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문화
다시 만난 광장 활발한 예술 활동과 다양한 주체, 집회 문화의 새 지평
등록일 2017.03.10 10:00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50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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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겨울 유난히 많은 촛불이 거리를 수놓았다.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시작된 범국민행동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이란 구호 하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며 일말의 성취를 이루고 나서도 촛불은 사그라지지 않고 꾸준히 타올랐다. 비단 토요집회만이 아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수요집회)는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자리를 지켰다. ‘검은시위’나 ‘세계여성공동행진’ 등 다소 생경한 집회도 하나둘 거리로 나왔다.

  집회가 엄중한 요구를 내걸었다 해서 모두 무거웠던 건 아니었다. 범국민행동은 매주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됐으며 누구든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벌였다. 광장에는 구조물과 그림들이 넘쳐났고 참여자들은 구호를 외치다가도 자연스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의 집회가 투쟁의 형식을 갖췄다면 지금의 집회는 하나의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라고 분석했다. 크고 작은 집회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었고 수많은 촛불은 제각기 다른 빛을 발했다.


광장으로 나온 예술인들

  집회엔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전문 예술인이 보여준 다양한 예술 활동은 시민들의 발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5일 각계의 문화예술인이 모여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아래에 30여 개 텐트로 이뤄진 ‘광화문 캠핑촌’을 결성했다. 이들은 텐트 안에서 사진을 찍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며 문화예술 탄압을 규탄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로서 현재까지도 텐트를 지키고 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광화문 캠핑촌에서도 가장 큰 텐트다. 광장극장 블랙텐트 관계자는 “시민들이 새로운 열망을 쏟아내는 광화문은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 극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로부터 배제된 예술을 사회적 극장에 다시 세우고자 하는 곳이 바로 광장극장 블랙텐트”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배제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검은 천막 안에서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를 재구성한 연극, 민중
시인의 구절을 발췌한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이 상시 열리고 있다.

1_mini.JPG▲하애정 씨가 달집 주위를 돌면서 풍물을 치고 있다. ⓒ홍인기 사진기자


  자신을 ‘풍물예술노동자’로 소개한 하애정 씨도 현재 광화문 캠핑촌 중 하나인 ‘퇴진 캠핑’ 텐트에 입주해있다. 하씨는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 다른 풍물예술인들과 함께 풍물을 치고 있다. 이유를 묻자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대통령 탄핵뿐 아니라 정경유착 등 우리 사회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하고 “지칠 수 있는 긴 싸움에 풍물로 힘을 불어넣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주요한 사안이 새로 떠오르거나 절기가 바뀌면 퍼포먼스의 내용과 형식은 달라지곤 한다. 하 씨는 2월 11일 열린 집회에서 대보름을 맞아 민족미술인협회 화가들과 협업해 대보름 퍼포먼스를 벌였다. 화가들은 광장 가운데 대나무 달집을 세웠고 하 씨를 비롯한 풍물예술인들은 도깨비로 분장한 후 달집 주위를 돌며 풍물을 쳤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도 풍물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들었다. 하 씨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고깔을 쓴 채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가 돼 사회의 액을 다 날려 버릴 것”이라며 웃었다.

  미술가 이강훈 씨는 광장 한 편에서 직접 제작한 스티커를 배포하고 있다. 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메모로 남기고 가면 이 씨가 스티커로 디자인한 후 다시 광장에서 배포하는 식이었다. 스티커에는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정말 거의 다 왔어’, ‘비상식과의 투쟁’, ‘아, 이제 토요일엔 광화문 그만 나오고 싶다’ 등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김윤하(12세) 씨는 2월 18일 집회에 참여해 ‘박근해는 즉각 퇴진하라’라고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이는 이 씨가 기획한 ‘우리가 우리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프로젝트로서 2월 18일 토요집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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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훈 씨가 뽑은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도 이강훈 씨다. 이 씨는 시민들이 직접 그린 꽃 그림을 받아 스티커로 제작했다. 꽃 스티커는 다시 시민들에게 나눠졌고 시민들은 직접 경찰버스에 스티커를 하나 둘 붙이며 차벽을 꽃벽으로 물들여나갔다. 이 씨는 “차벽이라는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고자 했다”라고 말하며 “꽃 그림이 냉엄한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차벽이 많이 사라져 이제는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를 시민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여성 등 모두가 공유하는 광장으로

  광장에는 정권 퇴진이라는 기본적인 사안과 함께 다양한 의제가 발의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한 곳에 모이며 퍼포먼스도 다양해졌다. 2월 11일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에는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희망)’ 회원들이 영화 ‘너의 이름은.’을 패러디한 ‘너의 18세 투표권은.’ 포스터를 들고 나왔다. 희망은 만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남양주시 청소년들로 구성된 단체다. 포스터를 들고 있던 단체원 이호섭(18세) 씨는 “혼인도 병역도 모두 가능한 만18세가 투표권만 없는 것은 모순”이라며 “‘너의 18세 투표권은.’이라는 제목이 이런 모순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너의 이름은.’은 단체원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이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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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단체원들이 제작한 '너의 18세 선거권은.' 포스터 ⓒ홍인기 사진기자



  희망은 2월 18일 ‘박근혜하야 전국청소년비상행동’과 함께 인기게임 ‘포켓몬고’에 착안해 ‘18세 선거권 조기대선 GO!!’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는 대선에서 만18세 선거권 시행이 불발된 일에 반발하기 위해 기획횐 프로젝트였다. 행사기획자들은 ‘포켓몬스터’ 캐릭터로 분장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특히 잠만보 복장을 한 백동재(19세) 씨는 ‘잠만보보다 잡기 어려운 18세 선거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 바닥에 누워 있기도 했다. 시민들은 각자 18세 선거권에 찬성하는 이유를 마련된 피켓에 적은 후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유는 ‘적폐청산을 위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세월호 부모님들이 행복해지셨으면 해서’ 등 다양했다.

  청소년이 주체가 돼 집회에 참여한 것은 비단 토요집회만이 아니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에 따르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와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 이후 수요집회엔 청소년 참여자가 늘어났다. 지난 2월 1일 수요집회에 참여한 인성여고 역사동아리 ‘모자이크’도 그 중 하나였다. 이날 김민홍(18세) 씨를 비롯한 모자이크 회원들은 직접 제작한 배지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정대협에 전달했다. 김 씨는 “종이에 그린 시안을 배지로 제작한 후 학교 축제에서, 각 반을 돌아다니면서 판매해 수익금을 모았다”라고 밝혔다. 모두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학교에서의 판매 행위라며 반대하는 교사도 있었고 아무도 구매하지 않은 반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았다. 제작했던 200개를 모두 판매한 후에도 수요가 많아 추가로 주문해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수익금을 전달하며 자유발언자로 나선 남미현(18세) 씨는 “‘나’가 많아지면 ‘우리’가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여성주의 운동도 광장에 함께 자리했다. 지난해 11월 18일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강남역10번출구’ 등을 비롯한 10여 개 여성단체가 연합해 광화문 일대에 ‘페미존’을 처음 꾸렸다. 광장의 경험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불꽃페미액션 회원 민주 씨는 “집회에서 ‘닭년’, ‘아녀자’ 등 여성혐오 표현이 사용되고 여성 참여자들이 실제적인 성희롱·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는집회에서 이뤄지는 성폭력에 대응하는매뉴얼을 제작하기도 했다.

  페미존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행진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참가자들은 사회자·공연자의 소수자혐오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를 지속했다. 지난해 11월 26일에는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이 이뤄지기도 했다. 선언에 나선 이들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동시에 정권 비판의 목소리에 여성혐오가 점철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더불어 가부장제에 기댄 권력 구조를 규탄하며 “여성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든 박근혜 대통령은 허울뿐인 ‘여성대통령’이다”라고 주장했다. 단체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도 페미존에 다수 동참했다. 민주 씨는 “한 참가자가 ‘페미존이 있어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말을 전해올 때 가장 벅찼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페미존은 민주주의와 여성혐오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검은시위, 세계여성공동행진 등 여성주의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한 검은시위는 불꽃페미액션이 처음 주최해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시위에 있었던 검은색 드레스코드에 대해 민주 씨는 “박탈된 재생산권에 대한 추모”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이에 맞춰 검은 색 옷을 입거나 입술을 검게 칠하기도 했다. ‘너 때문에 섹스할 흥이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나의 몸은 나의 것이다’, ‘정자도 생명이다’ 등이 적힌 피켓을 직접 제작해 드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0월 15일 검은시위에 참여했던 이은진 씨는 “온라인과 SNS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여성운동단체가 기획한 집회인만큼 이전부터 주최 측과 참가자가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라며 기존 집회와의 차이점을 말했다.


새로운 열기 속 다양한 목소리 경시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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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편에 마련된 관객참여형 작품에 한 시민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신일식 기자



  대중문화평론가 손희정 씨는 “광장민주주의는 더 이상 하나의 얼굴을 하고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뚜렷한 얼굴이 없다 싶어도 제각기 만들면 그만이었다. ‘혼자온사람들’, ‘전국고양이노동조합’, ‘무한상사노동조합’, ‘보노보노’ 등 기상천외한 이름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다. 혼자온사람들 깃발지기 이예슬 씨는 “‘혼자온사람들’이란 제목은 나처럼 혼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해 1분 만에 고안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깃발을 들자 한두 명씩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행진이 끝날 즈음엔 400명가량이 모였다”라고 말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한 데 모이면서 참여자들의 개별성이 경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은진 씨는 “단순히 집회 규모에만 집착하기보다 참여자들 각각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퀴어, 장애인, 여성, 농민, ‘운동권’ 등 소수자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함께 가는 집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 씨 역시 집회에 나온 주체들끼리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위 ‘운동권’과 여성운동을 병행하다보면 양측에서 모두 소외되곤 한다고 느꼈다. 그는 “기존 운동은 여성운동을 경시하는 측면이 있고 여성운동도 이러한 운동권과 선긋기를 하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라고 털어놓았다.

  정형화된 기준에서 벗어난 얼굴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나왔다. 의제는 다양해졌으며 그들이 벌이는 활동은 발랄하고 활기찼다. 다시 만난 광장에는 새로운 열기가 가득했다. 손희정 씨는 “단순히 새로운 열기를 기뻐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집회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적인 담론 하에 이뤄지는 논의들을 경시하거나 이를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얼굴 각각의 차이와 이해관계를 무시하지 않는 곳. 그곳이 우리가 다시 만난 광장이자 다시 만날 광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