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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혹은 시민, 청소년의 정치 교총, 전교조, 틴즈디모에게 만 18세 선거권을 묻다
등록일 2017.03.10 11:00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52l 이재은 기자(ssje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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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농단 사건 이후 청소년들은 정치에 많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고 정치 풍자물을 게시하는 등 그 모습은 다양하다. 이런 분위기를 계기로 선rj권 부여 연령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추세다. 지난 1월 임시국회 당시 만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하지만 반대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서울대저널>은 만 18세 선거권에 대한 찬반 핵심 논점들을 다루기 위해 ‘한국교직원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재혁 대변인(전교조), 청소년 단체 ‘십대들의 민주주의 틴즈디모’ 부석우 씨와 변지혜 씨(틴즈디모)를 만났다.



청소년의 사회적·정치적 권리 행사의 현주소는?


  교총 교내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이 많이 보장받고 있고, 학교운영위원회, 학생회 등의 학생자치조직을 통해 학생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 선거권이 문제가 아니고 청소년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느냐 자체가 중요하다. 문제는 청소년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않는 현행 제도다. 선거권 연령 하향 이전에 국회와 교육청 내에 청소년 위원회 등 사회에서 청소년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전교조 현재 청소년이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거의 없다. 학교 내외에서 청소년들의 권리 행사는 실질적인 차원이 아닌 교육당국의 보호 및 관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 학습 차원에 머무른다. 학생들의 의견이 아무 타당한 이유도 없이 학교장이나 교사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 역시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민주주의 학습 명목으로 시행하는 청소년 의회 등의 모의 학습 기구 를 통해서나 가능할 뿐이다.


  틴즈디모 청소년 참여 기구가 과연 없었냐고 묻고 싶다. 청소년 특별회의, 청소년 참여 위원회 등 기존에 청소년 자치 기구가 존재했고, 생산적인 이야기와 다양한 정책이 나왔을 테지만 고려되지 않았다. 왜냐면 청소년은 정치적 결정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 18세 선거권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책 건의나 참여가 효율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마련될 수 있다.

 


청소년은 아직 정치적으로 미성숙한가? 


  교총 청소년도 성인이 접하는 선거 유인물, 신문, 방송 및 공인된 여러 자료를 일부는 접할 수 있으나 그들과는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 아이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 비해 학생들은 정치적 접근 통로가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정보로는 올바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선거권 부여는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라는 의미인데 학교 안에 머무르는 청소년은 부족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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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단체 ‘십대들의 민주주의 틴즈디모’ 부석우 씨(좌)와 변지혜 씨(우) ⓒ최한종 사진기자



  틴즈디모 SNS나 인터넷의 발달로 성인과 청소년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에는 차이가 없게 됐다. 청소년들은 이미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충분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성숙함은 나이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정 당정책과 무관하게 특정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해 반대부터 하는 어른들도 많다.


  교총 선거권을 주기 전에 정치적 과정이나 민주시민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정치적 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더 마련해야 한다. 선거일에 학생들이 참관을 하도록 돕든지, 자유학기제에 정치 관련 교육을 한다든지 말이다.


  전교조 그런 발상의 이면에는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있다. 오만한 어른들의 관점이다. 이미 청소년들은 학교와 일상에서 정치와 사회를 많이 배우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이다. 우리 교육은 교실의 안과 밖을 단절한다. 학교에서의 배움은 이론만으로 남고 현실과 접합되지 않아 죽은 교육이 됐다. 정치적 기본권을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거권을 직접 행사해보는 것이다. 또 현행 교육은 졸업할 때까지는 학생들을 정치와 무관하게 두다가 졸업 후에는 정치적 인간으로 바뀌길 요구한다. 이런 구조에서 선거권 연령 하향은 학교의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해 학생들이 졸업 전에 정치적 소양을 쌓을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의 학제와 민법상 성년 기준은 선거권 제한의 근거가 되는가? 


  전교조 OECD 국가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나 민주주의 국가는 만 18세 선거권을 택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경우 만 16세도 선거권을 갖는다. 한국 청소년 또한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교총 해외와 우리나라는 학제가 다르다. 나이로 선거권 기준을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정치적 기본권을 행사하는 게 적절하다. 프랑스 등은 선거권을 주는 만 18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에선 학업 부담도 덜하고 정치활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정이 많다. 즉 정치적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려면 교육환경에 대한 비교도 종합적으로 돼야 한다.


  전교조 청소년 선거권을 반대하는 논리에는 학생과 비학생을 구분하는 구도가 있다. 학제 상의 신분이 권리 행사의 적격·부적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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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 ⓒ신일식 기자



  교총 권리를 가지려면 사회적 책임도 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그 책임을 인정하는 기준인 민법상 성인 연령은 만 19세다. 만 18세 선거권은 자칫 책임 없는 권리 부여가 될 수 있다.


  전교조 민법상 성년 연령과 선거연령이 같아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책임과 권리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개념이다.


  틴즈디모 오히려 청소년이 정치 결정권이 없었기에 생긴 결과에 대해 청소년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청소년 세대가 입시 전쟁, 취업난 등의 헬조선을 살고 있는 것이 사회적 책임의 사례이다.


 
입시 공부와 선거권은 함께할 수 없는가?



  틴즈디모 입시가 학생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정치는 아닌가? 정치야말로 일상에 밀접하게 맞닿은 것이다. 학생은 입시 기계가 아닌 한 명의 시민이다. 더구나 입시 제도는 바꿔야 할 대상이고, 정치는 삶이다. 굳이 입시와 삶을 선택하라면, 삶을 선택하지 않을까. 입시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 현실이 문제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학교의 수동적 교육은 과연 진정한 교육인가? 만 18세 선거권을 통해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배움과 사회 문제를 융합해 내면화할 기회를 얻는다. 덧붙여 선거 때문에 입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교총 현재 입시가 문제점이 많은 것은 맞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입 시험을 볼 수밖에 없다. 수능이 아니라면 사회진출을 해야 하는데 이 경로는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결국 입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선거권 도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입시 하에서는 정치 참여가 어렵 다. 또 학생들은 입시에 대한 불만과 정치적 판단을 이성적으로 분리해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가령 입시 교육에 대한 불만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공약을 보지도 않고 그 불만을 담아 특정 정당 후보는 찍지 않을 수도 있다.


  전교조 투표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기에 입시를 우려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 사회는 정치를 굉장히 예외적이고 위험하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일로 여긴다. 하지만 권리 행사는 자기실현의 일부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가 자신의 학습이나 취업준비에 부담이 된다면 안하면 된다. 입시 공부에 방해된다는 근거를 일반화해 청소년 모두의 권리를 제약하려 할 수는 없다. 권리 행사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돼야 한다.



만 18세 선거권은 교실을 ‘정치장화’하는가? 


  교총 정치의 부정적인 요소가 학교에서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후보가 유권자를 매수하거나 인기영합적인 공약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또 학교는 한 장소에 동일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있는 곳이라 정치인들이 접근하기 좋다. 반의 학생대표를 포섭해서 교내 선거운동을 시킨다면 학생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기 쉽다. 외부 사회보다 학교에 정보가 전파되기 어렵고, 학생들은 정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학생들의 정치적 언행을 규제할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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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재혁 대변인 ⓒ유경연 사진기자



  전교조 성인들도 포퓰리즘 정책에 노출되고 정치인과 돈을 주고받지 않나. 학생들도 일반 선거법을 적용해서 규제하면 된다. 오히려 선거권 확대가 선거의 부정적 모습을 통해 학생들이 비판의식을 갖도록 교육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정치의 부정적 요소 때문에 교실 내에서 정치적 주제를 아예 다루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실과 사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토론하고 비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틴즈디모 왜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되나? 나와 다른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는 친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토론을 학습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면 학생들의 올바른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규정하는 법이나 교내 규율이 만들어질 것이다. 청소년에게 정치가 더 위험하다는 판단은 성급한 일반화다.



촛불집회로 불붙은 청소년 참정권, 일시적 신드롬은 아닌가? 


  교총 탄핵정국 촛불 집회 때 청소년들이 많은 의견을 표출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적극적 현상으로 본다. 그러나 결코 탄핵정국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만 18세 선거권이 힘을 얻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적 상황에서의 의견이다. 교총이 보도 자료로 제공했던 2015년 자료를 보면 고등학생의 65%가 만 19세 이상 선거권을 찬성한다. 더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먼저 선거권 연령 하향을 주장했다. 교육적 부작용에 대한 숙고 없이 당장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틴즈디모 만 18세 선거권 논의를 확장시키는데 이번 촛불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많은 청소년 단체가 활동해왔다. 다만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언론과 시민이 청소년에 주목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만 18세 선거권 논의는 일시적인 시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부터 켜켜이 쌓인 불만은 청소년이 사회변화를 부르짖게 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들은 사회적·정치적 자신감을 경험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정치에 관심 갖는 것은 신드롬이 아닌 지속적 사회현상이 될 것이다.


  전교조 이번 촛불집회가 폭발적이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청소년에게 가해오던 부당한 억압에 대한 반응이 컸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시적, 우발적, 표면적이라고 보는 것은 한국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촛불집회의 주제는 적폐 청산이다. 청소년들도 정치적 참여와 발언권의 제한, 학생 인권의 제약, 입시 경쟁 교육 등 여러 ‘적폐’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이를 일시적 한풀이나 정치적 계산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만 18세 선거권 그 후


  틴즈디모 청소년이 선거와 정치에 관심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청소년 참정권과 청소년 인권을 포기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더불어 청소년 혼자의 힘으론 부족하므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전교조 4.19, 6월 항쟁, 그리고 지금. 민주주의 도약의 순간에 청소년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겠는가? 그러다보니 지배 권력의 입장에서는 청소년이 두려운 존재고, 이들을 자꾸 묶어두려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들면서, 그들에게 정 치적 미성숙이라는 낙인을 찍고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 선거나 청소년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교육감 선거는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6세로 낮춰야 한다.


  교총 헌법이 정한 기본권이 확대되는 것은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적 기본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다만 교육적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보완책을 마련한 후 순차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닌가. 기본권의 당위성보다는 기본권을 실현시킬 방법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