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 문화
여성, 연극으로 말하기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한국의 여성 연극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박연주 기자 (17to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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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성을 향유하는 여성. 연극 은 은폐되고 왜곡된 성을 넘어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여성, 성의 주체로...연극

'보지의 독백'이라는 도발적인 표현으로 번역되는 제목에서부터 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왜곡되어 온 성에 관해 거리낌없이 말하겠다고 다짐하는 듯하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하던 순간부터 여성의 성 역시 남성에 의해 종속되어 왔고, 여성의 성은 부정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여준다.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은 기존의 일방적인 계몽형식의 연극에 비해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우리 주변인의 문제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밑에서 물이 나와 면박을 당한 뒤로 아예 성에 대해서 잊고 살아야 했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나 남편의 성 관계 요구에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하는 중년 부인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음직한 이야기들이나 일제 시대에 성 노예로 일해야 했던 여성들이나 전쟁 중 집단 강간당한 여성들의 이야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아픔 등 익히 알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던 이야기가 배우 서주희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러나 는 부당한 억압을 폭로하는 데만 그치지는 않는다. 출산의 신비함에 대한 장문의 시는 여성의 체험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출산에 대한 장엄한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임에 대한 궁극적인 긍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구도를 폭로해 내고 긍정적인 성의 방식을 찾는 노력은 비단 성의 자유화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성적 억압은 그 자체로 여성 인권에 대한 심각한 억압인 동시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 우위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는 연극계에서 여성을 무성의 존재로 간주하거나 악녀 혹은 성적 대상으로 상업화해왔던 것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성적이고 반여성적인 연극계의 흐름에 저항하며 여성 억압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여러 현상들을 형상화함으로써 성적 억압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연극을 여성주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88년 이후 팽창, 90년대 중반 이후 퇴조 경향

한국에서 본격적인 여성 연극이 첫 선을 보인 것은 88년 산울림의 이다. 중년여성이 남편의 외도에 부딪혀 방황하다가 진정한 자아에 눈뜨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연극은, 우리현실과 잘 맞아 떨어져 대단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 연극은 의 흥행을 타고 이후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다가 1994년 이후부터 다시금 퇴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까지 공연된 여성 연극을 보면 주제 중심으로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여성 연극은 그 일단계에 해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피해상황을 고발에 관한 연극이다. 작품으로는 '여자의 역할'(90), '넛츠'(89, 91), '메조리의 전쟁'(92), '절반의 실패'(90), '탑 걸스'(93), '로젤'(91, 9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91), '자기만의 방'(92, 93) 등이 있다. 둘째 단계는 여성만이 체험할 수 있는 여성문화와 자매애(sisterhood)의 연대에 관한 연극으로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91), '스티밍-욕탕의 여인들'(91), '딸에게 보내는 편지'(93) '굿나잇 마더'(90),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96), '마요네즈'(98)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단계는 기존의 이성/감정, 의식/무의식, 남성/여성, 주체/객체 등등 위계적인 이항대립을 비판하며 보다 포괄적인 양성을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연극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적 억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기를 드는 작품에서부터 단지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대중 연극까지 그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 경우 원작이 성적 모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출자가 여성중심관점에 동조하지 않고 홈드라마류의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명인서, 이화여대), 함량미달의 연극이나 대중적인 배우의 유명세에 기댄 연극도 많았다. 특히 스타 중심의 모노드라마의 경우 이런 성격이 많이 나타났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보다는 관객의 동정심에 근거한 신파조의 연극이나, 심각한 문제를 빼버리고 볼거리, 들을 거리로 채운 연극이 흥행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 연극이 여성 문화를 양산하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일회성 카타르시스로 끝나고 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진다.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대중에게 다가가는 노력 있어야

문화평론가 명인서 씨는 이 같은 여성 연극의 한계의 원인을 스타 중심, 상업성 위주의 공연 풍토, 전문 희곡작가의 부족, 시각의 부정립, 작업현장에서 연출, 무대, 조명 등을 담당할 여성인력의 부족 등에서 찾는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긍정적인 평을 받고 관객동원에 성공한 작품들은 주로 유명스타의 출연, 공연시의 볼거리, 들을 거리 등을 동반한 주제의식이 무겁지 않은 작품들이 많다'며 여성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 창작뿐 아니라 관객, 연극인 전체의 의식 성장, 페미니즘 연극의 이론적 정립, 연극의 형식 실험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여성연극의 발전단계 중 세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 양성의 조화와 협력관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체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지난 달 23~25일 경동 교회에서 공연한 생명음악회도 비록 연극의 형식은 아니지만 양성간 대립을 넘어선 또 하나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여성과 생명, 자연의 결합을 통해 폭력적인 자본과 개발 논리 등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기획된 이 음악회는 영성과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조화로운 음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모성성이나 여성성의 강조는 다시금 여성의 여성다움의 신화를 반복하거나 남/녀 대립구도를 재연할 가능성도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일견에서는 아직 주체로 서본 경험이 없는 여성이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치게 급진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영성과 같은 정신성의 강조가 자칫 우리가 발 담고 있는 사회의 물적 기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모호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실질적인 억압을 받고 사는 대다수의 기층 여성들에게 자칫 형이상학적인 '치유'는 또 하나의 문화적 억압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일상 문화를 양성 평등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와 같은 대중적이고 의식 있는 연극이 문화적 혜택을 받는 극히 일부에게만 향유 될 수 있는 문화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여 가장 기층에 있는 사람이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 생산 구조와 방식을 모색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