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특집
우리들의 무지개를 만들어가다 18번째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등록일 2017.06.23 18:45l최종 업데이트 2017.06.23 18:48l 김명주 기자(audwn011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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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규모가 커지고, 참가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퀴어문화축제에는 100여 개의 부스가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참여해 서울광장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다. 올해에도 다수의 단체가 부스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중 제18회 퀴어문화축제 홍보대사 이열 씨,‘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연대(차세기연),‘언니네트워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열,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민족대명절’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꾸려나가고 있다. 2015년부터 유튜브 방송을 진행해오고 있는 이열 씨도 그중 하나다. 이열 씨는 ‘대한민국 유일무이 프로 게이 유튜버’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성소수자를 온라인에 검색하면 잘못된 편견이 많이 나온다”라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콘텐츠를 확산시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창시절의 첫사랑,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했던 경험, 여자친구가 있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등 본인의 경험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이외에도 ‘퀴어’와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 설명하거나, 구독자로부터 질문을 받아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열 씨는 특히 다른 성소수자의 사연을 받아 소개하는 영상에 애정을 표했다. 제보자들 중 대부분은 커밍아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연을 보내오면, 이열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해주거나, 시청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성소수자는 종종 사회에서 삭제 당하는데, 성소수자들의 사연을 통해 이들 또한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열 씨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후 한 지인에게서 사과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자주 해오던 지인이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는 줄 몰랐다’며 사과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한편 이열 씨는 2015년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 다른 성소수자와 함께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서였다.그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은 공간이 처음이었다”라며 “말하지 않아도 모두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평등한 세상은 이렇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회원이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후로 그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만을 기다리게 됐고, 올해 초에는 이열 씨의 유튜브 방송을 눈여겨보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먼저 홍보대사직을 제안해왔다. 그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퀴어문화축제를 홍보하고 시청자들에게 참가를 권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열 씨는 퀴어문화축제 당일에도 다른 홍보대사 2명과 함께 부스를 연다. 그는 컵이나 스티커와 같은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고, 부스에 방문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상을 촬영할 계획이다. 또한 프리허그 이벤트를 벌여 과거 그가 받았던 위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열 씨는 “퀴어문화축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이뤄지는 성소수자의 명절이다”라며 “우리 존재를 사회에 표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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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열  ⓒ이열 유튜브 채널


차세기연, 크리스천은 퀴어면 안 되나요?


 퀴어문화축제 현장에는 다수의 기독교 단체가 찾아와 펜스 밖에서 행사진행을 방해하곤 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는 펜스 안에도 존재한다. 차세기연은 성소수자이면서 기독교 신자인 회원들이 모여 만든 연대체로, 5년 전부터 꾸준히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들은 2007년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됐을 당시 성소수자 혐오에 목소리를 높였던 일부 기독교 신자들에 반발해 차세기연을 결성했다.


 차세기연의 회원 아이몽 씨는 “차세기연의 회원들은 대부분 성소수자와 기독교 신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회원들은 차세기연에 가입하기 이전은 물론, 가입한 후 현재까지도 수없이 내적 갈등을 겪곤 한다. 또 다른 회원 하늘안개 씨는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회에 가면 목회자로부터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듣거나, 심지어 ‘성소수자 교정을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할 때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내 존재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신앙에서 배척당한다고 느꼈다”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들에게 차세기연은 일종의 ‘피난처’였다. 차세기연은 또 다른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 연대체인 ‘무지개예수’와 함께 ‘무지개교회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무지개교회 찾기 프로젝트는 회원들이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차세기연과 무지개예수는 ‘커밍아웃을 해도 지지받고 함께 할 수 있는 곳', ‘안전한 곳’, ‘열려 있는 곳’ 등으로 교회를 세분화해 회원들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더불어 차세기연은 회원들과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웹진 ‘물꼬기’를 만들어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기도 한다. 아이몽 씨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내가 가진 두 정체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이몽 씨에 따르면 일부 기독교 단체는 차세기연의 부스 앞으로 찾아와 일방적으로 적대기도를 벌이고, 차세기연의 활동을 비난했다. 퍼레이드도 안전하지 못했다. 혐오세력은 다른 참가자들이 없는 틈을 타 차세기연 쪽으로 몰려왔고, 아이몽 씨는 “퀴어문화축제와 차세기연 측 인력이 부족하고 경찰이 적재적소에 없어 많이 두려웠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의 기억은 회원들의 일상에도 많은 지장을 줬다. 아이몽 씨는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혹시 저 사람이 날 알아보고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세기연 회원들에게 많은힘이 됐다. 하늘안개 씨는 “혐오세력도 있었지만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라고 말했다. 퍼레이드 당시차세기연 회원들이 ‘하나님이 퀴어를 만들었다’라고 적힌 깃발을 들자 주위의 참가자들이 깃발을 같이 들어주기도 했다.하늘안개 씨는 “지지자들을 직접 보고, 만나고, 연대하는 경험을 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차세기연은 올해 퀴어문화축제에도 부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아이몽 씨는 “지난해까지는 물고기 모양의 배지를 판매하는 데 주력했으나, 올해는 이에 더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기연 부스는 행사 당일 예수가 그려진 종이벽을 설치한 다음, 방문자들이 이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찍도록 할 예정이다. 차세기연은 이 활동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이몽 씨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통해 예수님이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리려 한다”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행사 당일에는 다양한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의 인터뷰를 담은 ‘성소수자 기독인 사례집’도 배포할 예정이다.


 차세기연은 성소수자 기독교 신자의 존재를 계속해서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몽 씨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사랑이며, 하나의 구절만으로 특정 존재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성소수자 배척은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이제는 사랑으로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지를 얘기할 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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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기독인 연대의 퀴어문화축제 굿즈  ⓒ차세기연


언니네트워크, 퀴어페미니즘을 제안하다


 성소수자 단체가 아니지만 성소수자 인권에 지지하며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언니네트워크는 차별 없는 여성주의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2004년 11월 결성됐다. 결성 직후에는 생물학적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운동을 펼쳤으나, 이후 언니네트워크는 ‘퀴어페미니즘’으로 운동방향을 바꾸었다. 언니네트워크의 나기 씨는 “성소수자 역시 여성주의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라며 “성소수자를 포함하지 않는 운동으로는 성차별이 완전히 종식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나기 씨에 따르면 퀴어페미니즘은 성소수자의 시각에서 성차별을 바라보고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언니네트워크가 진행하는 비혼운동은 이성애자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여성’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을 포괄하고자 한다.


 언니네트워크는 퀴어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꾸준히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어떤사진관’ 부스와 ‘언니네트워크’ 부스를 운영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어떤사진관 부스에서는 언니네트워크의 소모임인 ‘어떤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하거나 무지개 모양 열쇠고리를 제작해 판매했고, 언니네트워크 부스에서는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펢)’을 제작해 방문자들에게 배포했다.


 펢에는 언니네트워크 회원들이 직접 제작한 ‘상상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펢에 광고를 제안해오는 업체도 없었을 뿐더러, 언니네트워크의 이념과 맞는 광고를 찾기도 힘들어서였다. 이에 언니네트워크는 ‘성평등이 이뤄진 세상에서는 어떤 광고가 만들어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직접 광고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퀴어여행패키지, 호모포비아 퇴치 스프레이, 동성커플 가사소송 법인 등 가상의 업체가 만들어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광고가 펢에 실렸다. 이 과정에서 언니네트워크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협업해 ‘청소년을 위한 ‘질’ 좋은 콘돔 자판기’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나기 씨는 “상상광고를 통해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만끽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어떤사진관, 상상광고 등의 활동을 통해 언니네트워크가 성소수자를 배제하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함을 알리고자 했다”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나기 씨는 “처음에는 축제 참가자들에게 언니네트워크의 운동이 이해될 수 있을지 걱정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축제가 시작되자 많은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펢을 받아갔고, 준비했던 300부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나기 씨는 “퀴어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이 언니네트워크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동했다”라고 회상했다. 언니네트워크는 이번 퀴어문화축제에도 부스로 참여할 계획이다. 나기 씨는 “이번에는 축제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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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트워크에서 창간한 '펢'의 3호 홍보 포스터  ⓒ언니네트워크 홈페이지


오늘도 무지개를 그리는 사람들


 매년 퀴어문화축제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이열 씨는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잡아도, 본인의 개성을 감추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나기 씨는 “온전히 존중받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로의 커밍아웃’을 시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누구도 상대방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단정 짓지 않으며, 사회에서 배제됐던 사람들도 온전한 주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 오늘도 서울광장에 무지개를 피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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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참여한 퀴어문화축제  ⓒ언니네트워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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