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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의 무게
등록일 2017.04.25 11:42l최종 업데이트 2017.04.25 11:42l 정지훈 사회부장(fighter144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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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3년 전 차가운 바다에 남은 사람들에게, 10년 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삼성의 한 노동자에게,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전하는 말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아파하며 진중한 미안함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제로 책임을 져야 함에도 그 책임의 무게를 덜어낸 사과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에 갇혔던 사람들을 구할 책임이 있었던 자, 자신의 노동자를 지켜야 했던 자들의 공허한 사과는 너희를 지키지 못한 우리를, 먼 훗날 만나면 용서해달라는 한 줄의 회한, 있어서는 안 됐던 당신의 희생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무게 속에서 한없이 가벼웠다.


  우리네 세상에서 그 가벼움을 목도하기란 어렵지 않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어나서는 안 됐던 처참한 사건들은 내용 없는 미안함이 건네진 것으로 일단락돼 버리곤 한다. 언론은 그런 사과를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앞 다퉈 보도하기도 하고 그 중 일부는 이를 책임지려는 태도의 표현으로, 그래서 사건이 해결될 희망적인 징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것은 미안함이라는 형식이 아닌, 그 미안함이 갖는 무게다.


  세월호 참사의 흔적 옆에서도 그리고 강남역 삼성사옥 앞의 반올림 농성장에서도 기억과 추모에 담긴 묵직함을, 동시에 책임자의 말에 담긴 가벼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의 곁에서는 이렇게나 쉽게 포착되는 의미 없는 미안함은 조금만 멀리서 봐도 잘 드러나지 않을 만큼 교묘했다. 재발방지를 하겠다는 약속,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건네는 한 마디 사과는 그럴 듯하게 포장됐지만, 시간을 들여 그 속을 헤집어보면 결국은 지켜지지 않아 공허하게 남을 미안함이었다. 이렇게나 감쪽같아서 가능했던 것일까. 그 동안 그런 가벼움이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심각하지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사건, 해결돼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사건들을 포착해 흐름을 그려내고 진상을 파악하며 원인과 해결책을 짚어 알리는 역할, <서울대저널> 기자들이 하려 했던 일이고 늘 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았던 20144월에,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 씨가 직업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20073월에, 우리는 책임져야 할 사람의 한 마디 사과와 그 무게를 충분히 살펴봤을까.


  201736일과 416일은 황유미 씨의 10주기, 세월호 참사의 3주기였다. 이번엔 우리가 해왔던 일보다는 했어야 할 일에 더 주목했다. 가까이서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의 미안함들이 지닌 무게를 오롯이 전해보려 했다. 그로써 저들의 미안함은 더 이상은 비어있지 않도록, 앞으로의 미안함에는 무게가 담길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네 세상이 한 걸음 나아가길 바라며 한 줌 공기보다도 가벼운 미안함이 판을 치는 요즘, 미안함의 무게에 더욱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