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안전과 맞바꾼 간접고용에 저항하는 목소리 KTX 해고 승무원 10년간의 투쟁
등록일 2016.06.09 21:43l최종 업데이트 2016.06.23 17:04l 김세영 기자(birdy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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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서 선전전을 벌이는 KTX 해고 승무원들.

 
  “철도공사가 시민안전을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5월 22일 일요일 오전 11시 서울역,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피켓을 들고 서서 조용히 선전전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2006년 KTX로부터 해고당한 승무원들이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에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10년째 철도공사의 승무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투쟁을 시작했을 때 20대 중반의 신입사원이었던 그들은 어느새 아기엄마가 됐다.


KTX 승무원이 ‘투사’가 되기까지

  ‘KTX 해고 승무원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청(2005년 1월에 철도공사로 전환)은 2004년 KTX의 출범과 함께 승무원들을 고용했다. 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승무원들은 ‘철도의 꽃’, ‘지상의 스튜어디스’로 불렸다. 그러나 이들은 서류상으로 철도공사의 직원이 아니라 철도청이 2003년 여객서비스 제공 업무를 외주외탁한 자회사 ‘홍익회’ 소속이었다. 당시 철도청은 승무원들에게 ‘철도공사로 전환하면 홍익회가 아닌 철도공사의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10년 넘게 지켜지지 않고있다.

  김승하 철도노조 승무지부 본부장은 “홍익회는 승무 업무에 익숙한 회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열차가 개통하는 첫날까지도 승무원들은 어떤 열차에 타야 할지 몰랐다. 발을 동동 구르던 승무원들이 먼저 회사에 전화를 하자, 회사는 그제야 전화를 한 순서대로 탑승할 열차를 승무원들에게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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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 승무지부 지부장.

ⓒ박나은 사진기자


  홍익회는 승무원들의 임금을 줄이려 치졸한 꼼수를 쓰기도 했다. 철도공사에서 제공받은 제한된 액수의 돈에서 최대한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였다. 승무원들의 보건휴가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는가하면, 유니폼 비용을 승무원들에게 청구하기도 했다. 열차가 늘어나면서 업무량이 증가하는데 승무원들의 월급은 줄어드는 이상한 현상도 일어났다.

  이 모든 문제는 인건비를 아끼고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외주화에서 비롯됐다. 철도공사 스스로가 지분 전부를 소유한 자회사 홍익회를 매개로 삼아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철도공사의 외주화는 계속됐다. 2004년 12월 철도공사는 여객 서비스 업무를 홍익회에서 철도유통으로 넘겼다. 철도유통 역시 철도공사가 그 지분을 전부 소유하고 있었다. 계약기간인 2년 후,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대신 그들에게 또 다른 자회사인 관광레저와의 재계약을 요구했다.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단체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철도공사는 2006년 5월, 280여명의 승무원들을 정리해고했다. 10년간의 길고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해고 승무원들은 긴 시간을 필요로하는 소송 대신 파업을 통해 빨리 협상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투쟁은 2년 6개월을 끌었다. 그들은 삭발투쟁, 단식농성, 고공농성까지 진행하며 남은 20대의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보냈다. 젊은 나이의 여성이자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들에게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백골단과 싸우고 경찰에 연행되는 경험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승하 본부장은 당시를 “힘들지만 함께이기에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하루 종일 시위를 하고 힘든 일을 겪어도 ‘끝나고 뭐 먹으러 갈지’ 수다를 떨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동료들이 눈에 밟혀 차마 파업장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지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투쟁은 처음 370명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었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많은 해고 승무원들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떠났다. 회사의 협박과 회유도 있었다. 회사 측의 회유로 회사로 돌아간 몇몇 승무원들은 간부로 승진하기도 했다. 소송을 시작한 2008년 11월, 파업장에 남은 승무원은 3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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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해고된 KTX 승무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송의 시작, 판결과 현실의 괴리

  2008년 11월, 승무원들은 소송을 제기하고 법적 투쟁을 시작했다. 그들은 2010년의 1차 소송, 2012년의 2차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이 철도공사가 KTX 승무원들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인정한 것이다. 철도공사의 직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승무원들은 복직의 희망에 부풀었다. 판결에 따라 부당 해고된 기간 동안의 임금도 지급받았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 하나로 투쟁을 시작했던 김승하 본부장은 당시 ‘그래도 우리나라 사법부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015년의 대법원 판결은 기존의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법원은 철도공사와 승무원들 사이의 근로관계를 부정하고, 고등법원 판결 이후 4년 동안 받았던 임금과 소송비용 8,640만 원의 반환을 요구했다. 복직할 날만을 기다리던 해고 승무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임금 반환 요구는 날벼락 같은 것이었다. 10년 가까이 투쟁했던 해고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큰 돈이 있을리 없었다. 김승하 본부장의 말대로 “사람 죽이는 판결”이었다. 아이에게 빚을남겨주는 것을 못 견뎌했던 한 승무원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철도공사는 33명의 승무원들에게 임금을 반환하라는 2차 내용 증명을 보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피고 측 소속 열차팀장이 직접 업무를 수행하되, (...) 안전과 직결되지 않은 승객서비스 부분은 철도유통 등에 소속된 KTX 여승무원의 담당업무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철도공사의 외주화는 위법이 아니다. 한편 법원은 임금 설정, 장비 제공, 채용과 교육 등 모든 것이 철도공사에 의해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홍익회가 일부 부수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홍익회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승무원들이 일하고 경험했던 하루하루는 모두 불법파견의 증거들이었다.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의 협업관계, 교육과 지침, 승무원의 업무로 안전업무를 제시하고 있는 책자들 모두가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노동자로서 안전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해고 승무원 이소윤 씨는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열차팀장이나 관제와의 협업을 위해 주어진 무전기 사용이 금지됐고, 심지어는 팀장과 아는 척도 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 업무지시가 철도공사 소속인 팀장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지고 승무원들이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면 불법파견이 되기 때문이다.


KTX, 신자유주의 노동고용구조 변화의 서막

  김승하 본부장은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기존의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의 결정은 “정치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KTX 승무원 판결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IMF 이후 추진된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과 깊이 연관돼있다. 당시 승무원들의 변호를 맡았던 최성호 변호사는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근로자’라는 글에서 ‘KTX 사례는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즉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 확대’의 대표적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 최 변호사가 지적했듯이 KTX승무원들의 외주화 문제를 인정하는 것은 곧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경영합리화의 미명 아래 초노동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무리한 외주화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KTX 해고 승무원 사건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노동고용구조 변화가 시작되고 본격화되는 시점에 있었다. 김승하 본부장은 당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마저 생소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IMF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의 흐름 속에서 KTX의 사례는 이후 급속도로 확산된 외주화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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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조합원들이 2015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을 마친 뒤 눈물을 보이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경제논리에 의한 시민 안전의 외주화

  노동건강연대의 유성규 노무사는 이러한 노동구조 변화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외주화를 통해 노동법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노동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철도공사 같은 기업은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때 외주화된 기업은 또 다른 ‘을’로서 대기업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외주화된 기업들은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를 압박한다. 노동자에 대한 이중적인 착취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외주화는 노동자를 착취할 뿐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협한다. 사용자가 외주화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면 노동자 교육, 안전보호설비에 대한 투자, 관리감독 등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철도공사의 경우처럼 시민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업의 경우 외주화가 가져올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현재 철도공사의 외주외탁은 역무원, 차량정비, 선로관리 등 전 영역으로 확대됐다. 철도노조의 김승한 정책실장은 외주화가 확대되면서 “안전관리와 같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에서 정비 주기가 길어지거나 인원이 감축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하 본부장은 “현재 KTX 내의 자잘한 안전사고들이 큰 사고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며 점점 확대되는 외주화가 가져올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현재 철도공사에는 안전사고가 났을 때 임기응변을 할 수 있는 경험과 연륜있는 승무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승무원들의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다. 간접 고용된 구조에서는 노동자가 안전관련 문제에 대해서 시정을 요청해도 빠른 피드백이 불가능하다. 외주화된 기업은 이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시민 생명 위협하는 외주화

  유성규 노무사는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영역에서만이라도 직접고용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장의 논리로부터 공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법제적인 책임을 강화해야한다”며 “국가가 나서서 시민들의 생명, 건강,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극대화를 제어해야한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이에 따른 고용구조 유연화의 흐름 속에서 시장의 논리는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유성규 노무사의 말대로, “생명과 건강 앞에는 다른 논리가 필요 없다.” 벼랑끝으로 내몰린 것은 승무원들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