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 문화
여러분의 일터는 안녕들하십니까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에서 만난 여성노동
등록일 2017.04.25 10:16l최종 업데이트 2017.04.25 10:16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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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100: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OECD 평균 100:85). 남성임금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여성은 64정도의 임금만을 받는다. 다른 수치들도 여성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뒷받침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의하면 세대별 임금격차와 성별 비정규직 비율차이는 30,40대로 갈수록 심화됐다. 한림대 조동훈 교수(경제학과)는 “결혼, 출산, 육아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경력단절을 경 험하고 여성이 휴직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자 해도 주로 저임금 비정규직이 할당된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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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포스터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공동기획단



  지난 3월 8일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13개 단체는 ‘조기퇴근시위 3시 STOP(3시STOP)’을 공동 주최했다. 한국 성별임금격차 100:64를 1일 기준 근로시간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노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3시 STOP 주최 측은 “오후 3시 이후의 노동을 거부한다”라며 여성 노동력이 폄하되는 현실을 규탄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도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노동 성평등을 외치고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촉구했다.


국내외 단체들과 함께한 조기퇴근시위

  지난 3월 8일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다양한 여성의 날 집회가 벌어졌다. 그중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열린 ‘국제여성파업’ 시위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국제여성파업은 1975년 일어났던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됐다.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에서의 일 모두를 거부하는 하루 파업을 실시했다. 이날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만 2만 5000여 명의 여성이 거리로 나왔고, 이는 결국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올해 3월 8일 열린 국제여성 파업 역시 성별 억압 없는 사회를 요구하며 하루 파업을 실시했다. 국제여성파업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시위가 이어졌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는 ‘여성 없는 하루’ 시위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차별적 행보를 성토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도 수천 명의 여성이 거리로 나와 정부의 성차별적 정책을 규탄했다. 이들은 항의의 표시로 레드카드를 들거나 부엌도구를 두드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에 발맞춰 조기퇴근시위가 조직됐다. 국내 여성 단체들은 세계 여성의 날마다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조기퇴근시위가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3시 STOP은 다양한 단체가 연대해 기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난해부터 성별임금격차에 초점을 둔 여성노동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올해 초 다양한 단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여성노동행사를 주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알바노조 등 12개 단체가 응해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공동기획단(공동기획단)’이 결성됐다. 

  공동기획단으로 모인 단체들은 모두 열악한 여성노동 현실에 공감했다. 한 국여성노동자회 김명숙 위원은 “박근혜 정권은 여성정치를 표방하면서 실제로 여성인력을 착취해왔다”라며 “그간 노동 성평등은 퇴행했다”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여성인력은 필요에 의해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에 충당됐다가 수요가 차면 금방 버려지곤 했다. 공동기획단은 현재의 여성노동정책 개정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동기획단은 ▲성별임금격차해소 ▲일·돌봄·쉼의 균형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 ▲불안정노동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4개 주요의제를 설정했다. 최저임금 1만원, 주35시간 전면도입,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출산휴가 급여 적용 확대 등 10개의 요구안도 작성했다. 공동기획단은 해당 의제와 요구안을 시위 현장에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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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위에는 수백명의 여성 노동자가 참여했다.



  한편 공동기획단이 결성된 후 참여단체들은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며 시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공동기획단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해 서울고용노동청까지 이어지는 행진코스를 단체별로 분담했다. 대기업이 밀집된 보신각 인근은 대학생 단체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은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자회가 담당해 행진 중 릴레이 발언을 이어나가는 식이었다. 다양한 퍼포먼스도 고안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동요 ‘그대로 멈춰라’를 개사해 여성파업에 관한 노래를 만들었고, 전국여성노동자회는 성별임금격차해소를 촉구하는 ‘장벽 부수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서울 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흔들 빨간 월급 봉투 모양의 피켓도 제작됐다.


다양한 여성노동자들, 한 곳에서 만나다 

  조기퇴근시위는 참여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노동 현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의 건설노동자들은 직접 빨간 곱슬머리 가발을 머리에 쓴 채 시위에 참여했다. 여성차별에 경고한다는 취지의 빨간색 드레스코드에 맞춘 것이었다. ‘남성은 직업, 여성은 부업?’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여성 건설노동자도 있었다. 여성 건설노동자 A 씨는 “건설현장에서 수가 적은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 기능공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아줌마’로 종종 치부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겨울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건설 현장에서 문제가 됐던 입간판을 언급했다. 해당 입간판에는 “사고가 나면 당신의 부인 옆에 다른 남자가 자고 그 놈이 아이들을 두드려 패며 당신의 사고보상금을 써 없앨 것”이라고 적혀 있어 논란이 됐다. 그는 “여성이 감독이나 현장 노동자로 엄연히 공사현장에 존재하는데도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규탄했다. 이어 그는 “여자화장실, 여자 휴게실 등 공사현장 내 편의시설이 미비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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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건설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은 빨간 가발을 써 이목을 끌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여성 직업’으로 간주되는 직군에서도 차별은 존재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콜센터 해고노동자 현희숙 씨도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 현 씨는 “현재 대부분의 콜센터가 분리직군에서 외주로 노동자 계약방식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처음 현 씨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회사는 별도의 부서를 두고 콜센터 노동자의 임금 및 복지를 관리했다. 당시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현 씨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는 다른 부서의 노동자보다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일했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했다. 외주화 이후엔 상황이 더 악화됐다. 현 씨는 “회사가 최소한의 책임 소지도 끊은 채 노동자를 착취하려고만 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콜센터 노동자 김재숙 씨는 일터에서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는 “여성 건설노동자가 여자화장실이 없다고 성토했는데, 콜센터 노동자는 반대로 화장실이 있어도 도저히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부족한 인력충원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한 채 몰려오는 전화에 응답해야 한다. 실제로 김 씨의 동료 중엔 계속 앉아있는 탓에 관절염, 방광염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이어 그는 “일하기 전 물 한 컵을 책상에 두는데, 7-8시간이 지나도 물이 그대로일 때가 많다”라고 털어놨다. 물 한 모금 마실 여유 없이 계속해 수화기를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일하다 보면 내가 소모품이나 ‘싸구려’가 된 듯한 느낌 을 많이 받는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알바노조 조합원 승연 씨도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며 겪은 성차별 경험을 털어놓았다. 승연 씨가 알바노조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일터에서의 차별 때문이었다. 승연 씨는 맥주집 아르바이트 중 남성 고용주가 임금 일부를 체불한 채 잠적한 일이 있었다. 열네 살 때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는 남성 고용주가 승연 씨에게 스타킹을 주며 ‘이걸 신고, 일이 끝나면 나에게 주고 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어리숙한 학생이었고 상대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승연 씨는 알바노조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전에 경험했던 성폭력과 차별이 부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체불된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그는 “당시엔 아무도 내게 아르바이트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말해주지 않았다” 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일터는 여전히 여성에게 혹독했다. 일터에서는 성폭력에 쉽게 노출됐다. 승연 씨는 “식당 아르바이트 중 남성 사업주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꽃을 주며 ‘결혼하자’고 말하는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라고 털어놓았다. 같은 아르바이트 노동을 해도 남성 노동자와 직무가 구분되기도 했다. 승연 씨는 “남성 노동자는 식당에서 음식 제조를 배우며 다른 남성 요리사, 남성 고용주와 어울릴 때 나는 그들에게 커피를 타줘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자연스레 일터에서 남성과 여성 집단이 나뉘었는데, 승진 기회나 급여 등에서 이익을 받는 것은 남성 노동자 측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알바노조는 이날 자체적으로 실시한 꾸미기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편의점, 영화관, 식당 등 다양한 직종의 아르바이트 노동자 49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98%가 ‘일하면서 타인으로부터의 외모 품평을 경험한 적 있다’, 81%가 ‘사업장에서 지급되는 유니폼이 편하지 않다’, 60%가 ‘고용주가 머리색깔이나 화장 등 용모단정과 관련해 벌점을 주거나 지적한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했다. 화장품, 스타킹, 머리망 등 용모 관련 물품을 구비하는 것 도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몫이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은 ‘동일임금, 동일민낯’을 외치며 “사업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꾸미기 노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공감, 여성노동문제 해결의 단초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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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을 하는 동안 노래와 퍼포먼스가 계속 이어졌다.



  김명옥 위원은 “조기퇴근시위는 다양한 직군의 여성노동자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위가 끝나고 한 조합원이 다가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청소노동자였던 해당 조합원은 김 위원에게 ‘젊고 학력이 높은 친구들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결국 동일한 성차별을 받는구나’라고 소회를 전했다. 김 위원은 “동일한 여성 노동자라 해도 직군이 다양해 세대 간, 혹은 직종 별 단절이 있어왔다”라며 “서로 일터에서의 경험을 털어놓고 함께 행진하며 그런 단절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 다”라고 말했다. 공동기획단에서 함께 활동한 것을 계기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알바노조는 앞으로 집담회를 함께 주최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승연 씨는 “공감의 힘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알바노조 활동을 하며 힘든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그는 “부당함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 용기를 내 투쟁했지만 결국 더 큰 빈곤에 갇히게 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곤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계속해 싸우고 연대하는 건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감이 여성적 감정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간 평가절하됐다”라며 “공감하기 때문에 서로 연결돼있고 함께 싸 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노동 성평등은 요원해 보인다. 성별임금격차 외에도 직장 내 성폭력, 경력단절 등 여성노동에는 수많은 문제가 존재하며, 노동계에서는 여성운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조기퇴근시위는 여성 노동자가 서로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장을 만들었다. 김명숙 위원은 “조기퇴근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기퇴근시위를 통한 여성 연대는 다양한 여성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