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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풍요와 빈곤 사이 일주일 동안 비건으로 살아가기
등록일 2017.03.09 23:01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40l 김명주 기자(audwn011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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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학생회관 식당에서 모든 고기가 사라진다. 붉은 살코기뿐만 아니라 가금류, 생선 등이 한꺼번에 없어질 예정이다. 매점에서는 우유와 반숙란, 라떼 조차 팔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삶을 꿈꾸고, 또 실천해나가는 이들이 있다. 타인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종교적인 믿음을 지키지 위해 등 서로 다른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이들이다. 개인의 여건이나 지향에 따라 완전 채식을 추구하거나 유제품이나 일부 육류를 허용하는 등 그 방식도 다양하다.


  그 중 비건(Vegan)은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육류와 해산물은 물론 계란, 유제품 등 동물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거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 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비건으로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건을 타겟으로 한 식품과 식당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비건으로서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단순히 고기나 유제품을 피하는 정도를 넘어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동물성 조미료와 각종 육수를 일일이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착취하지 않기 위해’ 완전한 채식주의자의 길을 걷는 삶이 가능할까. 기자가 일주일간 그 삶을 체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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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와 반채식주의자를 구분한 표



비건 체험 혹은 단식 체험


  비건 체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비건 생활 중인 김희지(철학 15) 씨에게 먼저 학교생활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김 씨는 “평소에는 감골 식당의 채식뷔페를 이용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채식에 가장 가까운 메뉴를 골라 동물성 성분을 빼고 먹는다”라고 답했다. 그는 매점이나 편의점을 이용할 경우 세척과일을 주로 먹는다고 덧붙였다.


  조언에 따라 학교에서는 주로 채식뷔페에서 끼니를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매번 이용하기에는 6000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게다가 채식 뷔페는 아침, 저녁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배식시간도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로 정해져 있어 식사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식당을 찾아가도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메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장 적게 들어간 메뉴도 일일이 뒤적이며 확인해야 했고 먹으면서도 미처 빼내지 못한 것들이 있을까봐 마음이 불안했다. 조랭이떡국은 고기 육수를 사용했는지 또는 국 안에 고기가 있을지 알기 힘들어 결국 먹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매점이나 편의점을 가도 먹을 수 있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 평소 즐겨 먹던 부리토나 편의점 김밥 등은 당연히 입에 댈 수도 없었지만 ‘겉으로 봐서’ 괜찮을 법한 제품들도 다시 한 번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 기대했던 비빔면에는 쇠고기효모농축액이 들어가 있어 다시 내려놓았다. 고구마 음료도 성분표를 확인해보니 우유가 함유돼 있었다. 결국 마지막 보루였던 두유만을 사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끼니를 빈약하게 해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미리 야채죽이나 간식용 두부, 과일을 싸가기도 했다. 비건 체험을 하는 것인지 단식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메론 우유, 초코 우유, 딸기 우유 등을 지나쳐야 할 때의 마음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우유와 유제품 을 좋아하는 기자로서는 식단을 찾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습관처럼 찾던 라떼와도 당분간 이별해야 했다. 법대 카페 ‘이야기’에서 우유를 두유로 교체한 라떼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라떼를 마시기 위해 매번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타벅스와 같은 일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두유로 된 메뉴를 판매 하고 있었으나 역시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차(茶)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항상 ‘2%’도 아닌 ‘98%’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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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먹었던 집에서의 식단



걱정보다 다양했던, 생각보다 비쌌던 비건 음식 


  학교에서의 배고픔을 감내하다 결국 낙성대역 인근 식당 ‘스윗밸런스’에 비건 메뉴가 있다고 해 방문해봤다. 스윗 밸런스는 주로 샐러드를 팔지만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드물었다. 연어, 오리고기, 새우 등이 포함돼있거나 유제품 기반의 드레싱을 곁들이는 메뉴가 다수 였기 때문이다. 고심하다 결국 버섯 샐러드를 골랐지만 막상 나온 것을 보니 계란이 얹어져 있어 당황스러웠다. 사 실 엄격한 비건은 동물성 성분과 접촉했거나 같은 장소에서 제조된 것도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배척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계란이 올라간 버섯 샐러드도 문제가 될 터였다. 그러나 눈앞의 샐러드를 포기할 수 없어 동행한 친구가 계란이 있는 부분을 모두 먹고 난 후 나머지를 기자가 먹는 것으로 타협했다. 두유 리조또도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였다. 스윗밸런스 관계자는 “두유 리조또는 본래 우유 크림을 사용하지만 두유·아몬드·두부 소스로 대체해 비건도 즐길 수 있게끔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양한 샐러드와 리조또도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빵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주위에서 판매하는 빵은 모두 먹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육류나 어패류가 들어가지 않은 빵은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빵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먹을 수 있는 빵을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비건 베이커리를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비건 빵(육 류와 해산물, 우유, 계란을 넣지 않음)’ 을 만들고 있었다.


  그 중 비건들의 성지라 알려진 신촌역 인근 더브레드블루베이커리를 방문해봤다. 더브레드블루의 모든 제품에는 우유, 계란을 포함한 동물성 성분이 전혀 함유돼있지 않아 케이크, 쿠키, 햄버거, 햄치즈빵 등도 비건이 먹을 수 있었다. 기자가 먹은 것은 당근케이크였는데 시트 사이의 크림은 우유와 계란 없이도 충분히 달콤하고 산뜻했다. 비건 식품이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아주 맛있는 케이크였다.


  더브레드블루 신성철 총괄매니저는 우유는 순수 콩물로 이뤄진 두유로, 동물성 기름은 현미유로 대체하며, 콩고기는 직접 만든다라고 비건 빵 제조 방법을 밝혔다. 이어 그는 비건 뿐 아니라 알레르기나 아토피 등으로 계란과 우유를 먹을 수 없는 이들도 많이 방문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알레르기가 있는 딸이 처음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전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보람찼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학내보다 학외에서 훨씬 다양 한 비건 식단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건 메뉴는 기자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매번 사먹기 부담스러웠다. 스윗밸런스의 메뉴는 대부분 만원 내외였고 더브레드블루의 빵은 일반 빵에 비해 비쌌다. 대부분의 빵은 2500원 정도였 고, 손이 더 많이 간 빵은 5000원까지였다. 식당과 베이커리가 멀리 위치한 것도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비건식당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 ‘비건식당’이 있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학교 근처에 위치한 곳은 서울대입구역에 서 한두 개 정도로 매우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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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베이커리와 식당에서의 식단



비건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다

  외출하면 하루 동안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혹은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와야 하루를 그나마 든든하게 보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아침 식사를 꼭 챙기게 됐다. 메뉴는 영양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 주로 두부나 두유처럼 콩으로 된 음식을 택했다. 비건베이커리와 식당에서의 식단 며칠간의 식단을 정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식단을 미리 정했다 해서 이를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부초밥은 계란 플레이크가 뿌려져 있어, 김밥은 모두 햄이 들어가 있어 포기해야만 했다. 인스턴트식품도 마찬가지였다. 농심의 ‘야채라면’, 새 롬식품의 ‘감자라면’ 등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라면은 마트에는 없고 온라인으로 주문해야만 했다. 국물 요리는 고기 육수를 사용해 먹을 수 없었고, 국물이 없다 하더라도 성분표를 보면 모두 스프에 고기 농축액을 포함하고 있었다. 결국 완제품은 포기하고 오이, 당근, 양배추 등의 채소와 사과, 딸기, 오렌지 등의 과 일만을 구매했다.

  기존에 집에 있던 음식도 다시 한 번씩 확인해야만 했다. 무심결에 김치를 집었다가 젓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려놓은 때도 있었다. 다른 반찬도 굴소스나 까나리 액젓 등이 쓰였는지를 일일이 물어보곤 했다. 소스 등에 극미하게 동물성 성분이 포함된 것은 겉으로 봐서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스스로 요리를 시도하기도 했다. 우선 인터넷에 있는 채식 카페에 가입했다. 채식 카페 회원들은 비건 식당·비건 제품에 관해 얘기하거나 오프라인 모임을 추진하는 등 각자의 채식 생활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회원들 사이 공유하는 요리법 중 참조해볼 만한 것이 여럿 보였다. 메뉴는 파스타부터 김치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아주 다양했다. 그중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무침 요리를 주로 선택했다. 단무지무침이나 취나물무침을 만들거나 구운 버섯, 고사리, 우거지에 고추장을 찍어 쌈무에 싸 먹기도 했다. 특히 고기가 없는 채소쌈은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점점 익숙해져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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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들어 먹었던 야채쌈



언제든 어디에서든 비건일 수 있어야


  비건 체험은 한 마디로 ‘풍요로우면서도 빈곤’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몸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생식 위주의 식단을 먹으며 이전보다 수월하게 기상할 수 있었다. 비건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했고,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비건 생활 중 채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직접 접해본 채식 인프라는 너무 빈약했다. 비건 식당은 특정 동네에만 집중돼있었고 그나마도 비건 전용이라기보다는 일반 메뉴에 비건 메뉴를 한두 개 추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생활 반경 내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동물성 성분을 제한 음식이 드문 것은 둘째 치고 성분이 정확히 표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선택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건으로 살아가려면 적잖은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식 단은 서너 개로 제한됐고 시간이 갈수록 쉽게 지쳐갔다.

  비건 생활은 각자의 취향과 신념에 따라 개인이 내린 선택이며 따라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식문화가 육식 위주로 구성돼있을 때 비건은 자연스레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곤 한다. 김희지 씨는 “음식을 시킬 때 계란과 고기는 빼달라고 한다”라며 “지인과 함께 식사 메뉴를 정할 때에도 다들 내 눈치를 본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난감해하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예외를 만들곤 한다”라고 덧붙였다. 원칙적으로 동물성 성분은 배척하되 육수의 경우 예외로 두는 식이다.

  비건은 주류와 ‘다른’ 삶의 양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비건은 종종 자연스레 ‘틀린’ 삶을 사는 듯 비춰지고 신념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나 자유롭게 비건이라고 선언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아직은 요원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