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 사회
출산, 못 하는 사회와 안 하는 세대 여전히 빗나가는 정부의 저출산 정책
등록일 2017.04.26 00:19l최종 업데이트 2017.04.26 00:19l 이재은 기자(ssje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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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전국 243개 자치단체의 출산통계를 담은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발표돼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기관인 행정자치부가 지역별 가임기 여성을 1명 단위까지 표기한 통계를 발표하면서 여성을 인구 조절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2월에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의 발언이 화두가 됐다. 그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포럼’에서 휴학이나 해외 연수 등으로 늦어진 졸업과 취업은 결혼의 지체나 포기로 이어지는데 이는 저출산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원종욱 위원은 그의 보고서인‘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 결정요인 분석’을 통해 여성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상승하면서 ‘하향 선택결혼’이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을 바꿀 문화콘텐츠 개발을 강조했고 이는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논란 끝에 원종욱 위원은 자진 사퇴했지만 해당 발언에 대한 공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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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행정자치부


  정부의 저출산 정책 곳곳에서는 여성들을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 수단으로 여기고 여성의 몸을 공공연히 대상화하는 관점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성역할 인식과 여성관은 대표적으로 정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저출산기본계획)’에도 반영돼 있다. 이 정책은 크게 ▲결혼을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사회경제적 원인 해소 ▲출생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자녀 양육의 부담 완화를 위한 교육-보육 환경개선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로 구성된다. 이를 결혼, 출산과 양육, 일-가정 양립이라는 세 범주로 나눠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시각을 살펴봤다.


결혼 못하는 청년? 안 하는 여성!


  저출산 정책의 한 축으로 정부는 결혼장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혼이 자연스레 출산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이 전제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청년 기술창업 활성화와 신혼부부 대상 주택 지원 정책이 마련돼 있다. 일자리 부족과 주거난 때문에 생계에 몰두해 결혼을 생각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청년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경제적 요소를 저출산 정책에서 하나의 뼈대로 두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내재돼있다. 성공회대학교 오유석 교수(사회학과)는 “이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사라지면 청년들이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단순 도식적 접근이다”라며 비판했다. 통계청의 ‘2016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국민은 51.9%에 불과해 2010년에 64.7%였던 것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결혼관을 포함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는 청년층에서 사회문화적 가치관 변화에 따라 결혼을 원치 않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층 사이에선 법률혼 대신 동거, 연애, 비혼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여성의 입장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의 결혼 제도와 문화에 담긴 가부장제의 요소다. 올해 1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기혼여성의 재량시간 활용과 시간관리 실태연구’에 따르면 전일제 노동을 하는 맞벌이 부부 중 아내의 가사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약 198분으로 남편(62분)의 3.2배에 달했지만 수면 시간과 식사 및 간식 시간, 여가시간은 아내보다 남편이 많았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 문화가 남아 있는 결혼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쉽다. 앞서 본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는 남성의 비율(56.3%)이 여성의 비율(47.5%)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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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전 선임연구위원의 인터뷰 장면 ⓒSBS


  이렇게 결혼 제도와 문화 자체가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혼 장려 정책을 청년 일반에 단순히 적용하는 접근은 여성의 입장을 배제하기 십상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최원진 활동가는 “최근에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는 여성들 중에는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별개로 이중노동이라는 여성의 불평등한 상황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배우자와는 20세기적 관계를, 시댁과는 19세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결혼을 원치 않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출산은 국가 마음, 양육은 개인 문제?


  ‘저출산기본계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또 다른 분야는 ‘출산 및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와 ‘교육·보육 환경 개선’이다. 출산·양육 관련 정책으로는 산모·신생아·난임 부부 지원 확대, 임신출산의료비 경감, 한부모가족과 입양가족지원 등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현재 출산 및 양육에 지원하는 보조금도 턱없이 부족해 정책의 현실성이 낮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가령 산모지원 영역의 경우,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 정부에서는 5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해당 지원금으로는 임신 기간 중 수차례 해야 하는 초음파 검사비와 기본적인 태아 검사비 정도만 보조할 수 있다. 출산 시의 병원비와 입원비, 산후조리 비용 등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특히 산후조리는 보통 산후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를 통해 이뤄지는데 산후조리원에 2주만 입원하더라도 비용이 2-3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매달 10-20만원가량 지급되는 양육수당 또한 실제 양육비 부담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오유석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하면서 건강한 출생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보육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보육 환경개선을 위해서는 보육 돌봄 사각지대 해소, 초등학생 돌봄대응체계 확대, 민간 베이비시터 시장 질 관리, 사교육 부담 경감 등이 제시됐다. 특히 국공립어린이집의 적극적 확충이 필요하다.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보육교사의 질이 높고, 비용이 저렴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한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로 인해 여전히 국공립어린이집의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을 높인 서울시의 경우 2015년 765개였던 국공립 어린이집을 작년 85.5% 증가시켰다. 그런 서울시의 국공립어린이집 비율마저 전체 어린이집의 22%에 그쳤다. 정부에서는 ‘저출산기본계획’을 통해 민간의 기부채납이나 지자체의 지원을 활용하거나, 직장어린이집 등을 장려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직접 보육기관 확충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여성만의 고민, 일-가정 양립


  저출산 정책 중 특히 여성들의 주목을 받는 영역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다. 지금까지는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여성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점차 여성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면서 경력단절을 감내하지 않고 직업 분야에서의 자기실현을 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기본계획’을 통해 육아휴직 후 직장 복귀 지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아빠의 달’ 등을 활용한 남성 육아참여 활성화 등을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왜곡된 가치관을 지닌 채 일-가정 양립 정책을 양적으로 확대·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성 역할 고정관념을 고착시킬 수 있다. 가령 영유아 자녀를 둔 여성에게만 출퇴근 시간을 선택하게 해주는 시차출퇴근제의 경우 그 기반에 육아의 주 책임자를 여성으로 두는 인식이 있다. ‘아빠의 달’ 제정 역시 남성을 육아 과정에서 보조적 위치에 머무르게 하는 정책이다. 민우회의 최원진 활동가는 “여성만을 대상화하는 정책적 접근은 위험하다. 남성에 비해 여성만 특별히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인식하게 되면 기업은 오히려 여성노동자 고용을 꺼리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여러 주의할 점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양립 정책은 특히 저소득층 가정과 여성들에게 중요한 이슈다. 정규직·고소득 여성의 경우도 경력단절로 인한 불평등을 경험하지만, 비정규직·저소득 여성의 경우 일과 가정 양립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주목할 점은 과거부터 출산율의 큰 비중을 차지해 온 계층은 고소득층이 아닌 중간 이하의 계층이었다는 사실이다. 최원진 활동가는 “최근 출산율의 급격한 변화는 중산층 이하 여성들의 출산율이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다. 돈 없이는 절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회, 비정규직은 일-가정 양립 자체가 불가능 사회가 됐음을 보여준다”라고 비판했다.

  최원진 활동가는 실질적인 일-가정 양립을 위해 육아휴직, 조기퇴근 등을 성별과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남녀에게 모두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놨다. 단순히 남성이 육아노동에 참여하거나, 여성이 육아노동을 일과 병행하는 수준을 넘어 육아노동을 공동의 의무로 만들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 일-가정 양립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사노동 및 육아를 바라보는 남성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육아휴직, 조기퇴근 등을 이용하는 직원에게 성별과 무관하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가능하다. 최원진 활동가는 “일-가정 양립이 남성의 고민이 된 적이 없다. 여성은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일자리, 사회활동에 진출했지만 남성은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가사노동, 육아에 여전히 참여를 꺼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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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70, 80, 90년대 가족계획 포스터와 2016년 보건복지부 저출산 극복 포스터 공모전 최우수작 ⓒ보건복지부



‘저출산’ 말고 ‘저출생’



  지금까지 살펴본 저출산 정책 각각의 문제 외에도 저출산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문제점이 있다. 오유석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사용해 온 저출산이라는 표현은 정부의 정책에서는 하나의 문제로 표현돼 인구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게 만든다”라고 비판했다. 때문에 최근엔 ‘저출생’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제안하기도 한다. 책임 주체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빼고 객관적으로 현상 자체만을 보자는 의미다. 왜곡된 여성관과 가족관을 지닌 정부를 생각해 볼 때 ‘저출생’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20세기 후반 가족정책을 통해 인구 감소를 요구했던 정부는 이제 인구 늘리기에 급급해졌다. 때문에 저출생 현상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 변화의 중요하고 시급한 징후들은 놓치고 있다. 오 교수는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저출산을 문제로 진단하고 대처하고자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출생 현상이 일어나는 현 상황을 직시하고 이에 적응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