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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선정성 논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에게 묻다 “당신의 혐오는 그들의 탓이 아니다”
등록일 2016.06.11 22:18l최종 업데이트 2016.06.12 22:47l 정도윤 기자(doyoon12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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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Festival)’는 2000년 처음 시작돼 올해 17회를 맞이했다. 조직위원회(조직위)는 공식홈페이지에서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성소수자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인식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평했다. 축제가 성소수자들의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리행사(퀴어퍼레이드) 진행 중 일부 참여자의 의상 혹은 행위가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축제를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서울대저널>은 한국 퀴어문화축제의 발전상과 사회적 의의, 축제를 둘러싼 논란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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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  ⓒ 오선영 사진기자 



퀴어문화축제는 어떻게 시작됐나.

  세계적으로 퀴어문화축제(Queer Festival, Queer Pride)의 출발은 자신의 존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후 서구권에서 인권의식이 향상됨에 따라 피케팅과 거리행진 행사가 문화축제의 형태로 변모했으며, 한국에선 첫 회부터 전시·영화제·포럼 등을 함께 구성한 퀴어문화축제로 출발했다. 하지만 문화제의 형태로 변화했다고 해서 저항의식이 사라졌다고 봐서는 안 된다. 퀴어문화축제의 불변하는 가치는 ‘성소수자의 자기 존재 드러냄’이라는 ‘존재 가시화’를 통한 저항의식에 있다.


‘성소수자의 자기 존재 드러냄(가시화)’이란 무엇인가.

  자기 존재 드러냄이란 사회에서 억압되고 없는 존재로 치부되던 성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퀴어문화축제의 일차적 목표는 소수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 장에서 축제 참여자는 개인으로서 피케팅 및 퍼포먼스 등을 통해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고, 부스 참여와 거리행진을 통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즐길 수도 있다. 성소수자들은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경험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당당함을 한껏 고양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더불어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사회와의 소통, 평등한 사회권 보장을 위해 성소수자 차별 철폐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를 시민공동체에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다.


한국 퀴어문화축제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왔나.

  축제 참여 인원수와 예산 규모 면에서 확대가 이뤄져 왔다. 2000년 제1회 퀴어문화축제 당시 퍼레이드 기준 참여인원은 100명 정도였는데, 2015년 16회 퍼레이드에는 3만 명이 참여해 인원이 크게 늘었다. 예산 역시 100만원에서 작년 1억 6천만 원 정도로 확대됐으며, 올해는 거리행사 예산으로만 6천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규모가 커진 만큼 더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퀴어 영화, 만화 등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환경조성사업에 당분간 주목할 생각이다. 

  슬로건에도 변화가 있다. 슬로건은 매해 성소수자가 직면한 사회현실 문제를 반영해 정해진다. 초창기에는 ‘한 걸음만 나와봐, 놀자∼’식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내걸었다.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소수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즐길 수 있는 장소에 나와 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혐오·차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근 몇 년간은 사회에 직접적으로 던지는 저항의 메시지가 반영된 슬로건을 채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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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제16회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일반참여자들이 거리행진에 동참하고 있다.  

ⓒ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이번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Queer I am’이며 부제는 ‘우리 존재 파이팅’이다. 어떤 의미인가.

  올해 슬로건과 부제가 2015년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 2014년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보다 저항의미가 약하다는 비판여론이 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언어폭력이 지속돼온 상황에서 우리 존재에 대한 알림이 다시 한 번 부각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2~3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보수기독교 세력의 혐오발언이 이어졌으며 특히 이번 총선 때 몇몇 국회의원들의 성소수자 차별발언이 있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공격받지 않고 안전히 살아갈수 있다고 볼 수 없다. Here I am을 변형한 Queer I am은 “여기 내가 queer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시화하고 사회에 알리자는 의미다. 혐오세력의 목소리에 지쳐버린 성소수자 내부의 힘을 돋우기 위한 것일 뿐, 차별에 대한 저항을 멈춘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해 퀴어퍼레이드에서 속옷차림으로 행진에 참여한 일반인, 부스에서의 여성 성기모양 쿠키 판매로 선정성 논란이 있었다.

  노출은 앞서 말한 자기 드러냄의 한 방식이다.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당당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선정적이라는 혐오발언은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이지, 몸을 드러낸 그가 선정적인 것이 아니다. 즉 바라본 대상에 자신의 생각을 덧씌우는 것이다. 여성이 몸을 노출하는 것이 자신이 성폭행당하거나 타인에게 희롱당할 이유가 아니라는 슬럿워크(Slut walk)*운동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가 사회에 대한 저항·집회의 성격을 갖는 퀴어퍼레이드 공간 맥락에서 노출의상을 입는 것은 가시적인 시위형태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얻을 만족을 위한 것이다. 슬럿워크에 참여한 여성의 노출의상을 선정적이라고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출은 선정적이라고 낙인찍혀선 안 되고 사회 저항 의미로 해석돼야한다.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노출을 가로막으려 하는 것은 폭력이다.

 *슬럿워크(Slut walk)
  2011년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에서 열린 안전포럼에서 경찰관 마이클 생귀네티가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슬럿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한 말이 성폭행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시작된 사회운동.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한 슬럿워크는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슬럿처럼 입을 권리’를 포함한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여성 성기모양 쿠키는 행사에 참여한 ‘보지파티’라는 단체에서 판매한 것이다. 조직위는 부스 참여팀에 대해선 전반적인 컨셉이 다양한 축제 콘텐츠 구성에 걸맞은지, 부스가 일반 참여자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지만 판단할 뿐, 세부적으로 무엇을 판매할지까지는 통제하지 않는다. 또 이 논란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 중 성(性)이 터부시되거나 불편한 것이며, 숨겨야하는 부분이라고 보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스스로 거북하다 하여, 자신이 가진 성기에 대해 발언하고 표현하는 사람의 행동을 막고 비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참여자들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없는 것인가.

  물론 가이드라인은 있다. 당일 행사 진행 내용과 그에 수반될 위험성을 고지하며, 참여자의 연출 중 현행법상 일정 부분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경범죄에 저촉될 ‘과다한 노출’은 피해달라는 것이다. 축제는 ‘성소수자가 어느 존재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제한을 한다든가, 특정 목소리만 내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퀴어문화축제는 표현의 장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장이다. 따라서 어떠한 표현이든 가능하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조직위는 축제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원하는 가장 다양한 것을 담아내고 드러내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왜 퀴어문화축제 특히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선정성 논란이 일어났다고 보나.

  퀴어문화축제는 영화제 및 파티 등 여러 행사로 이뤄진다. 그 중 퀴어퍼레이드는 일반인 참여자가 가장 많은 행사이며, 거리행사다 보니 여러 언론과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쉬운 것 같다. 

  우리는 이미 공공의 장에서 상품화된 형태의 노출을 자주 접한다. 대중은 그러한 노출에 익숙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노출 의상을 입은 당사자의 존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독 퀴어퍼레이드만 노출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이는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이 성소수자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결부됐기 때문이다. 

  이성애중심 사회의 구성원들은 퀴어 정체성(being queer)을 본인들과는 구별되는 특성으로 여기고, 성소수자 집단을 차별적으로 바라본다. 성소수자의 개별 행동에 대해서는 성소수자 그룹으로 묶인 전체 구성원의 행동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소수자 중 누군가에 불만이 생기면 사람들은 성소수자 전체를 비난하고, 그 비난의 근거를 성소수자의 존재하지 않는 집단특성에서 찾으려 한다. 어떤 사람의 특정행동에 대해 우린 그가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런 의상을 입었다는 생각’ 혹은 ‘선정적이라는 주관적인 느낌을 성소수자 존재에 덧씌움’으로 이어지며 존재 혐오로 발전한다.


이런 선정성 논란이 성소수자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를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축제에서 무료급식이나 사회봉사를 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성소수자들이 사회에 도덕적이고 건전하다는 식으로 잘 보여야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인가. 성소수자는 사회의 판단 이전에 존재한다. 노출을 비롯한 참여자들의 다양한 자기표현을 막아선 안 된다는 조직위 입장에서, 굳이 사회에 잘 보이기 위해 축제를 구성하진 않는다. 

  누군가는 퀴어퍼레이드를 보고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싫다면 싫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혐오세력 혹은 다른 사람의 혐오 판단과 무관하게, 굳이 칭찬받을 일을 하지 않아도 성소수자는 존재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나와 다르다 해도 공격하지 않고 배척할 수 없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등사회가 건강한 민주사회일 것이다.


퀴어문화축제 일부 참여자의 표현방식을 두고 성소수자 전체를 비난하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퀴어’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기 때문에, 비성소수자 역시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가 특정 집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 축제현장을 찾아 본인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방식 중에 노출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참여자의 목소리이자 퀴어문화축제의 내용의 일부이지, 그것이 성소수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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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제17회 퀴어문화축제는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 거리행사로 시작해, 같은 날 세빛섬에서 메인파티가 진행되고, 6월 16~19일 신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에서 퀴어영화제로 끝을 맺는다.  ⓒ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궁극적인 목표는 성소수자들이 사회에서 덧씌우는 불편함 없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본인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직 꽤 많은 성소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사회가 바라는 모습에 따라 개인을 억누르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 낼 장소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성소수자들은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성소수자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슈화를 통한 사회 인식의 변화 없이는, 그는 평생 사회에서의 모습과 개인의 진정한 존재를 구별하고 감추며 살아야할 것이다. 일상 속에서의 성소수자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해 퀴어문화축제는 끊임없는 가시화, 자기 존재 드러냄을 통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