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호 > 문화
껍데기로 부활한 천년 고도 경주 경주문화재 복원의 현주소
등록일 2016.06.10 22:01l최종 업데이트 2016.11.22 02:18l 신일식 기자(sis620@snu.ac.kr)

조회 수:678

  ‘천년고도’ 경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다. 동시에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문화재 복원 사업이 계획되고 진행되는 도시기도 하다. 복원은 과거 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행위로 보존이나 수리보다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에 1964년 세계의 건축문화재 보존·복원 전문가들이 베니스에 모여 ‘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헌장(베니스 헌장)’을 만들었다. 해당 헌장은 ‘추정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을 멈춘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 제3조 역시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이 원형과 진정성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고민해야한다는 뜻이다. <서울대저널>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돼 온 경주 건축문화재 복원 사업의 현 주소와 타당성을 검토해봤다.



경주 문화재 복원 사업, 1970년대의 향수


  경주에서는 문화재 발굴·복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작년 11월 경주시가 배포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 시민발표용 자료’에 따르면 월성, 월정교,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 8개 주요 사업에 이미 약 1,935억원이 투자됐고 향후 7,515억이 추가 투자될 예정이다. 월정교의 경우 복원 사업이 2006년부터 진행돼 다리 부분이 완공됐다. 또한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에 대한 복원 기본 계획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월성, 신라방 지역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궁궐 복원이 계획돼 있다.


  경주에서 이 같은 대규모 복원이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9년부터 73년까지 진행된 불국사 복원은 한국의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실시한 최초의 대규모 건축문화재 복원이었다. 당시 불국사 복원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일단 문화재를 복원할 전문 인력이 부족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문화재 관리는 일본인 전문가에 의해 이뤄졌고, 독립 이후에 한국은 자체적으로 문화재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육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신라시대 목구조물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한국에 남아있는 최고(最古) 목조 건축물은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으로, 그 이전 시대의 구체적인 건축 양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러 제약에도 박정희 전(前) 대통령은 민족 문화 중흥과 관광 자원 개발 차원에서 불국사 복원을 강행했다. 1970년대 불국사 복원 사업의 명칭은 복원이 아닌 ‘불국사 정화 사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문화재 복원을 민족정기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봤기 때문이다. 한양대 건축학과 한동수 교수는 “부산-하관 페리선을 타고 관광을 온 재일교포들이 볼거리가 필요했는데 그들이 내리는 곳이 경주였다”며 불국사 복원의 동기 중 하나가 관광 수입 확보였다고 말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고(故) 김정기 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한국전통문화대 김동현 전(前) 석좌교수 등을 초청해 복원 사업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게 했다. 하지만 복원에는 상당한 무리가 뒤따랐다. 목구조물의 기초를 이루는 초석, 기단 등은 남아있었지만 그 외에 불국사의 건축물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다른 건물보다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알려진 비로전은 고려 중기 양식으로, 관음전과 무설전은 조선 시대 양식으로 복원됐다. 이외에도 청운교와 백운교 앞자리에 ‘구품연지’라는 연못 터가 확인됐으나 관광 편의와 공사 기일의 문제로 복원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한동수 교수는 “불국사 복원은 무리가 많은 복원이었지만 우리나라 복원 전문가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던 기회기도 했다”고 말했다.



월정교 복원 사업, 불국사와 얼마나 다를까


  과연 2000년대 이후 경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원 사업들은 불국사의 그것과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가장 먼저 시작된 월정교의 경우 다리 부분에 대한 복원이 완료됐지만 여전히 ‘원형’에 관해 논란이 있다. 경주 월정교는 신라 왕성과 남산을 연결하던 다리로 통일신라시대(760년)에 만들어졌다. 1280년 새롭게 고쳤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동경잡기》(1669년)에서는 이미 다리가 사라져 흔적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복원 전까지 월정교 터에는 4개의 교각(다리의 기둥) 밑받침과 다리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이는 석재 부재와 목재 부재, 장식물등이 남아 있었다.


사진 1_1.jpg

사진 1_2.jpg

▲ 월정교 발굴 당시 사진(위)와 복원 조감도(아래) ⓒ발굴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복원 조감도: '월정교 복원 기본계획 및 타당성조사 요약 보고서(2007)'


  월정교는 복원 설계 당시부터 증거들이 충돌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치다리인지의 여부다. 12세기 고려 문인 김극기의 시에는 ‘월성의 남쪽 토령가에 무지개 모양의 다리(홍교, 虹橋)가 그림자를 거꾸로 문천에 비추었네’라는 구절이 있다. 홍교(虹橋)는 아치모양의 다리를 뜻한다. 하지만 복원을 담당한 한국전통문화대 전통건축학과 장헌덕 교수는 “발굴 현장에서는 아치다리의 가장 윗부분에 들어가야 할 무지개 모양의 돌(홍예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장을 무시하고 문헌을 따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장헌덕 교수와 남시진 계림문화재연구원 원장(당시 복원 담당 사무관)은 중국의 다리들을 참조해 서로 다른 길이의 목재를 쌓아올려 평교(平橋)지만 아치다리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진 2.jpg

▲ 수원 화성 화홍문의 아치다리 모습. 무지개 모양의 석재들로 이뤄져 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


  이외에도 다리의 상부구조가 목재인지 석재인지,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문루(다리 양쪽에서 문의 기능을 하는 누각)를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현재 복원 담당자들은 월정교를 나무다리로 지었고, 양쪽 문루까지 함께 복원할 예정이다.


  중앙대 건축학과 이희봉 명예교수는 “이와 같은 복원 과정은 모두 추정”이라며 지금의 복원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치다리의 무지개 모양 돌은 누군가 다른 곳에 쓰고자 가져갔을 수도 있고, 중국의 다리를 참조해 신라 시대 다리를 복원하는 것에 별다른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동수 교수 역시 이와 관련해 “상부구조가 완전히 사라진 다리를 추정 복원한 것으로 어느 쪽이 맞다고 볼 확실한 근거가 없다”며 여전히 제한적 근거에 따른 무리한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 관료가 결정하는 문화재 복원


  복원 계획에 포함된 동궁과 월지, 월성, 신라방 등의 유적도 월정교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기초만 남아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불국사 복원이 이뤄졌듯, 광범위한 경주 문화재 복원 사업의 배경에는 정책 결정자들의 의지가 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2015년 취임 1주기 연설에서 “올해부터 세계 주요 역사도시에 걸맞는 수준의 복원과 정비를 통해 경주를 세계적 문화관광도시로 재도약 시키겠다”고 말했다. 작년 9월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경주 월성 발굴 현장을 방문하며 신라 왕성 복원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월정교 복원이 결정, 진행된 것은 2006년이 지만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과 같이 경주지역 전반에 대해 포괄적인 복원 계획이 기획된 것은 2015년의 일이었다. 한동수 교수는 “(적극적인 복원사업은)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가치관 변화라기보다 정책자들의 의지 변화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_3.png

▲ 월성 복원 조감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 시민설명회 자료(2015)'


  학술적 근거에 입각해 복원에 대해 조언해야 할 문화재 자문위원들 중 일부 역시 뚜렷한 복원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전통문화대 김동현 전(前) 석좌교수는 2013년 진행된 ‘동궁과 월지’ 자문회의에서 ‘불국사 복원 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대했었나. 결국엔 복원을 했다.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 국가의지가 문제고, 문화재청과 경주시의 문제다’고 말하며 문화재 복원 근거를 국가의지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해당 회의에서 ‘(문화재가) 하나의 상품이고 국가브랜드인 시대다. 그런 시대에 몇 사람이 (복원에) 반대한다고 반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궁과 월지 세부계획 및 기본설계》, 2014, 500~501p) 김 전 교수는 불국사 복원을 시작으로 주요 건축 문화재 복원에 참가해온 고건축학계 원로다.


  이희봉 교수는 “고건축학계는 70년대의 상황을 반성할 줄 모르고 오히려 이용하려 하고 있다”며 고건축 전문가들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재 복원에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문화재를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정책 결정자들과 이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현재와 같은 복원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구 보존과 복원 철학에 대한 고민 필요해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복원에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한동수 교수는 “유적 자체를 보존하면서 복원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적은 과거로부터 내려져온 문화재이지만, 복원된 건축물은 현대의 창작물인 만큼 유적 자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에서는 현대의 창작물과 유적을 구분해 건축물을 세우는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중국 낙양에 위치한 명당(明堂)의 경우 지하에 유적을 보존하고, 그 위에 동(銅) 구조물로 목조 구조물을 모방해 별도의 건축물을 세웠다. 새로 짓는 건물을 진정성 있는 건물로 보이게 하는 것을 포기하고, 실제 문화재인 유적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가벼운 재료를 선택한 것이다. 동 구조물과 유적 사이에는 투명한 판막을 설치해 관람객들이 유적을 볼 수 있게 했다. 다만 한동수 교수는 “해외에서 어느 방식이 채택됐다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에게 맞는 유적 보존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4_1.jpg

사진 4_2.jpg



▲ 동(銅) 구조물로 복원한 낙양 명당(왼쪽)과 유리를 통해 보호 중인 유적(오른쪽)

ⓒ한양대학교 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


  장기적으로는 복원 철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희봉 교수는 “우리나라 복원 계획서에는 복원을 어떻게 할지만 있고 어떤 경우에 복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며 복원 철학의 부재(不在)가 현재와 같이 근거가 불충분한 복원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연구소 고도보존육성과 이수정 학예사 역시 최근 발표한 ‘문화재 원형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적용상의 제문제’(《문화재지》, 2016)에서 ‘국내에서 원형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없다보니 국제적 원칙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국내 문화재의 보존관리환경에 맞게 소화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고 때로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문화재청에서 ‘원형’ 유지나 ‘원형’으로의 회복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정작 원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보니 그런 원칙들이 유의미한 문화재 보존·복원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제 전문가들은 이미 여러 차례 복원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왔다. 건축문화재 복원과 관련해 중요한 국제적 원칙 중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한 ‘베니스 헌장(1964)’이다. 해당 원칙은 ‘복원의 과정은 (...) 본래의 재료와 원래의 기록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베니스 헌장’에 따르면 원래의 재료와 도면을 찾을 수 없는 목조 건축물을 복원한 경우 진정성 있는 복원으로 인정받기 힘들다. 다른 한편 일본 나라에서 합의된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1994)’는 ‘문화유산에 부여된 가치에 대한 모든 판단은 문화마다 다를 수 있고 심지어 같은 문화 속에서도 다를 수 있다’고 밝히며 진정성에 관해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인다. 이에 대해 이희봉 교수는 “‘나라 문서’가 목조 건축물이 아무렇게나 복원돼도 좋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진정성에 관한 엄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 판단이 문화별로 다를 수 있다는 ‘나라 문서’는 섣부른 복원에 앞서 우리나라에 맞는 원형, 복원 등을 연구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한동수 교수는 “복원 개념 설정에 따라 우리 건축문화재가 모두 가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무렇게나 복원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적절한 수준의 복원 개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