을 명시하는 문패, 내부 소파와 커튼을 필수 요소로 구비하게끔 각 단과대학에 권고했다. 하지만 모유수유실이 마련됐다고 하는 사범대학, 음악대학, 약학대학, 국제대학원, 법과대학에는 실제로 ‘모유수유실’이라 명시된 공간이 없다 (2016년 9월 기준). 대신 기존의 세미나실, 강의실에서 수유 혹은 유축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정도이거나 아니면 그러한 공간이 아예 부재했다. 국제대학원의 모유수유실로 전달받은 140동 209호에는 실제로 ‘모유수유실’이 아닌 ‘글로벌 차이나 최고위과정 사무국’이라는 문패가 달려있고, 내부에도 모유수유를 위한 기구가 구비돼있지 않았다. 장학복지과 관계자가 음악대학에는 54동 B101호에, 약학대학에는 21동 2층에 수유·유축 공간이 마련됐다고 밝힌 것과 달리, 해당 장소에 수유·유축을 위한 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밖의 모유수유실도 수유·유축 전용 공간으로 설치된 곳은 드물었다. 관악캠퍼스에서는 인문대, 수의대, 보건진료소의 모유수유실만이 수유·유축 전용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다른 단과대의 경우 여학생휴게실 내 칸막이나 커튼 등을 이용해 일부 면적을 수유·유축을 위한 공간으로 할당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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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대학원에 위치한 모유수유실. 시설은 깨끗한 편이나 커튼으로만 여학생휴게실과 모유수유실을 구분하고 있어 이용자가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수유·유축 전용 공간이 아닌 경우 외부와의 차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용자들이 안심하고 이용하기 어렵다. 전용 공간에는 이용자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열쇠를 이용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여학생 휴게실이면 아무나 문을 열고 갑작스럽게 들어올 수 있고, 이때 이용자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A 씨는 “전용 공간이라 하더라도 잠금장치가 모두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잠금장치가 설치돼있어도 실제로는 문이 열려있곤 했다”며 독립되고 안전한 수유·유축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부모학생들은 단과대에 모유수유실이 있더라도, 시설이 미비하거나 공간이 독립되지 않은 경우 원거리의 모유수유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소속 B 씨는 “근거리의 모유수유실이 여학생휴게실 안에 있어 보건진료소 내 모유수유실까지 오게 된다”고 말했다. B 씨는 여학생휴게실 전체에 잠금장치가 돼있어 안전 문제는 우려하지 않으나, 일반 학생들의 어둡고 조용한 휴게 공간과 구분돼있지 않아 불편하다고 밝혔다. 특히 휴게실 안에 다른 학생이 자고 있으면 전등을 켜 소리가 큰 유축기를 작동시키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모유가 유방에 찼을 때 바로 빼내 주지 않으면 모유 양이 줄어들어 단유(斷乳)될 수 있기 때문에 휴게실 내 사람이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결국 다른 모유수유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양대 남경숙 교수(실내디자인학과)는 논문 ‘출산 친화적 환경을 위한 수유실 디자인 가이드라인’에서 국내 모유수유실 설치 기준의 부재를 지적하며 적절한 모유수유실에 대한 디자인을 제안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2인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중형 수유실의 경우 환경 관리가 중요하므로 잠금장치나 의자 외에도 공기 청정기, 세면대 등이 필수적으로 설치돼있어야’ 한다. 이진화 대표는 유축한 모유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 또한 모유수유실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악캠퍼스에서 위의 요소가 모두 마련돼있는 곳은 보건진료소 내 모유수유실 뿐이다. 이 대표는 다른 모유수유실은 “수유·유축을 위해 온전히 독립된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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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학 모유수유실은 수유·유축 전용 공간으로 잠금장치, 냉장고, 소독기 등 필요한 설비가 마련돼있어 많은 이용자가 찾는다. ⓒ이지원 사진기자



  모유수유실 관련 시설구비와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모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진화 대표는 “아직까지 대학 문화가 부모학생에 친화적이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를 돌봐야 할 저녁시간 혹은 주말에 주로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여기에 결석하는 부모학생을 ‘프로답지’ 못하다고 치부해버리고, 실험에서 임신한 학생을 위해 그 어떠한 안전 규정도 마련해놓지 않는 점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학업과 양육을 병행하는 학생이 학교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부모학생이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그들의 학습권에 대한 요구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모유수유실 증설은 그 첫걸음이 됐으나, 앞으로도 부모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인식 개선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