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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더는 법
등록일 2017.06.27 02:14l최종 업데이트 2017.06.27 02:14l 박윤경 문화학술부장(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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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퀴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항상 기도를 바치며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날도 선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실에 들어와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게 있었다면, 그날의 기도제목이 ‘음란함에 빠져 아버지의 섭리를 거스르는 자들을 위한 기도’였다는 점이었다. 기도를 끝낸 후 그는 동성애가 왜 나쁜지, 차별금지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법률인지를 한참 설명했다.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동성애자였고, 어쩐지 다른 남자애들한테 스킨십을 자주 하더라는 자기의 경험담도 곁들여서. 몇몇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틀 뒤 선생님은 화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왔다. 지난수업이 끝나고 자신이 한 ‘설교’ 때문에 씩씩대며 교무실에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그 학생은 나도 동성애자라고, 선생님은 동성애자 제자도 있었다면서 그 교실에 또 다른 동성애자가 앉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느냐고, 내가 왜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숨쉴 틈도 없이 빠르게 뱉어냈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학생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학생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태도였다고 지적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날의 ‘설교’를 되짚어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도 게이가 있어? 소름돋는다, 누구지? 아무개가 그날 좀 기분 나빠 보이긴 했어, 아 정말 걘가?하는 수근거림만이 가득 찼을 뿐.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교육자가 학생에게, 특정한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와는 다른 사람의 문제로 여겨졌고, 쉽게 잊혀졌다. 대학에 오고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을 겪은 후에야 새삼 그날의 공기가 실감났다. 나에겐 그저 어색했던 수업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서늘하고 외로웠던 순간으로 남았을 터였다. 만약 그때 “저도 친구의 의견에 동의하는데요”라고 손을 들어 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니면 교실 게시판에 나도 널 응원한다는 작은 메모 하나라도 붙었다면, 친구의 외로움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번 퀴어문화축제 기사를 준비하며 만난 분들도 외로웠던 경험을 많이 들려주셨다. 어린 시절 이미 눈물이 다 말라버렸다는 분도, 마음 맞는 친구에게 용기 내 커밍아웃했지만 ‘개소리’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분도 계셨다. A대위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날에는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회신고를 위해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분들을 찾아갔었다. 천막을 지키던 한 분은 “성적지향이랑 성별정체성도 기준이 될 수 있다카던데 난민신청이나 해뿔죠, 뭐”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엔 무슨 말을 건네도 공허한 위로로 들릴까 겁나, 그냥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할지 모른다.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칠흙 같은 어두움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팔을 뻗었을 때 누군가가 만져진다면 어떨까. 그렇게 서로 손을 잡고, 말을 건네고, 내 존재를 알리면 어떨까. 그때로 되돌아가 그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내가 매년 퀴어문화축제에 찾아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더라도, 그때 네가 느꼈을 외로움에 한 발짝 다가가고 싶어서.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 환희가 되는 자리에 나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