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문화
아픔 속에 꽃피운 예술 예술로 재탄생한 몸과 마음의 상처, 타투이스트 화윤과 손님들의 이야기
등록일 2017.06.25 22:44l최종 업데이트 2017.06.28 14:32l 정수경(coramdeo64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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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근해지는 날씨에 사람들이 한 꺼풀씩 옷을 벗기 시작하는 6월, 지나가는 사람의 목덜미에 타투들이 눈에 띈다. 포털 검색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도 수많은 타투샵들이 영업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거리에서는 타투샵 간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행 의료법상 타투시술 행위는 '의료행위'로 간주되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시술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로 거듭나고 있는 타투에 씌워진 법의 프레임과 일부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은 타투이스트들과 타투 시술을 받은 사람들을 음지로 몰고 있다.

  그러나 타투가 이제는 비행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벗는 중이다. 패션을 넘어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기자는 흉터를 타투로 덮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힐링 타투이스트, 화윤 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찾아간 곳은 예술인들의 성지인 홍대. 번화가가 아닌 작은 골목들을 지나 마침내 한 빌라의 지하에서 화윤 씨의 작업실을 찾을 수 있었다. 작업실은 단출한 규모지만 아늑했다. 벽에는 화윤 씨가 동양풍의 타투를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가미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뉴오리엔탈' 장르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블라인드에는 고통 끝에 얻게 되는 타투의 아름다움을 비유한 듯 "가시에 찔리지 않고는 장미꽃을 꺾을 수 없다"라고 쓰여 있었다. 화윤 씨는 "타투를 통해 인내심을 갖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꽃 화, 본명 윤도연의 성 윤을 합쳐 만든 예명 '화윤'에는 이처럼 타투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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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타투이스트 화윤 씨 ⓒ김종현 사진기자


꽃 한 송이를 피워내기까지


  기자가 작업실을 찾은 5월 10일에는 게임개발자 정영훈(22) 씨의 타투 시술이 예약돼 있었다. 정 씨는 발등을 연꽃으로 덮을 예정이었다. 큰 작업들은 피부가 회복되는 기간을 고려해 일주일에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하나, 이 날은 시술 범위가 좁아 하루에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안에는 채색이 돼 있지 않았다. "색은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해요." 화윤 씨는 자신감이 넘쳤고 손님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정 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질리기보다는 정이 들 것 같아요"라며 타투가 영원히 남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화윤 씨는 정 씨의 발등 타투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그의 발등을 제모했다. 말끔해진 발등 위에 전사 스프레이를 뿌려서 미리 그려놓은 연꽃 도안을 붙였다 떼어내니 밑그림이 발등에 그려졌다. 빈 부분은 전사 펜으로 메꾸고 나서 본격적으로 타투 머신을 가동시켰다. 치과에 온 듯 기계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두리를 그리는 라인 바늘과 명암을 채워 넣는 쉐이딩 바늘이 타투 머신과 연결되어 있는데, 바늘이 잉크컵에서 잉크를 빨아들이면 페달을 밟아 살갗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먼저 화윤 씨는 테두리를 그리기 위해 잉크컵에 검은 잉크를 붓고 라인 바늘을 잡았다. 명암 바늘에 비해 더 뾰족한 라인 바늘을 보자 정 씨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날 시술하게 될 발등은 지방이 적어 더 아픈 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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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작업 중인 화윤 씨 ⓒ김종현 사진기자  



  "그래도 형이 해서 다행이에요, 빨리 해서." 아픔을 참으며 작업을 지켜보던 정영훈 씨가 입을 열었다. 화윤 씨는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다. 이날 가장 아프다는 라인 바늘 작업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의 피부가 빨갛게 올라왔다. 화윤 씨는 "사람의 몸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하며, "하루에 명암 작업을 3~4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위생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쏟았다. 기계와 연결된 바늘 줄에도 커버를 씌우고, 한 번 사용한 바늘은 바로 버리며 모든 부품은 세척기로 꼼꼼하게 세척한다. 화윤 씨는 피부가 건조해지고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 사이사이 수시로 정 씨의 발등에 크림을 발라주었다. 소독제를 희석한 물을 뿌려가며 소독하기도 했다.


  테두리 작업이 끝난 후 화윤 씨는 즉흥적으로 잉크 팔레트에 갖가지 색들을 섞기 시작했다. 주된 색은 보라색이었고 이후 진핑크색으로 명암을 넣었다. 명암 바늘은 빗자루처럼 생겨서 피부에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는 대신 물감이 스며들 때까지 휴지로 닦아내며 여러 번 반복해 문질렀다. 섬세한 부분은 더 작은 바늘로 바꿔서 채워 넣었다. 노란색 잉크로 수술을 표현해내자 두 시간 만에 작업이 모두 끝났다. 화윤 씨는 "물을 뿌려서 바늘자국을 투영시켜 보면 물감이 잘 스며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피부색에 따라서도 발색이 다르게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드디어 정 씨의 발등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연꽃이 새겨졌다. 본래 피부에 착색되면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져 두 달 후면 완벽하게 발색이 될 것이다.


  이제 정영훈 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타투 시술 직후에는 두 시간 동안 랩으로 싸서 외부와의 접촉을 막고 회복을 촉진시킨다. 이후에는 약 2-3주간 하루에 두세 번씩 화상치료연고나 타투전용연고를 발라줘야 하며, 사람에 따라 진통소염제를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 뜨거운 물이 닿지 않도록 하고, 샤워할 때도 비누가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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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작업을 진행 중인 화윤 씨 ⓒ김종현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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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정영훈 씨의 타투 김종현 사진기자



하나뿐인 타투로 오가는 둘만의 이야기


  한편 화윤 씨는 2년 전부터 사람들의 흉터에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 해외사이트에서 화상 흉터의 색을 본래 피부색깔에 맞춰주는 의료시술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타투를 친숙하게 만들어보고자 시작하게 됐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봉사활동이지만 어려움도 따랐다. 처음 봉사활동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흉터를 또다른 흉터로 가린다'는 등의 댓글들을 보며 처음엔 멘탈이 흔들렸다"라고 토로했다. 시술 일정을 잡아놓고 잠수를 타는 손님들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10만원의 예약금을 받은 후 돌려주는 방식을 도입했는데도 약속을 어기는 무책임한 손님들도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예약에 성공한 손님들은 수많은 무료 커버업 시술 지원자들 가운데 선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화윤 씨는 이메일을 통해 지원자들을 받고 한 달에 한 분씩 뽑아 무료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50개에서 많게는 100개까지도 지원 메일이 오는데, 여건상 모두 해드릴 수 없어 날을 잡아서 읽고 기준에 따라 추린다고 한다. 선발되는 사람은 우선 성인이어야 하고, 상처가 상대적으로 클수록 유리하다. 자해를 하신 분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자해하신 분께 도움을 드리면 (자해하고 타투로 덮는 것에) 의존하거나 중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화윤 씨의 커버업 봉사는 흉터를 가진 이들의 삶을 바꿨다. 김현종(27) 씨는 작년 12월 군대에서 입은 흉터에 커버업 봉사 시술을 받은 손님이다. 김 씨는 2010년 군대에서 훈대를 받을 때 사고로 오른쪽 종아리와 발목 사이에 손바닥 크기의 2도심부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이후 급히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어나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됐다. 사회에 나와서는 흉터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여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2016년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화윤 씨의 타투 이벤트 글을 보고 반신반의하며 신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첫 인연을 맺게 됐다.


  타투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김현종 씨는 얼굴과 팔에 다양한 문신을 갖고 있는 화윤 씨와 어두침침한 스튜디오의 첫인상이 강렬하고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화윤 씨의 유쾌한 성격이 금세 분위기를 녹였고 한층 안심이 됐다고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봉사를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는 신념을 알게 됐을 땐 화윤 씨의 팬이 됐고, 이로 인해 화윤 님의 전문 타투 장르 뉴오리엔탈 타투까지 좋아하게 됐다. 김 씨는 타투 자체 못지않게 작업자와의 상호작용이 소중했다고 회고했다. "(화윤 씨가) 아예 사람을 바꾸셨어요. 길 가다가 보는 자선 구호 홍보도 그냥 지나치고 그랬는데, 화윤 형을 만나고 나서는 조금이라도 귀가 기울여져요. 형도 꿈을 키워나가는 입장에서 어렵게 사는데 자신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봉사를 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거든요." 김 씨는 이후로도 대여섯 번 더 작업을 받으러 갔다. 올해 5월에는 3회에 걸쳐 허벅지에 빨간색 호랑이 타투 시술을 받기도 했다.


  무료 타투 커버업 시술을 일주일 앞둔 문유빈(20) 씨도 만나 봤다. 문 씨는 2015년 12월 경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에 흉터를 갖게 됐다. 작년에 처음 흉터 커버업 상담을 받았지만 미성년자라 받을 수 없었다. 올해 5월 다시 한 번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사연을 보냈고, 화윤 씨로부터 작업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와서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 씨 역시 타투이스트와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했다. "타투에는 작업자 분의 가치관도 같이 담긴다고 생각해요. 타투를 볼 때마다 누가 해줬는지 평생 생각이 날 테니까요." 그래서 선택한 타투이스트가 화윤 씨였다. 봉사정신뿐 아니라, 인간의 몸을 신중히 대하는 가치관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문유빈 씨의 친구들 중에는 이미 타투를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문 씨 역시 타투를 패션으로 생각하지 이들을 '날라리'로 보지 않는다. 그는 "취업할 때도 사람을 보고 뽑아야지 타투가 있다고 해서 질이 안 좋다고 판단하는 회사는 제가 가고 싶지 않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주위 시선을 개의치 않는 문 씨는 타투 시술을 앞두고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모든 이가 대중의 부정적 시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시술을 받은 정영훈 씨는 "업무상 50대 외부 인사들과 미팅을 할 일이 잦은데 개방적인 편인 게임 업계에서도 눈치가 보여요"라며 "마음 가아선 잘 보이는 곳에 하고 싶지만,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등, 팔과 다리에 했어요"라고 말했다. 타투는 사회문화적·역사적 영향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여전히 정신적 예술의 하위의 있는 문화로, 사회적 일탈의 상징으로 배제돼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개개인의 변화로부터 출발한다. 타투이스트 화윤 씨의 인간을 생각하는 예술을 통해 손님들은 한 명 한 명 색안경을 벗고 다양성의 눈으로 타투를 바라보고 있다. 정 씨도 자신을 통해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표출했다. "공식 석상에서 타투를 노출시키면 더 친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직장 생활하면서 타투를 갖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아름다움에 대한 재인식 속에서, 타투는 점점 확장된 예술의 양지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