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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사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메종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
등록일 2016.06.09 21:58l최종 업데이트 2016.06.11 18:21l 김세영 기자(birdy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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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종 드 히미코 영화 포스터 ⓒhttp://asianwiki.com/La_Maison_de_Himiko



  메종 드 히미코, 어떤 종류의 욕망도 용서되는 곳

  사오리의 아빠 히미코는 게이다. 히미코는 어느 날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고 사오리와 엄마를 떠나버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원망스러운 사람이지만, 사오리는 스스로 히미코가 운영하는 게이 양로원을 찾아간다. 일당 3만 엔. 히미코의 애인이자 양로원의 관리자인 하로히코가 히미코의 간단한 병간호의 대가로 사오리에게 약속한 돈이다. 몇 년전 병으로 죽은 엄마의 약값 때문에 빚이 있는 사오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렇게 사오리는 게이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발을 들여놓는다. 처음 만난 양로원의 게이 할아버지들은 엽기적이다. “못난 게 뚱해있으면 늙은 호모보다 미움 받는 거야”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가 하면, 성적인 농담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사오리는 낯선 환경에 당황하지만, 이 공간에서 게이, 호모 같은 단어들은 왠지 불편하지가 않다. 게이가 여전히 ‘특별한 사람’인 바깥세상과 달리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게이 역시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그냥, 사람이기 때문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는 다양한 욕망이 존재한다. 바깥세상에서 비웃음을 살 법한 것들이 이 안에선 자연스럽다. 분홍 머리의 트렌스젠더 루비는 드레스를 입고 초록색 눈화장을 한다. “피키피키피키!” 만화 영화 속 캐릭터의 변신 주문을 외치는 그는 마치 소녀 같다. 야마자키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셔츠 주머니에 꽃 자수를 새겼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에게 용인된 것은 거기까지다. 셔츠에 꽃 자수를 놓는 정도. 하지만 사실 야마자키의 옷장은 그가 입고싶은 화려한 드레스와 악세사리로 가득 차있다.한 번도 드레스를 입고 외출한 적은 없지만, 그는 죽을 때 입을 드레스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함께 생활하면서 사오리와 메종 드 히미코의 사람들은 서로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야마자키는 사오리에게 처음으로 그의 비밀 옷장을 공개한다. 사오리는 야마자키의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바니걸 코스튬을 입는다. 예전 아르바이트 사장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던 옷이다. 야마자키 역시 죽을 때 입으려던 드레스를 꺼내 입는다. 어울리는지의 여부나 사회적인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매력적인 여성에게만 허용되는 바니걸 코스튬을 입은 ‘추녀’ 사오리와 드레스를 입은 ‘게이 아저씨’ 야마자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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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오리와 히미코 ⓒhttp://asianwiki.com/La_Maison_de_Himiko



  세상에 상처받은 이들이 모여 만든 가족

  메종 드 히미코의 구성원들은 가족 같다.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누어먹고, 소소한 기념일을 즐긴다. 언뜻 그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랑과 가족의 기준이 정해진 세상에서 이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사연을 갖고 있다. 루비는 사오리에게 “어떻게든 남자로 살아보려고” 결혼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외치는 “피키피키피키!”는 손녀가 보낸 엽서에 적힌 마법의 주문이었다. 이혼 뒤로는 손녀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그는 손녀가 보내온 엽서를 보며 그녀의 작은 손발을 상상하는, 손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할아버지다. ‘트렌스젠더 할아버지’ 루비의 사랑은 사오리에게 ‘게이 아버지’ 히미코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을 사랑한 적 있었냐는 사오리의 물음에 히미코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나는 너를 참 좋아한단다.” 그의 ‘좋아함’은 부성애같은 무겁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감정이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의 사랑은 참 순수하다. 평생 게이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아온 사오리는 조금 특별한 히미코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사오리는 병상에 누운 히미코를 향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외치지만, 사실 용서받을 사람도, 용서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메종 드 히미코

  메종 드 히미코의 새로운 가족인 사오리는 그들의 세계를 외부와 연결하는 다리 같은 존재다. 야마자키는 사오리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외출 한다.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 고치기’라는 평생의 소원도 이룬다. 그러나 여전히 메종 드 히미코는 보통의 세계에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이들은 주위의 불편한 시선에, ‘변태는 죽어라’라는 낙서로 담벼락을 뒤덮어버리는 사람들의 혐오와 차별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심장마비로 식물인간이 된 루비는 그를 돌봐줄 진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드레스를 벗고 눈화장을 지워야했다. 화장품과 사진들 역시 모두 태워졌다. 이렇게 ‘루비스러움’을 버리고 나서야 그는 메종드 히미코 밖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이 세계에 없는 듯한, 환상 속 공간인 듯한 메종 드 히미코에서가 아니면 이들은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없는 걸까. 희망은 있다. 히미코의 죽음 이후 사오리가 떠나고, ‘변태는 죽어라’라는 낙서가 쓰였던 담벼락에는 ‘사오리가 보고 싶어’라는 새로운 낙서가 생겼다. 게이 양로원을 향해 물대포를 쐈던 꼬마는 어느새 메종 드 히미코의 일원이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상한 듯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오리를 시작으로 메종 드 히미코를 향한 세상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 세계가 이질적이지 않을 그날까지, 이 발랄한 상호작용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