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특집
학생사회와 민주집중제, 이대로 괜찮을까 기층단위 토론 활성화 위한 실질적 방안 필요해
등록일 2017.06.29 17:07l최종 업데이트 2017.07.01 13:17l 김지숙 기자(okn705@snu.ac.kr), 박주평 기자(pjppjp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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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4일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본부의 실시협약 체결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며 시작된 시흥캠퍼스 투쟁은 다시 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이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는 10개월 동안 2,000여 명의 학생이 두 번이나 아크로폴리스에 모였고, 두 차례 행정관을 점거했다. 비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사건들에는 학생사회의 거버넌스가 있었다. 5번의 전학대회가 소집됐고, 50번이 넘는 총운영위원회가 열렸으며, 각 단과대에서는 단과대운영위원회, 기층단위에서는 과/반운영위원회가 수없이 있었다. 학생사회의 ‘총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문제점을 짚어봤다. 
 
 
학생사회의 오래된 원리, 민주집중제 

  현재 서울대뿐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사회는 민주집중제의 원리로 작동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기됐고, 레닌에 의하여 계승·발전된 민주집중제는 민주적인 의결 과정을 거치되, 의결 사항에 대해서는 반대나 이론 없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시스템이다. 투표로 선출된 정치권력에 의한 하향식 의사결정방식보다 기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상향식 의사결정방식을 통해 독재의 출현을 방지하면서도,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과제를 완수하려는 의도가 결합된 것이다.
 
  민주집중제가 학생사회의 원리로 자리한 시기는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은 1980년에 집권하며 박정희가 실시했던 학도호국단 체제를 부활시켰다. 학도호국단은 대학본부가 단장을 임명하는 형식적인 학생자치에 불과했다.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에야 민주적인 학생회가 다시 세워졌다. 1985년에 입학한 유재석(지질학과·졸업) 씨는 "당시 학생회는 지금과 같이 학생들의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원자율화 이전의 지하서클처럼 반독재투쟁의 구심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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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석 씨에 의하면 당시 학생사회는 민주집중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활동이 암묵적으로 민주집중제에 근거해 진행됐다. 유 씨는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대기 때문에 학생조직에서 민주집중제는 꽤나 오랜 전통이었으리라고 유추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유 씨는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적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과반 찬성이 매우 중요했다. 실제로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수적으로는 소수라도 문화적으로는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았기에 과반의 달성여부 자체가 관심사는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과반 찬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지금처럼 투표가 아닌 과/반 단위의 토론이었다. 유 씨는 “저항의 수단으로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를 실시할 때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토론 후에 과 단위에서 결정하면 모두가 동참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학생사회는 민주집중제를 반영한 회칙에 근거해 주요 의사결정기구를 운영한다. 총학생회원 10분의 1 출석으로 개회되는 전체학생총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지만, 학생사회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 또는 총운영위원회(총운위)를 통해 이뤄진다. 총운위와 전학대회는 모두 총학생회칙에 의거해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대표자들은 민주집중제에 입각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만큼 기층단위에서 민주적인 토론을 주도하고 그 결과를 총학생회의 집행으로 실천할 책무를 지닌다.
 
  전학대회는 전체학생총회의 최고결정권을 위임받은 최고의결기구로, 직접선거로 뽑힌 기층단위의 대표자들에게 대의원 자격이 부여된다. 각 학부/과/반의 학생회장은 운영위원회나 개별적인 토론을 통 자신이 소속된 기층단위의 견을 청취하고 전학대회에서 그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매 학기 1회 정기 소집되는 전학대회는 총학생회의 기조, 예·결산, 회칙 개정안 등 중대한 사안을 심의·의결한다. 총운위는 총학생회의 최고운영기구로서 매 주 1회 정기 소집되며, 각 단과대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장으로 구성된다.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단과대운영위원회(단운위)를 통해 청취한 기층단위의 의견에 기반해 총운위에서 총학생회의 활동 전반에 관한 사안을 의결한다.
 

민주집중제, 이론과 현실의 괴리

  민주집중제가 실천될 제도적 틀은 갖췄지만, 실제로 학생사회의 거버넌스가 민주집중제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민주집중제의 근간인 기층단위로부터의 상향식 의사결정과 중앙의 집행에 대한 구성원들의 복종을 현실에서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시흥캠퍼스 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에서 확인됐다.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라는 ‘총의’는 두 차례 총회를 거쳐 확인했지만, 그 총의를 실천하는 투쟁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실종돼버린 기층단위에서의 토론과 형식적인 상향식 의사결정이 꼽힌다. 2012년 총학생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학생사회에 관심을 가지며 활동한 연창기(영어영문 10) 씨는 민주집중제의 상징인 전학대회가 “일상적 토론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항을 도장 찍는 자리”지만 기층단위에서의 토론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일반 학우들과 대표자들의 의결사항이 유리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의원이 기층단위 전체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면 학생들은 ‘내가 참여해서 결정한 의견이 아니다’라 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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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기(영어영문 10) 씨는 기층단위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인기 사진기자



  연창기 씨는 ‘전학대회 회의운영 시행세칙’에 등장하는 ‘회의는 형식이다’는 말을 들어 전학대회가 본래 취지에 입각해 운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당 세칙은 대의원이 기층단위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다른 대의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전학대회가 결정의 자리기에 자유토론과 구별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작성됐다. 하지만 전학대회가 시흥캠퍼스 투쟁 방향과 같이 민감한 안건을 다룰 경우 2월의 두 차례 전학대회처럼 개회 이튿날까지 난상토론을 벌이다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2월 28일 전학대회에서는 2월 9일 전학대회 이후 20일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같은 단위를 대표하는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고 각기 다른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사회대 알반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박준범(법학전문대학원 17) 씨는 “학생회장을 하는 동안 반 단위에서 토론이 치열했던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발언한 사람들의 의견만 반영되는 대표성의 문제가 있다. 반의 의견이 없으면 단운위에서 내 의견을 많이 피력하게 돼 죄책감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또한 “상위 단위에서 정한 기조나 안건에 대해 하위 단위에 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 같다”라며 “조심스럽지만 학생회 대표자들과 반 구성원들의 의견이 유리되는 경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라는 의견을 냈다.

  김민선(윤리교육 14) 사범대 학생회장은 이 같은 지적에 동의하면서 다시 기층단위의 학생회를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학생회장은 “정말 어렵지만 학부/과/반 학생회가 존재하지 않거나 신뢰를 잃은 단위에서는 단과대 학생회나 총학생회 차원에서 학생회의 존재의의나 필요성에 대해 교양을 진행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전학대회 구성 개편과 직접민주주의 도입등 변화 필요해

  학생사회가 위기라는 오래된 진단에도 불구하고 처방전은 아직 요원하다. 시흥캠 투쟁의 방향이 총운위, 전학대회, 학생총회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은 민주집중제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토론에 기초한 상향식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대표자들의 의결에 힘이 실리지 못하고 학생총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황운중(자유전공 14)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시흥캠 투쟁에 대해) 총운위에서는 대화를 원하는 쪽이 도적이었는데, 전학대회에서는 다소 화됐고, 총회에서는 투쟁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라고 말했다. 학생총회에서 실시협약 철회 기조에 찬성을 던진 율은 약 58%였다.
 
  투쟁의 방법이 총회가 아닌 총운위에서 의결되고, 공대와 자연대 등 일부 단과대가 점거에 불참함에 따라 학생사회의 민주집중제 원칙이 삐걱대는 모습을 보였다. 황운중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개인주의적인 흐름이 학생사회는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정치혐오도 만연해지는 상황에서 (학생사회에)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도정근(물리천문 15) 자연대 학생회장은 기층단위 학생들의 의견 지형이 반영되지 않는 이유로 구조적인 원인을 제시했다. 개설된 학부/과/반의 수가 많을수록 많은 대의원을 보유하기 때문에 전학대회의 단대별 대의원의 비율과 실제 단대 소속의 학생 수 비율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2016년 기준 인문대, 사회대, 공대, 사범대의 학부 재학생 수는 각각 1,557명, 2,003명, 3,877명, 1599명이지만, 2017년 상반기 정기전학대회의 대의원 수는 각각 12명, 12명, 14명, 17명이었다. 도 학생회장은 나아가 “과나 학부 단위로 대의 기구 자체를 나눠놓은 게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산학협력과 같은 일부 사안을 제외하고 학생사회나 사회 전반에 대한 의제의 의견 지형은 전공과 큰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도정근 자연대 학생회장은 “단과대에서 의결한 사항과 총학생회 기구에서 의결한 사항이 충돌할 때 개인적으로는 제가 속한 단위의 의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민주집중제 자체에도 의문을 던졌다. 실제로 도 학생회장은 5월 1일 행정관 재점거를 총운위에서 논의할 때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후 자연대 대표자회의에서 해당 안건이 부결되자 자연대는 점거에 동참하지 않았다. 도 학생회장은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하위기구의 대표자가 상위기구의 의결권자가 되는 구조를 바꾸거나 복지사업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함으로써 학생회가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에 한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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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임시전학대회에서는 격론 끝에 본부와의 협상을 찬성하는 안과 거부하는 안 모두 부결됐다. ⓒ서울대저널 



  반면 연창기 씨는 직선제 대의원제 등의 방법을 통한 전학대회 구성의 개편은 필요하지만 현 상황에서 민주집중제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연 씨는 “학생사회는 노조같이 강제성이 없고 예산도 부족하다. 힘을 행사하려면 학생들 하나하나가 참여하는 방법뿐인데, 넘겨준 주권을 감시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의무를 지우는 대의민주제는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김민선 사범대 학생회장 또한 “기층단위의 전반적인 의견지형을 파악하며 책임감을 부여받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대표자가 아니면 누가 의결권을 행사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학생회장들은 대표자로서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지 계속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표자는 단지 기층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층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거버넌스는 기층단위의 회복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김민선 사범대 학생회장은 “지금 왜 학생사회가 힘을 잃었는지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학생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당위성만이 아닌, 학생회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또 고학번들이 상대적으로 학생회의 의제에서 소홀한 현실에 대해 “학생회가 청년실업과 같이 정치적이면서도 복지와 관련된 의제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일이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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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학생총회에는 2,000여 명의 학생이 모였다. ⓒ서울대저널 



  연창기 씨와 황운중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공통적으로 개별 학생들이 학생사회에 활발히 참여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 씨는 “‘축제하는사람들’, ‘문화자치위원회’ 등 산하기구처럼 특정한 이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리와 예산을 위임하고 약간의 책임을 돌리는, 일종의 아웃소싱을 통해 성과를 낸다면 그를 바탕으로 학생회에 대한 믿음이 쌓인다”라고 이야기했다. 황운중 학생회장은 “(현재보다)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성취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민주집중제를 채택한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해소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시흥캠퍼스와 학내 비정규직 문제, 본부 거버넌스 참여등 학생회의 역할이 산적한 상황에서 학생사회의 거버넌스에 대한 보다 깊은 반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