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문화
각자의 디아스포라가 만나 예술을 피우다 한국 디아스포라 예술의 현주소
등록일 2017.06.27 02:07l최종 업데이트 2017.06.27 02:10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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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는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떠돌아다녔던 이스라엘 유대인을 지칭한다. 하지만 최근 의미가 확장돼,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터전을 떠나 타지에서 삶을 영 위하는 모든 집단을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다. 국외로 추방됐거나, 본토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해 떠나왔거나, 생계를 위해 타국에서 노동하는 경우 등 다양한 종류의 이주는 모두 디아스포라에 해당될 수 있다. 한국에서 디아스포라는 아직 낯설게 들리지만, 디아스포라는 탈북자, 재인조선인, 조선족 등의 모습으로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다.
 
  이주노동자, 난민, 외국인노동자 등 다양한 디아스포라가 선주민과 함께 살아가면서, 문화예술 안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아스포라 예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동경경제대 서경식 교수(현대법학부)는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서 한국 근대 디아스포라 예술이 주로 재일조선인이나 화교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디아스포라 예술은 어떤 주체를 중심으로, 어떤 주제를 다루며 이뤄지고 있을까.   


이주노동자, 예술의 주체가 되다

  이주민은 예술단체를 조직하고, 개인적으로 예술활동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예술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AMCFactory(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는 이주민예술가들의 활동무대를 마련하고, 이주민예술가와 한국인예술가의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2011년 10월 처음 결성됐다. 설립 이전부터 방글라데시, 몽골, 네팔, 한국 네 국적의 예술인이 모여 예술활동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주민예술가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는 극히 드물었다. 이에 AMCFactory는 처음부터 이주민예술제를 개최하고 이주민문화예술공간 ‘프리포트’를 만들어, 이주민예술가의 활동무대를 확보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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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포트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섹 알 마문 감독 ⓒ홍인기 사진기자



  AMCFactory가 서교동과 문래동을 기반으로 활동을 했던 이유도 한국인예술가와의 교류를 위해서였다. AMCFactory 섹 알 마문 단체원은 “AMCFactory가 단순히 이주민모임이었다면 다수 이주민이 모여 있는 안산이나 의정부에 자리를 잡았겠지만, 일부러 다수 한국인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 찾아갔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프리포트에선 이주민예술가가 연극,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활동을 하며 다른 한국인예술가와 교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 전통무용수가 한국인 장구연주자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거나, 2013년에는 프리포트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던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이 ‘지구인뮤직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AMCFactory의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기획팀 중 약 70%가 이주민 당사자로 구성돼있을 만큼, 이주민예술가는 AMCFactory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또한 AMCFactory 단체 원 중 대다수는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마문 씨 는 “자연스레 작품에서 이주노동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AMCFactory의 다문화예술극단 ‘Player’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했던 연극 ‘카페 렝길라’는 이주노동자가 저녁마다 카페 렝길라에 모여 단속과 비자, ‘출국후 퇴직금 수령제도(이 주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퇴직 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등에 대한  민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는 내용을 다뤘다. 연극의 배경인 카페 렝길라는 단속이 뜰 때마다 도망쳐야 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마문 씨는 “카페 렝길라와 같이, 이주노동자가 밀집한 지역에는 그들이 자 주 모이는 카페나 식당이 실제로 있다”라며 “여기서 주말에 만나거나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갑자기 단속반이 뜰 때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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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 알 마문 감독의 '피난' 중 한 장면. '피난'은 시리아 난민 자말과 한국의 이산가족 할머니 사이의 교감을 다뤘다. ⓒ네이버영화



  AMCFactory는 이주노동자의 영화제작을 돕는 이주민독립영화제작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다. 마문 씨는 이 를 통해 2013년 첫 단편영화 ‘파키’를 제작한 이후 현재까지도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인공 파키는 마문 씨의 지인 로빈 쉐익 씨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쉐익 씨가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영화캐스팅이 취소됐던 사정이 영화에 담겼고, 실제 배역도 쉐익 씨가 맡아 연기했다. ‘파키’는 그해 서울 인권영화제 등 다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많은 호응을 받았다. 마문 씨는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에 관해 알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키’ 이후에도 ‘굿바이’, ‘하루 또 하루’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을 영상에 담아내기도 했다. 

  한편 조지은, 양철모 작가로 구성된 믹스라이스는 문화행사를 진행하며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순간’을 강조한다. 조지은 작가는 믹스라이스의 활동을 “초기에는 이주노동자의 주체성을 끌어올리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인식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지만 점차 활동방향이 달라졌다”라고 평가했다. 믹스라이스는 2002년 지역 외국인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교실을 운영하며 시작됐다. 이주노동자가 ‘비디오다이어리’를 제작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 작가는 “이주노동자들과 관계를 쌓아감에 따라 ‘이주노동자’라는 정체성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보다 개개인을 마주하게 됐다”라며 “거창했던 활동도 자연스레 성격이 바뀌 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은 그저 ‘이주노동자와 믹스라이스 모두가 즐거운 순간을 만들자’는 모토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믹스라이스와 마석지역 이주노동 자 알룸 씨가 함께 열었던 ‘마석동네페 스티벌’을 예로 들었다. 조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의미로 마석 가구단지를 ‘우리 내부의 외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 내부의 외부’에 서로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라며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와 사장, 불법체류자와 형사 등 소위 상반되는 사람들이 페스티벌에 함께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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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라이스가 진행한 2014년 마석동네페스티벌 ⓒ믹스라이스



“우리 모두는 이방인” 

  한편 디아스포라는 좀 더 넓게 적용돼 이주민, 이주노동자 외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하기도 한다. 지난 5월 개최된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는 이주노동자, 난민과 같은 일반적인 디아스포라 외에 여성, 성소수자, 재개발지역 거주자 등도 함께 디아스포라로 소개됐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디아스포라는 삶의 터전을 떠나 유랑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의미한다”라며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회의 정상성에서 소외된 이들까지 모두 포괄한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과 같이 사회의 정상성에서 소외된 이들도 ‘정체성 디아스포라’에 해당될 수 있다.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처음부터 디아스포라 개념 을 넓게 이해했던 건 아니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권민령 사무차장은 “제1회 상영작은 탈북, 이산가족, 이주노동에 초점을 맞춰졌다”라며 “당시 한국의 모든 디아스포라영화는 다 다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 개념을 확장해 이해하고 나니 디아스포라영화 로 소개될 수 있는 작품은 무궁무진했다.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부정당한 성소수자의 이야기도, 도시재개발로 인해 도시외곽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디아스포라영화제에 함께 담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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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6일부터 5월 30일까지 5일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열렸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다양한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난민과 이주여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난민문제가 특정한 지역에 한정돼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라며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다양한 지역의 난민에 주목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제 5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는 유럽과 중동 지역의 난민문제 외에도 미얀마·중국 국경의 난민, 아시아지역 난민에 관한 영화도 함께 상영됐다. 그중 폐막작인 ‘노웨어 맨’은 파키스탄에서 탈출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의 이야기를은 다큐멘터리였다. 더불어 이 프로그래머는 “그간 대다수의 난민 영화가 난민이 발생하는 배경이나 조건에 논의하곤 했다”라며 “이제는 선주민 사회가 난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난민1 세대와 2세대가 겪는 갈등을 다룬 ‘침묵’, 핀란드 내 난민에 대한 양극의 반응을 보여줬던 ‘보일링 포인트’ 등의 작품을 통해 난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성찰하고자 했다. 또 다른 주제였던 이주여성 역시 조선족 공장노동자, 탈북 여성, 필리핀 출신 ‘기지촌’ 여성노동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됐다. 이 프로그래머는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이주여성이 결국 감정노동, 성노동 등 소위 ‘여성노동’에만 투입되거나 가부장적 질서 안에 갇히게 되는 현실을 얘기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연대를 통해 디아스포라예술의 어려움 해결해나가야 

  디아스포라예술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돼왔지만 현실적 제반은 아직 열악하다. 섹 알 마문 씨는 AMCFactory의 재정문제를 토로했다. 회원들에게 매달 1만 원의 회비를 받는 것으로는 재정을 충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AMCFactory 는 처음 설립됐던 당시 아름다운재단에 서 3년 동안 사업을 지원받았지만, 지원사업이 종료된 후로는 회원들의 후원에서 대부분의 재정을 조달하고 있다. 마문 씨는 “AMCFactory는 주로 아름다운재단이나 서울시에서 일부 지원금 을 받을 뿐 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은 잘 못 받는 편”이라며, “문화예술재단이 우리를 문화예술단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주노동자가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사회에 부족하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모인 단체는 예술활동보다는 이주노동 관련 인권, 사회운동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정부 기관이나 재단의 지원도 예술활동이 아닌 이주노동운동에 집중된다. 실제로 AMCFactory는 이주노동인권영상 제작 프로그램과 이주민노동상담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위주로 서울시의 지원 을 받고 있다. 마문 씨는 “이런 활동도 물론 즐겁게 진행하고 있지만, 지원금을 받기 위해 기획한 측면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편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주민 당사자의 참여가 부족함을 고민했다. 권민령 사무차장은 “이주민의 방문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전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을 열고, 여기서 이주민이 제작한 영상을 최종적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형식이었다. 권 사무처장은 이주민 공동체에 미디어교육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거주지를 찾아가거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연결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주민이 의심을 많이 가져 접근하기 힘들었다”라며 “여러 공기관에서 자기 기관의 다문화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이주민들을 끌고 다니는 경우가 많고, 이주민이 여기에 경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권민령 사무차장이 여러 번 이주민을 찾아가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도, ‘생계가 우선이지 예술을 할 여유는 없다’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실제로 척박한 삶의 조건은 이주민이 예술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준다. 조지은 작가에 따르면 2006년 믹스라이스와 함께 연극 ‘불법인생’을 진행했던 이주노동자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를 이유로 잡혀가기도 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마석가구단지도 점차 재개발됨에 따라 이주노동자 예술 활동의 지역적 거점도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조지은 작가는 “마석가구단지에서 이뤄졌던 예술활동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꾸준히 얘기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영상 ‘21세기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21세기 공장의 불빛은 비정규직노동자, 해고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청년실업자 등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는 이들과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냈다. 또한 이혁상 프로그래머도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회로 가면 우리가 ‘이방인’이 됨을 물론, 한국 사회 안에서도 소외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슬로건은 환대의 시작이었다. 이 프로그래머는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인 상황에서, ‘환대’는 다른 터전, 국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라고 강조했다. 디아스포라예술 역시 ‘환대’를 필요로 한다. 마문 씨는 “이주민의 예술과 선주민의 예술이 만나 더욱 풍성한 예술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이라며 기대를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