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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심은 너의 관심만큼 가치가 있다
등록일 2016.12.10 01:45l최종 업데이트 2016.12.15 12:52l 오선영 기자(glucose2pyruva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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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가 안락사당하는 것은 불쌍하다. 바퀴벌레가 짓눌려 죽는 것은 징그럽기만 하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똑같은 생명인데 죽음에는 위계가 있다고 느낀다니! 아무리 바퀴벌레가 더 작고, 소리도 낼 수 없고, 더 무력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이 작고 가련한 바퀴벌레의 죽음보다 강아지의 죽음을 더 불쌍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바퀴벌레보다 강아지가 우리와 더 닮았기에 강아지에게 더 연민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사람들은 자신과 더 가까운 대상에게 더 공감하는 것이다.

  마음을 쓰는 일은 어렵고 힘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의 일, 내가 겪은 일과 비슷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 그런데 최근엔 각종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까지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때때로 “넌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유기견 보호소 취재 과정에서 “사람들이 유기견 문제에 별 관심 없는 거 보면 무책임하단 생각도 든다”는 넋두리를 들었다.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유감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을 모종의 ‘죄’로 여기고, 자신은 ‘의식 있는 시민’으로 자평하는 태도가 읽힌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다른 사회문제에 신경을 쓴다. 각자가 관심 있는 영역이 다른 만큼,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유기견 문제에 관심이 없어도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유기견 문제에 열정을 쏟더라도 장애인과 성소수자 차별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 있다. 모든 사회문제를 같은 정도로 신경쓰는 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사고일 뿐, 인간에게는 그럴 능력도, 그럴 의무도 없다. 한 가지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에너지가 들지 않는가.

  <서울대저널>은 사람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 다양한 문제를 많이 다룬다. 유기견 보호소 역시 많은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독자의 무관심을 비난하고 관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바라는 것은 기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 문제에 공감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문제가 공론화돼 하루빨리 해결의 빛을 보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독자를 탓할 이유는 없다.

  자신에게 가까운 문제를 더 신경쓰는 것은 비난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내 주변의 일들, 나에게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에 가장 먼저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이 ‘죄’로 여겨진다면, 어떤 사회 변화도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타인의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용인 가능하지만, 타인의 무관심을 단죄하고 그들의 관심을 나의 관심보다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행동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나의 관심은 너의 관심만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