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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그 뒤편의 이야기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집회기획팀 배일훈 씨를 만나다
등록일 2017.04.24 21:24l최종 업데이트 2017.09.03 15:29l 한지민 기자(jmhan111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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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결정에는 촛불을 들어 올린 시민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가 보도된 직후인 2016년 10월 29일의 1차 촛불집회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된 다음날인 2017년 3월 11일의 20차 촛불집회까지 시민들은 매 주말 촛불을 밝혔다. 전국에서 232만 명의 시민이 참가해 역대 집회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지난해 12월 3일의 촛불집회를 포함해 지금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1600만 명을 기록했다.

  매 주말 광화문에 설치된 무대와 대형 스크린, 무대 위의 각종 공연과 발언들, 집회 이후 행진을 이끌던 방송 차량의 모습은 촛불집회의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집회의 이런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린 사람이 있다. 시민들에게는 ‘주최측’이라는 표현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집회기획팀의 배일훈 씨를 만나 촛불 뒤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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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집회기획팀 배일훈 씨 ⓒ최한종 사진기자



외부자에서 참여자로, 그리고 퇴진행동까지

  배일훈 씨는 전업 활동가로서 ‘사회진보연대’ 편집실에서 조사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육대학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졸업한 후에는 교사가 되는 삶 대신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대학에 재학 중이던 2005년 전국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예비교사 운동모임 ‘페다고지’를 만들었을 정도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배일훈 씨는 “교사가 돼 전교조 활동 등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선배, 동기, 후배들이 이미 잘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사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또 그는 “대학 시절에 봤던 많은 투쟁들을 외부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배일훈 씨는 대학 졸업 이후 사회문제에 더욱 몰두해 활동을 이어갔다. 2013년, 그는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려는 박근혜정권의 움직임에 저항하며 ‘민주교육과 전교조 지키기 전국행동’에 참여해 선전팀에서 활동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조직팀에 소
속돼 정부에 대책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단식장을 차리자 그는 그곳에서 유가족들과 매일 숙식하며 투쟁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의 공공운수노조에서 초·중·고등학교 방과 후 학교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실태조사, 토론회,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2013년 이후 매해 발생했던 굵직한 사건마다 배일훈 씨가 함께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최순실 씨가 연루된 국정농단 사태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해 11월 9일 시민적 대응으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전국 1500여 개 단체가 모여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발족했다. 배일훈 씨는 퇴진행동 발족 초기부터 ‘사회진보연대’ 자격으로 퇴진행동 상황실에 합류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서는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문제제기가 짓밟혀 ‘정치효능감’이 굉장히 낮았다”라며 “이런 정권에 저항하는 데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다”라고 퇴진행동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퇴진행동 내의 여러 부서들 가운데서도 배일훈 씨는 집회기획팀을 선택했다. 큰 규모의 집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호흡하는 경험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를 기획해봤지만 이번 촛불집회는 특히 규모가 컸기 때문에 집회를 기획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촛불집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그를 집회기획팀으로 이끌었다. 배 씨는 촛불집회의 성공 여부가 시시각각 변하는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집회를 만들고자 집회기획팀에 참여하게 됐다.

  배일훈 씨는 집회기획팀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지난 수개월을 회고했다. 10여회의 주말집회와 매일 열리는 평일 집회를 위해 집회기획팀은 지난 11월부터 올 2월까지 4개월간 45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상시적으로 있었던 온라인 회의는 덤이었다. 집회 당일이 되면 집회기획팀은 집회 시작 2시간 전부터 집회 장소에 모여 행진이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실무를 담당했다. 배 씨에게는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과 집회기획 일을 병행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어려운 일정들을 소개하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탄핵이 인용되고 나서 상황실 사람들 모두 앓아누웠지만 일단 한 국면이 일단락되었기에 매우 기쁘다”라며 입꼬리를 내리지 못했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집회 문화를 위한 도전

  이번 촛불집회는 지금까지 있었던 집회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고루 참여했고,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계층이 동참한데다가, 연인, 가족 단위의 참가도 많았기 때문이다. 배일훈 씨는 이렇게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집회기획팀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촛불집회 초기에는 혐오발언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가수 DJ DOC가 5차 촛불집회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신곡 ‘수취인분명’의 “미스 박”, “세뇨리땅” 등의 가사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며 논란이 일었고 해당 공연은 무산됐다. 이후 DJ DOC는 곡의 가사를 수정해 무대에 올랐다. 집회 참가자의 자유발언 도중에 여성, 장애인, 청소년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배일훈 씨는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고자 같은 뜻으로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의 논란을 돌아봤다. 또 그는 “우리끼리 힘을 모아도 모자랄 때였기 때문에 집회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혐오 발언을 제재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집회기획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등과 연대를 위한 집회 안내문’을 발행했다. 안내문은 ▲여성과 장애인을 향한 비하 발언 자제 ▲타인에게 불쾌한 신체 접촉 금지 ▲청소년에 대한 존중 ▲국가, 인종, 성적지향 등으로 인한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집회기획팀은 자유발언 이전에 발언 참가자들에게 이 내용을 교육했다. 배 씨는 “주최 측의 노력이 있었기에 더욱 폭넓은 성별, 계층, 나이의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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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행동에서 발행한 ‘평등과 연대를 위한 집회 안내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었던 행사 중 하나인 촛불 파도타기 역시 집회기획팀에서 고민한 결과다. 보통 집회에서는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했거나 당일 집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하는 발언이 주를 이룬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발언 이외에도 춤, 노래, 마술 등의 공연이 추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배일훈 씨를 비롯한 집회기획팀은 무대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동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데 그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회가 보다 의미 있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만한 요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물론, 수십만 집회 참가자들 사이의 연대감과 일체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기획에서 준비된 행사가 촛불 파도타기, 촛불 소등, 촛불 다시 켜기, 폭죽 쏘기와 같은 행사다. 이 행사들은 시민들이 단순히 무대를 바라보며 구호만 외치는 정도 이상으로 개개인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촛불 파도타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언론도 촛불 파도타기를 집회의 주요 행사로 보도했다. 촛불 소등 행사에 대해서도 배일훈 씨는 “불을 껐다가 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소등 행사를 통해 그날 집회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각오도 다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집회기획팀은 집회 이전에도 무대 기획, 출연진 섭외 등으로 쉴 틈이 없지만 집회 당일에도 바쁘게 움직인다. 배일훈 씨의 말을 빌리자면, 집회기획팀은 ‘우아하게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바삐 움직이는 발’이었다.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특히 집회기획팀은많은 유명인들이 무대에 올라가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상황에서 하루 종일 무대 앞뒤를 지켜야했다. 실제로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하겠다며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배일훈 씨에게 폭언을 쏟아 붓는 취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집회는 인생에서 한번 있을까 말까 한데 이런 경험을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것 아닐까”라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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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만 명의 시민들이 20차례의 주말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황태희 사진기자



“우리는 여전히 촛불을 들어야 한다”

  배일훈 씨는 지난 수개월을 돌아보며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의 힘을 절실히 느꼈다. 집회 당일에는 진행 요원들이 수십 미터 간격으로 서서 피켓과 촛불을 나눠주고 무대를 지키는데, 100명 남짓의 퇴진행동 상황실 인력만으로는 이 업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매 주말마다 중·고등학생부터 4·50대까지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집회에 참여해 일손을 도왔다. 자금난을 해결하는 데도 시민들의 힘이 컸다. 퇴진행동은 주말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1억 원이 넘는 빚을 졌다. 20차례의 집회에서 조명, 음향 장비와 무대를 설치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2만 1천여 명의 시민들은 3일 만에 8억 8천만 원 가량을 후원했다. 배일훈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며 이번 정국은 일단락됐지만 촛불의 힘은 끝까지 발휘되는 것 같다”라며 촛불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 그는 이번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의 ‘정치효능감’을 크게 높여줬다고 평가했다. 촛불 민심을 받아들여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대통령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배일훈 씨는 “나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고 희망을 갖고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시민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구속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배 씨는 “촛불집회는 끝났지만 우리는 촛불을 여전히 들고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사회의 다양한 적폐들을 공론화시키고 없애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탄핵 이후에도 배일훈 씨는 여전히 바쁘다. 탄핵 인용 직후 퇴진행동 집회기획팀으로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했고 4월 15일 세월호 3주기 집회 기획도 참여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사회진보연대’의 일 역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과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보고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있다”라며 근황을 밝혔다. 또한 “사회진보연대에서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앞서 말한 고민들을 잡지를 통해 더욱 구체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라며 새로운 한 발짝을 다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움직임도 사실은 이 한 발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