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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즐거운 책 존 쿳시(왕은철 옮김), <야만인을 기다리며>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우희종 교수 (수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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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전국을 뒤흔들었던 광우병 논란의 과학적 실체를 밝혀 화제가 됐던 우희종 교수. 그는 “우리 스스로를 속박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기초의학자로서, 생명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관계성에 바탕을 두어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면역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전공서적이나 과학과 관련된 철학이나 사회학적 책도 언제나 즐겁게 읽지만, 그래도 보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있어서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책이다.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도 언제나 관계 속에서 펼쳐지며, 스스로의 균형과 조화를 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은 것은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내게 있어서 대표적인 작품을 들라면, 마르께스의 은 인간의 삶이 지니는 상징적이고 신화적 풍요로움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밀란 쿤데라의 은 무거운 카프카와는 달리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주체적 자유인이 지니는 인간의 의미를 통찰 있는 가벼움으로 다루고 있는 점에서, 그리고 존 쿳시의 는 인간 스스로를 속박하는 틀로서 작용하는 우리 안의 허위위식에 대한 통찰이 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마침 올해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관련해 다시금 생각나는 작품이 2003년도 노벨상 수상 작가이자 남아프리카 출신 존 쿳시(J. M. Coetzee)의 대표작인 이다. 소설 전체적으로 너무 주제가 드러나 보일지는 몰라도, 작가는 평이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관조적 시각을 살짝 담아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역량도 잘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이 작품은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허위의식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이 작품에서의 허위의식은 권력이나 인간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인간의 이름으로 치장하고 포장하고 있는 사랑과 연민, 정의, 혹은 법이라는 긍정적인 형태로서의 허위의식 모두를 포함한다. 더 나아가 이 책에는 우리가 지닌 허위의식의 근원에 대한 통찰이 들어있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우리는 삶에서, 살아가면서, 특정 상황 속에서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의 기원은?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변경을 통치하는 한 치안판사의 내적 고백을 통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 속의 야만인을 만들어내는 모순을 비판한다.


물론 이 소설은 문학소설답게 그 두려움에 대한 기원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두려움에 대한 허구성을 깨닫고 있는 자 역시 그러한 허위의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세상에 동참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허위의식을 지닌 자나 그것에 저항하는 자나 그 사회 구조의 동일한 구성원일 뿐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하며 무엇을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남아프리카 출신으로서 백인 전통 속에서 살아가며 다양한 문화 및 인종문제에 직면한 갈등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존 쿳시라는 작가는 허울 좋은 정의라는 것을 표방하면서 우리가 지닌 두려움을 이용해 살아가는 이들, 참된 정의를 위하여 두려움을 무릅쓰고 저항하는 이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어우러져 관계하며 함께 있기에 조화되고 균형 잡힌 이 세상이 지금 이대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본다. 작가는 옳고 그름이나 사랑, 정의, 법, 윤리 등을 뛰어 넘어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거의 그는 옳고 그름의 상대적 세계를 벗어나 종교적 관조의 느낌마저 준다.

두려움을 통찰할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두려움에 대한 통찰이란 그 두려움을 포장 내지 호도하거나 무시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 직면해 그 허구성을 알아차릴 때 자유롭게 된다. 내 안에서 나의 건강한 삶을 속박하는 틀로서의 두려움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일전의 광우병과 관련하여 빚어진 일련의 사태에서도 본질을 볼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정부 측은 권력을 이용해 과학적 사실마저 왜곡하며 국민의 정당한 두려움을 무시하거나 호도했다. 한편, 모든 미국 쇠고기가 마치 광우병에 오염된 것처럼 받아들인 일부 사람들, 이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에 속박돼 오히려 정부의 유치한 논리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야만인, 그것은 상황 또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얼굴의 두려움이며, 광우병이기도 하고 또한 정부의 무책임한 안전론이나 적색 배후론이기도 하다. 개인 스스로가 삶 속의 허위 위식과 그 틀로부터 자유롭기 전에는 그러한 틀을 통해 나를 교묘히 조정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언제고 우리의 삶 속에서 클리셰라는 형태로 종교나 과학, 도덕이라는 허울 좋은 모습과 함께 때로는 유행병으로, 때로는 적색분자로, 때로는 국익, 때로는 민족, 때로는 사랑 등의 허울 좋은 이름으로 사회 속에 전파된다.

하지만 소문만 왕성한 야만인에 대하여 두 눈을 들어보라. 그 자리에는 그런 것에 대하여 목소리를 드높이는 자들의 무지와 탐욕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깨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자의 삶엔 두려울 것이 없고, 각자의 삶의 모습이나 결과, 그 진행이 어떠하건 이 책의 작가처럼 인간에 대하여 따스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읽어 즐거운 문학 작품은 언제나 일상의 삶에 통찰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