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호 > 문화
"문학은 성착취를 합리화하는 언어가 아니다" #문단내성폭력 #화난여자들
등록일 2016.12.12 11:43l최종 업데이트 2017.01.06 16:55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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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가해자를 고발하는 ‘해시태그 성폭력 말하기’ 운동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이뤄졌다. 첫 발단은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 태그였다. 지난 10월 19일 한 트위터 이용자가 미성년자 시절 성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웹툰 작가 이자혜 씨가 이를 방조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이자혜 씨는 직접 혐의를 인정했고, SNS상에 ‘#오타쿠_내_성폭력’이란 해시태그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해시태그 성폭력 말하기 운동은 문단, 출판계, 미술계, 영화계 등 다양한 예술 분야로 퍼져나갔다. 미술계에선 함영준 큐레이터가 여성 작가들 및 학생들을 성희롱·성추행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함 씨가 이를 인정하며 큐레이터 활동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함 씨가 평소 여러 지면에 여성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게재해왔기 때문에 파장은 더욱 컸다. 이후 20명에 달하는 미술인의 성추행 내용이 고발됐으며, 미술계 내 성폭력 피해 내용을 한 데 모은 SNS 계정과 온라인 사이트가 개설됐다. 영화계에서는 문단이나 미술계처럼 실명을 거론한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여성 감독, 여성 스태프의 폭로에 의해 영화계 내 성차별 이나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전 스태프와 배우를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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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의 경우 박진성 시인과 박범신 소설가에 대한 의혹이 SNS상에서 가장 먼저 제기됐다. 지난 10월 19일 한 트위터 이용자가 미성년자 습작생 시절 박진성이 자신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고 강압적으로 신체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박범신은 출판계 여성 편집자와 여성 방송작가, 여성 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여성 종사자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곧이어 배용제, 김도언, 이준규, 이이체, 황병승 등 다른 시인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 고발이 터져나왔다. 특히 배용제에게 문학 강습을 받았던 습작생 6인은 트위터 계정 ‘고발자5’를 만들어 배용제가 문단 내 위계와 교권을 내세우며 성희롱·성추행·강제성관계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트위터 계정 ‘화난여자들’은 “김도언에게 성적 농락과 추행, 언어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을 당한 피해 여성들의 모임”임을 밝히며 현재까지도(2016년 11월 29일 기준) 김 씨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문단 권력’과 성차별적 문화로 가려져온 성폭력


  문단 내 성폭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 고발이 더 많이, 활발히 이뤄졌다. SNS상 성폭력 고발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김현 시인이 계간지 ‘21세기문학’의 가을호에 한국 문단의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됐다. 김 씨는 복수의 남성 문인들이 젊은 여자 후배를 대상으로 성희롱·성추행을 일삼는다고 폭로하며, 이는 “문단 사람이라면 대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에 대한 기록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역시 SNS를 통해 “그동안 문단 내 여성혐오가 관대하게 보호돼왔음”을 인정하며 이제라도 이런 문화를 타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여러 증언들이 문단 내 여성혐오적 관행이 일상화돼있음을 뒷받침한다. 여성 소설가 A 씨는 “처음 등단했을 때 여성작가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수많은 성희롱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남성 중견문인들이 술자리에서 후배 여성작가들을 대상으로 ‘따먹고’ 싶은 순서를 매기거나 이들과 맺은 성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며 상대 여성을 ‘걸레’라고 칭하는 일 등을 목격해왔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원로 문인이 있는 술자리에서는 암묵적으로 젊은 여성문인이나 편집자가 그의 옆이나 맞은편에 앉아야 하고, 심지어는 직접적으로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A 씨는 이 과정에서 원로 문인이 여성 문인의 신체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여성 소설가 B 씨는 후배 문인과 남성 원로 문인이 동행하는 경우 “원로 문인을 수행하는 일이 일방적으로 젊은 여성 문인에게만 부과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B 씨는 “‘P 선생님은 양옆에 여자를 꼭 끼고 다녀야만 한다’는 소문을 실제로 확인하게 됐을 때 절망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B 씨에 따르면 편집인 L 씨의 소개로 원로 문인 K 씨가 있는 술자리에 초대됐을 때, B 씨는 자연스럽게 K 씨의 옆자리로 안내됐었다. 이것에 대해 B 씨가 L 씨에게 의문을 표하자, L 씨는 “그래야 내 기가 살지”라는 말로 응수했다. B 씨는 이러한 관행이 일상화된 분위기에서는 자신이 받은 성희롱·성추행·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단 내 일부 남성 작가와 평론가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문화예술계가 “기존 예술인의 평판, 소개, 네트워크와 같은 무형의 권력이 예술가 개인의 역량보다 결정적”인 경향이 있어 “신인은 섹슈얼리티 착취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문단 또한 예외는 아니다. A 씨에 따르면 문단 내에는 특정 출판사에 시집을 낸 작가들과 평론가로 구성된 모임이 있으며, 여기에 속할 경우 지면을 더 얻을 수 있다. 여성 소설가 C 씨 역시 자신이 중소 문예지로 등단했으며, 자신과 같은 작가들에게는 “그러한 인맥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C 씨는 작품을 출간한 뒤 유명 평론가에게 ‘술자리에서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 C 씨는 ‘술자리’에서 종종 여성 문인을 대상으로 성희롱·성추행이 자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평론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문학상을 의식해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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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은 트위터 계정 '고발자5'에 대한 지지 성명 및 

가해지목인, 문인단체, 출판사에 대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문단 밖에 있는 습작생에 대한 착취는 더욱 심각하다. 습작생 역시 문예창작과 입시나 등단을 준비할 때 문인과의 인맥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트위터 계정 ‘고발자5’에 따르면 배용제 시인은 고양예술고등학교(고양예고)에서 강사로 재직할 당시 강습에서 성희롱 발언을 일삼거나, 습작생을 작업실로 불러내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음도 불구하고 재직 당시 이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양예고 졸업생 정유진 씨는 “외부 강사로 초빙됐던 문인의 입김이 백일장 입상이나 대학 입시에 있어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어서 “강사의 호감을 얻기 위한 학생들 간 경쟁이 형성됐고, 강사의 성희롱·성추행 사실은 자연스럽게 차치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졸업생 문태영 씨 역시 “강사의 잦은 성추행으로 고민하던 친구를 외면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예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D 씨 역시 “학교에 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성폭력 피해를 목격하거나 접해도 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해자의 사과 번복, 문인단체·출판사의 책임 회피… 해결은 어디로?


  가해자로 지목된 몇몇 문인들은 SNS나 블로그에 사과문을 게재하며 절필을 선언했다. 박진성은 논란이 된 언행을 시인하며 출간 예정이던 작품을 철회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박범신은 트위터에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죄일지라도..누군가 맘 상처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삭제하고 수정된 사과문을 다시 게재했다. 배용제 역시 본인의 위계를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시인하는 사과문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이체, 김도언 등의 다른 시인들 역시 혐의를 인정하고 예정돼있던 출간을 취소하는 식의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해지목인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박진성, 김도언 등은 사과문의 내용을 몇 차례 번복했다. 박진성은 앞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던 것과 달리 11월 9일 다시 사과문을 올리며 “제기된 모든 폭로 내용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었”고 “강제적 성관계는 없었다”고 수정했다. 김도언은 모든 SNS를 탈퇴, 절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후에도 SNS 계정에 자신을 변호하는 글을 몇 차례 더 올렸다가 삭제했다. 트위터 계정 ‘화난여자들’에 따르면 김도언은 해당 계정에 개인 메시지를 보내 폭로를 그만 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박범신, 배용제 등은 사과의 내용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B 씨는 박범신이 가해 사실을 정확히 언급하고 이를 시인한 후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빛나리 고양예고 졸업생 연대 ‘탈선’ 대표는 배용제의 사과문에 포함된 ‘사실이 아니지만’이라는 표현이 본질을 흐린다고 말한다. 더불어 오 대표는 본인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숙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본인이 자행한 폭력을 침묵으로 유지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화난여자들’과 오빛나리 대표는 모두 가해지목인이 “고발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시도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하고 “어설프게 절필을 선언하는 대신 진정으로 사죄”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어지는 성폭력 고발에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와 한국작가회의도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작가회의는 홈페이지에 “SNS에 우리 회원과 조직 이름이 성추문과 한데 묶여 거명되는 사태를 지켜보는 심정이 참담하다”며 사실관계 확인 후 “자격 정지 또는 제명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문학과 지성사 역시 문학적 권위를 악용한 문인에 대해 “향후 출판 계약 체결 중단, 계간지 원고 청탁 중단에서 기 출간 도서 절판”에 이르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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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입장문 ⓒ한국작가회의



  그러나 오빛나리 대표는 이와 같은 대응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작가회의가 “‘문단 권력’에 구체적인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회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단 권력에 대한 자성과 비판을 수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또한 해당 입장문에서 개별 사건들을 ‘일부’ 문인의 ‘성추문’으로 일축한 것 역시 비판 했다. 그는 문학과 지성사가 한국작가회의와 마찬가지로 “개별 가해지목인만을 커뮤니티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문단 내 성폭력을 근절하려면 가해지목인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문단 권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문학과 지성사 관계자 E 씨 역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에 출판계에서 자행되던 성폭력에 관한 내용 역시 포함돼있었던 만큼 문학과 지성사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예술계 안팎 성차별적 문화 돌아보게 한 해시태그 성폭력 말하기 운동

 

  한편 SNS를 통한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운동이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무분별한 고발이라는 비판도 일어났다. 성폭력 고발 중 가해지목인의 성적 취향 등이 불필요하게 공개될 수 있고, 작품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문인에게 절필이 가혹한 처사일 수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화난여자들’은 가해지목인 김도언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문’ 을 요구했을 뿐 절필을 선택한 것은 김도언 자신이라고 반박했다. 또 사회가 남성 가해지목인이 느낄 수치보다 피해 여성이 그간 느껴왔을 고통에 더욱 공감해야 하며, 고발 과정에서 피해자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음에도 이를 감수하고 고발을 이어나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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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온라인 지식백과'를 지향하는 '아름드리 위키'는 '#○○내_성폭력' 페이지를

마련했다. ⓒ아름드리 위키-위키독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운동은 문단 내 성차별적 문화를 반성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권김현영 씨는 예술계 전반에서 일어난 해시태그 말하기 운동이 “예술계의 여성혐오를 고발하고 성찰하는 장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권김 씨는 이와 같은 흐름이 “폭력적인 조직문화를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우선 SNS상에서 이뤄진 고발이 아카이브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위터에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내용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계정이 생성됐다. 이처럼 기록으로 남겨진 성폭력 고발은 문단뿐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문화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