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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혜로운 것이 더 아름답다”
등록일 2016.11.11 12:53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30l 김헌 교수(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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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에 국립국어원은 ‘뇌섹남’을 2014년의 신조어로 인정했다.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이다. “주관이 뚜렷하고 말솜씨가 뛰어나며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지적 매력이 넘치는 남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섹시’(Sexy)란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관능적인 매력의 소유자에게 붙는 것인데, 어째서 지적인 남자의 뇌가 ‘섹시’하다는 말인가? 육체적인 매력에 대응하는 단어를 그 고유 맥락에서 떼어내어 지적인 매력에다 갖다 붙였으니, 이것은 의미의 바꿔치지, 즉 하나의 메타포(metaphora)일 텐데, 사실 여성들이 지적인 남성에게도 모종의 성적 매력을 느낄 수가 있으니 단순히 언어의 메타포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뇌섹남’에 대응하는 ‘뇌섹녀’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관능적인 육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몸 안에 깃든 영혼과 지성, 품격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며 성적인 매력조차 느끼는, 생각해볼수록 참으로 특이한 존재다. 어쩌면 ‘뇌’의 아름다움이 ‘몸’의 아름다움보다 더 고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보게 친구, 가장 지혜로운 것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나?”(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09c)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 중에 하나가 대뜸 소크라테스에게 “너 어디서 오는 거야? 알키비아데스와 놀다 왔지?”하며 다그친다. 알키비아데스는 당시 아테네 최고의 미남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때는 그가 턱수염이 나기 시작한 10대 후반의 나이로 가장 탐스럽고 멋진 젊음을 발산하던 절정기였다. 실로 ‘섹시 가이’였다. 맞다. 그날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맞아. 그러나 난 그 녀석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지.”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키비아데스보다 더 아름다운 청년이 아테네에 또 있었던가?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가 곁에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압데라 출신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 말이 “이 보게 친구, 가장 지혜로운 것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나?”였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라면, 프로타고라스는 당대 최고의 ‘뇌섹남’인 셈이다. 그리고 ‘뇌섹남’은 단순한 ‘몸짱, 얼짱’보다 더 아름답고, 더 섹시하다는 것이다. 사실 ‘아름답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칼로스’(kalos)는 ‘생김새가 좋은’(eueidēs) 외모, 즉 육체적인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외모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흥분이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감동과 감격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은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에로 옮겨져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문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아름다움’ 사이의 비교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한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섹시한’ 알키비아데스보다는 ‘가장 지혜로운’ 프로타고라스가 더 아름답게 ‘보이지’(phainesthai) 않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말은 좀 수상하다. 그가 가장 지혜롭게 보인다고 한 프로타고라스는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로 꼽힌다. 소피스트는 흔히 ‘궤변론자’로 이해되는 일그러진 지식인의 표상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그때도 그랬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사상과 행보에 대해 아주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날선 지성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소피스트의 아킬레스 건을 노리며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표현했으니 수상할 수밖에. 그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즉 이 만남에 대한 기록은 플라톤이 지어낸 것인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보다 더욱더 분명하게 ‘철학’을 표방하며 더욱더 신랄하게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philosophos=‘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자신이 가장 심각하게 공격하던 소피스트(sophistēs=‘지혜로운 것들을 아는 사람’)인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게 했을까? 정말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소피스트에 대해, 적어도 프로타고라스에 대해,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특정 지성인들에 대해 모종의 존경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극작가가 되고 싶었던 플라톤의 필체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프로타고라스』라는 작품이 매우 미묘하며 다층적이라 해석이 만만치 않다고 혀를 내두르곤 한다. 이 작품이 플라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희극적인 뉘앙스로 충만하다는 해석도 유력하다. 어쩌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능청스러운 농담을 통해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를,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소피스트를 고도의 전략으로 농락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그는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진지하게 평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용된 소크라테스의, 따라서 플라톤의 언명이 진정으로 프로타고라스를 두고 한 말인지를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명 자체의 진위성은 좀처럼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적인 것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상승하여 정신적인 대상으로 고취되는 것인가?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육감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답은 분명하다. 인간의 고유한 아름다움, 보다 고상하고 품격 있는 아름다움은 외모를 꾸미는 데에서가 아니라 지혜로운 영혼을 다듬어 나가는 데에 있다는 신념은 그들에게 확고하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쉽게 무시하고 소홀히 해야 할 만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알키비아데스와의 만남을 즐겼으니까, 그 점은 그에게도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은 육체적인 것에서 시작하되 그것에서 벗어나 ‘아름다움’ 자체를 지향하며 정신적인 대상으로 고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필로칼로스(philokalos))은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필로소포스’(philosophos))와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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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그리스문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