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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예술 안 낯익은 우리 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6'展
등록일 2016.12.12 12:04l최종 업데이트 2016.12.15 12:53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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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작가상’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정례전시로 매년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인 작가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작품 활동을 지원한다. 올해로 5회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대표 수상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 심사는 추천받은 작가 8인 중 심사위원회가 4인의 작가를 선정하고, 최종적으로 수상자 1인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시는 8인의 추천 작가 중 선정된 4인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올해는 김을, 백승우, 함경아,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의 4팀이 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1, 2전시실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김을은 관객이 출입할 수 있는 2층 크기의 구조물을 건축해 예술가의 작업실을 표현하고, 1,500여 개의 드로잉을 벽면에 걸어 은하계를 표상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백승우는 사진들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밝기와 크기를 조절하는 등 다양하게 재가공해 기존의 사진들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한편 함경아와 믹스라이스는 이주(移住)라는 보다 구체적인 사회현상에 주목했다. 함경아는 탈북을 주제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조각을 선보였고, 믹스라이스는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이주하게 되는 인간과 여기저기 이식되는 식물의 운명을 함께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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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의 '갤럭시'는 크고 작은 드로잉으로 구성돼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백승우는 본인을 ‘픽처그래퍼’라고 밝힌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사진으로 옮기는 전통적인 ‘포토그래퍼’의 역할을 거부하고, 대신 이미지들을 새로이 분류, 변형해 스스로 맥락을 만들어간다. 그의 작품 ‘betweenless’는 여러 사진의 특정 부분을 확대한 이미지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제목 그대로 이 이미지들에는 초점을 맞춘 대상을 제외하고 주변 맥락이 없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그가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고뇌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이렇듯 백승우는 정확하고 엄밀한 사진에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백승우의 작품을 보며 관객은 사진에 절대적인 진실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어쩌면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다고 생각되는 것에서조차도 그가 사진에 새긴 것처럼 ‘everything is purged’, 즉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을 수 있다. 절대적인 진리와 기준은 결국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교묘히 표방하는 ‘이미지들’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을의 작품은 현실에서 진실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예술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실에 마련된 구조물 내부와 구조물 밖 벽면에는 1,500여 개에 달하는 그의 드로잉이 배치돼있다. 드로잉은 김을이 거대한 현실에 끊임없이 충돌하며 생긴 흔적들로서, 회화뿐 아니라 타이포그래피,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을 가진다. 드로잉 위에 쓰인 텍스트는 김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김을은 ‘그림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직접 드로잉으로써 현실에 부딪히는 방법을 택하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회화적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 그는 ‘그림 뒤에서 검은 개가 웃고’ 있는 듯한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고, ‘예술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벽면에 걸린 크고 작은 드로잉은 전체적으로 은하계의 모습을 띤다. 작가가 현실에 민감히 반응하며 만들어낸 드로잉들은 결국 거대한 ‘우주’가 되는 셈이다.


  함경아와 믹스라이스는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함경아는 탈북과 관련한 작업을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색깔의 소형 축구장 구조물인데, 이는 축구선수가 된 탈북소년이 여러 색깔의 물감이 묻은 공을 자유롭게 차면서 완성해낸 작품이다. 한편 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위장할 때 사용되는 카무플라주(camouflage) 패턴 중 일부를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축구장과 조각은 모두 아름다운 외형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지만 관객은 곧 그 뒤에 감춰진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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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라이스의 '창'. 실크스크린 뒤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직접 채집한 식물의 형태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믹스라이스는 다양한 이주의 형태에 주목하며 취업, 학업, 재산증식 등 다양한 이유로 이주하는 인간과, 개발로 인해 이식되는 식물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본다. 그에게 있어 식물과 인간은 모두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잊어버린 채 ‘지금’에만 표류하는 존재들이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받들어졌던 마을의 수호목이 재개발로 인해 신도시로 이식되거나 아파트에 둘러싸이게 된 모습은 실크스크린으로 표현돼있다. 댐 건설을 위해 수몰돼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 마을 앞에 함께 선 주민들의 사진은 이 나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피상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식된 식물과 이주한 인간의 발자취를 끝까지 추적한다.


  4팀의 작가가 선보인 작품은 건축물에서 회화, 사진, 조각,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실을 알 수 없는, 혹은 그것이 부재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치열하게 이에 부딪히며 결국 자기의 ‘우주’를 작품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4팀의 작가는 궤를 같이 한다. 작품들은 미학적으로 낯선 형태를 띠고 있는 것들이 많지만 관객들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카무플라주(camouflage)의 세계, 여기서 직접 ‘텍스트가 되어’ 끊임없이 충돌하며 흔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낯익고도 절실한 풍경이어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