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호 > 사회
미끄럼틀 대한민국, 해고가 곧 사형이 되는 나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해고를 생각한다
등록일 2016.06.11 18:58l최종 업데이트 2016.06.12 22:50l 곽성원 기자(sevenkwa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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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가 만연한 나라, 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어야 할 2009년 쌍용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는 오히려 정리해고 천국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일례로, 최근 위기가 들이닥친 조선업계에는 대규모 정리해고 바람이 구조조정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조선업계의 혁신을 위해 올해에만 15,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고용지원 대책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노동 4법 입법이 고작이다. 20092,646명의 정규직 인원을 해고했던 쌍용자동차 사태의 충격이 되려 무색해진다.


  고용노동부가 연구용역을 맡기고 한국노동연구원이 연구기관으로 참여한 연구보고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국제적 흐름’(2013)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집단적 정리해고가 쉬운 나라’ 3위에 올랐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정리해고 요건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해고가 가장 쉬운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집단해고 부문 고용보호입법지수는 1.9로 산출됐다. 이는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고, 이스라엘·포르투갈과 비슷한 최하위 수준의 수치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OECD 평균 수준이었으며, 일본·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은 집단해고 보호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한국의 고용보호입법지수는 1998년 이후 오랫동안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상해고 제도가 도입되고, 정리해고 기업들이 주장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법원이 폭넓게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굳어진 결과다.


  한국이 정리해고 천국이 된 데에는 정부의 기여도 크다. 근로기준법상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정의를 명확히 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20138)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기준이 추상적이지 않고 국제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해고대상자 선정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권고에는 모든 사업장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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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고용보호 보고서 (2013)

 

 

사용자에게 유리한 한국의 정리해고법


  “근로기준법이 추상적이지 않고 국제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제도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이 필요하다. 법무법인 위민 김남근 변호사에 의하면, 독일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의 해고제한법에서는 해고회피노력요건이 정리해고의 효력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한다. 해고회피의 노력은 고용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서 조업단축, 근로시간 단축, 인력의 재배치 등이 포함된다. 김 변호사는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해고회피노력이 불충분했을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해고가 무효가 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기준의 선정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협의라는 정리해고의 네 가지 법적 요건 중에서 유독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만을 강조해왔다. 특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관한 2014년도 대법원 판결은 해고회피노력에 관한 사용자의 의무를 크게 완화해주는 것이다. 서울고법 2심 판결의 경우 해고회피의 노력을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회피노력과 유지하는 회피노력으로 구분해, 후자에 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어 두 노력을 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전제했다. 대법원은 사측이 시도했던 사내협력업체 인원축소, 희망퇴직 등만으로 해고회피에 대한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희망퇴직은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되거나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근로자들에게 한정돼 주로 실시되는 것이라며 일반퇴직금만 주는 정리해고 대신, 추가적인 금전적 보상을 주는 희망퇴직을 선택해 근로자가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유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희망퇴직은 사실상 근로자에게 해고를 강제하는 것이며, 해고 자체의 회피수단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례의 차이는 한국과 해외기업의 구조조정 간에 있어서도 상이한 결과로 이어진다. 1993년 독일 폭스바겐사는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행하게 됐다. 폭스바겐사는 정리해고를 선택하는 대신에 근무시간을 법정 35시간에서 22.8시간으로 줄이고 다양한 교대제 근무를 도입하는 조업단축을 선택했다. 노동자들 또한 임금삭감을 감수해야했지만 정리해고의 대안으로 받아들였고, 독일 정부는 조업단축기금에서 근무시간 단축으로 줄어드는 임금의 50%를 지원했다. 독일법은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해고회피노력이 불충분할 경우 애초에 정리해고가 불가능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의 경우, 사측의 진정성 있는 해고회피노력은 거의 전무했다. 영업직군으로의 인력재배치, 무급휴직 등의 방안은 77일간의 장기파업 후에야 비로소 도입됐다. 아울러 노동조합이 8시간 2교대근무를 5시간씩 32교대로 전환하는 조업단축 방안을 제시했고, 정부도 조업단축을 할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적용되지 않았다. 쌍용차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받거나 조업단축 또는 무급휴직 등을 실시할 수 있었음에도, 정리해고를 강행했던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현재 법원의 판례가 정리해고의 적법성을 판단할 때 해고회피노력보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더 강조하고 있는데서 기인한다.


  김태욱 변호사는 정리해고에 대한 파업은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그 자체로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보통 각종 업무방해, 손해배상 등의 죄목을 추가적으로 적용받는다. 이를 악용하는 사용자는 정리해고 싸움에 있어 버티면 이긴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김 변호사는 정리해고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도 정말 어쩔 수 없을 경우에 하는 최후적 수단이 되어야한다그러나 현행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정리해고를 쉽게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해고 필요해


  사회적 지원계획(Social Plan)이란 해고 후에 직업훈련이나 직업알선, 직업훈련기간 중 임금보전 등을 통해 해고예정자의 이직이나 해고자의 재취업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스웨덴 등의 경우 이러한 사회적 지원계획을 정리해고 전에 수립해 정부에 제출하고, 정리해고와 동시에 지원을 시행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용자가 대량해고를 할 경우 행정관청에 단순한 신고만 하면 된다.


  2008년 볼보자동차 정리해고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대조는 이러한 입법례의 차이를 보여준다. 2008년 볼보자동차가 두 차례에 걸쳐 2,900명의 인원을 감축했음에도 노동자들의 장기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볼보자동차의 경우, 스웨덴 정부의 지원 하에 적극적으로 해고자들의 이직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국영 직업안내소는 볼보자동차 회사 내에 전직지원팀을 꾸려 직업훈련, 인터뷰훈련 등과 함께 스웨덴 전역과 유로경제권 전체를 상대로 직업알선을 추진했다. 1년 동안 2,635명의 전직을 지원했고, 이중 1,556명은 볼보자동차의 경영이 정상화됨에 따라 재고용됐다. 반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경우, 77일간의 파업을 통해서 이직지원계획이 마련됐으나 사후적으로 계획된 것이었으며, 그마저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다. 한국사회정책학 22호에 실린 이승윤과 김승섭의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와 미끄럼틀 한국 사회(2015)‘ 연구에 따르면, 정부 차원의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구직을 성공했느냐는 질문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10명 중 10(9.1%)만이 성공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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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김승섭(2015),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와 미끄럼틀 한국 사회’





  이에 대해 김남근 변호사는 프랑스와 같이 사용자가 정리해고 신청과 동시에 전직지원훈련 제공, 우선적 재고용 의무 등의 계획을 제출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지원계획은 해고에 대한 개념을 전환하는 것이다. 단순히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근로자를 내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생존권을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해고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3.pngⓒ프레시안 

 

미끄럼틀 대한민국, 해고가 곧 사형이 되는 나라


  이승윤과 김승섭은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와 미끄럼틀 한국 사회' 연구에서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 이후 해고자들의 6년간의 삶을 보여주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 이후 어떻게 미끄럼틀식 사회경제적 추락을 경험하는지 분석했다. 노동자들은 해고 직후 즉각적으로 소득이 급격히 감소했다. 6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연 소득 2000만원 미만에 머물러 있는 해고자가 무려 70%를 차지했으며, 이들은 아웃소싱, 일용직, 영세자영업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아울러 고용보험과 구직급여직업훈련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이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이 현금급여 중심의 정책인 반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직업훈련, 전직지원 등 서비스 중심의 재취업정책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정리해고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근로자에게 해고는 곧 사형과도 같음을 방증한다. 한국에는 근로자가 해고된 후에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내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와 경영계는 오히려 고용 유연화를 일관되게 얘기해왔다. 덴마크 등 북유럽 모델을 따라 저성과근로자를 해고하는 일반해고를 도입하고, 소위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할 때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현지 교수(사회학과)에 의하면 이는 덴마크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에서 유연성(flexibility)’만 가져오고 안정성(security)’은 배제하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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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09), <유럽의 고용안정 정책 및 시사점>



  덴마크는 1993년 사회민주당 정부의 주도 하에 노동시장 개혁을 이뤄냈고, '유연안정성 트라이앵글 모델'을 정착시켰다. 이 모델에서는 유연한 노동시장, 관대한 실업 급여, 그리고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룬다. 권현지 교수는 덴마크 모델에서는 노동 시장이 유연하지만, 관대한 실업 급여를 통해 해고자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기술 향상 및 직업 훈련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정부는 실업자에게 2년간 기존 월급의 최대 90%에 달하는 실업보조금을 지급하고, 2년이 지나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업보조금의 약 70%에 해당하는 생활자금을 사회보장기금에서 지급한다. 이에 추가적으로 결합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자의 기술을 보충하고 적합한 직장을 알선하여 실업자들이 노동시장에 재빨리 재진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삼각형의 세 축 중 관대한 실업 급여는 실업자 보호, 적극적 노동시장은 실업자의 시장 재진입을 각각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덴마크에서는 평균 80%의 해고근로자들이 재취업한다. 권 교수는 결국 덴마크 모델은 쉬운 해고보다는 적극적 이직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해고된 근로자에게 실업급여는 기존 월급의 50% 수준으로 90~240일 동안 지급되며, 부분적으로 도입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덴마크의 이러한 사회 안전망은 47.7%라는 높은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에서 기인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25.9%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애초에 사회복지시스템이 상이한 덴마크 모델을 우리나라와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 김남근 변호사는 안정성이 생략된 유연안정성 모델은 있을 수 없다한국처럼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국가에서는, 적어도 고용에서라도 안정성이 담보돼야한다고 말했다.


  굳이 일반해고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이미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 굉장히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 기업은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를 얘기하며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남발했고, 법원은 이를 지속적으로 폭넓게 인정해줬다. 한국에서는 유연한 노동 시장만 있고, 관대한 실업 급여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은 없는 셈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대한민국에서 해고는 곧 사형과도 같다. 경영자의 재량권과 근로자의 생존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권리인가? 답이 명백한 질문에 대해 대한민국은 지금 침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