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사회
드라마가 끝난 뒤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으로 돌아본 방송업계 노동 현실
등록일 2017.06.29 18:20l최종 업데이트 2017.06.29 19:02l 한지민(jmhan111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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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 잔을 나누기에도 버거운 하루. 쉽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혼술을 한다.” <tvN>의 인기 드라마 ‘혼술남녀’는 청년의 어려움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표현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10월 26일, 한 신입조연출의 죽음으로 청년의 이야기 뒤에 청년에 대한 착취가 있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강도 높은 노동과 폭력적인 분위기로 인해 ‘혼술남녀’의 신입조연출을 맡았던 故이한빛 PD가 입사한지 9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고 이후 방송업계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이 주목받았다.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드라마 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방송업계 전반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와 그 원인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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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어려움을 그리며 호평을 받았던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포스터 ⓒtvN 홈페이지



조연출의 이야기: 하루 20시간의 노동과 폭력을 버티다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제작 외주업체가 교체된 후인 2016년 8월 27일부터 故이한빛 PD가 실종된 10월 20일까지, 그가 쉰 날은 55일 중 이틀뿐이었다. 또한 9월 20일부터 9월 29일까지 故이 씨가 잠을 청할 수 있었던 시간은 45시간 20분으로, 하루 평균 4시간 반에 그쳤다. 전체 촬영분의 1/4이 제작된 상황에서 외주업체와 소속 스태프가 대거 교체돼 실질적인 제작 기간이 축소되자 故이 씨의 업무 부담은 더욱 커졌다.


  故이한빛 PD를 괴롭힌 것은 과도한 노동 강도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방송사의 막내 PD인 동시에 외주 드라마 제작사 소속 노동자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였다. 제작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故이 씨는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상사들의 감정풀이를 모두 떠안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유서에서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는 것은 내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었기에 더 이어가기는 어려웠다”라고 밝히며 중간관리자로서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대학시절부터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입사 후에도 받은 급여를 4.16 연대, KTX 해고 승무원 등에게 기부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왔던 그로서는 버티기 힘든 현실이었다.


  사건 이후 6개월간 진상조사가 진행됐고 조사가 끝난 지난 4월 18일,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민주노총 언론노조 등 27개 단체가 참여한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책위는 이번 사건을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돼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살인”으로 규정했다. 4월 18일의 기자 간담회를 시작으로 대책위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펼쳐 9,340명의 서명을 받았다. 더해 CJ E&M 앞에서 1인 시위와 추모제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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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4일, 정병욱 변호사가 CJ E&M 건물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책위 페이스북


  대책위의 활동은 CJ E&M의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을 이끌어냈다. 대책위가 조직되기 전 CJ E&M은 故이한빛 PD의 사망을 단순한 개인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열악한 제작환경이 방송계 관행일 뿐이라고 해명했고 그로 인해 유가족과의 면담이 파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위의 활동 결과 지난 5월 21일 CJ E&M은 그 동안의 제작환경을 업계의 관행으로 합리화했다는 점을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유가족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근무환경과 제작시스템 개선은 물론 고인의 명예회복에 대한 요구를 보다 깊이 이해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논의를 계기로 방송업계에서 선도적으로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라며 사망사건뿐 아니라 업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이후 대책위는 5월 22일 CJ E&M과의 논의를 재개한 상황이다.



“잠자게 해 달라, 밥 먹게 해 달라, 욕하지 말라”

  노동착취와 언어폭력은 故이한빛 PD에게만 일어났던 문제는 아니다. 대책위는 드라마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기 위해 ‘드라마 현장 내 노동실태와 폭력에 대한 제보센터’를 운영하며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제보를 받았다. 일주일 동안 106건의 제보가 접수됐고 그에 따르면 제작기간 중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이었으며, 평균 휴일은 월 4일에 그쳤다. 하루 최대 23시간까지 일을 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청년유니온의 전진희 기획팀장은 위 제보들을 바탕으로 방송업계 노동자들의 요구를 “잠자게 해 달라, 밥 먹게 해 달라, 욕 하지 말라”로 요약했다. 과도한 노동, 낮은 임금, 언어폭력이 방송업계에서 가장 주요한 노동 관련 문제라는 것이다.

  답변들 중 수면시간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많은 제작 현장에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고강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 6시간의 수면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과 철야 노동을 해야 한다. 쪽잠을 잘 잠자리도 열악하다. 사측에서 대체로 숙소를 따로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불편한 찜질방을 전전하는 신세다. 10년 이상 방송계에 종사한 한 제보자는 ‘숙소는 제발 모텔이라도 잡아주면 좋겠다. 수도권에 있는 찜질방 그만 가고 싶다’며 열악한 휴식 환경을 지적했다.

  불안정한 고용 하에서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상황과 그 임금마저도 체불되기 일쑤인 현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106명의 제보자들 중 정규직은 12.3%에 그칠 정도로 방송업계에는 프리랜서나 비정규직등이 많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16년 실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들의 시간당 임금은 약 5715원으로 2015년 기준 최저시급보다 겨우 135원 많았고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방송작가들 중 46%는 급여체불을 경험했고, 추가 수당이나 야간 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송업계에 만연한 권위적인 질서로 인한 언어폭력 역시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주로 겪는 문제 중 하나였다. 선후배 간의 군기문화와 노동착취 문화의 답습으로 인해 막내들은 선배의 극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체적 폭력이 동반되기도 했다. 한 제보는 ‘선배에게 항의해 눈 밖에 나면 입소문에 의해 매장당할 수도 있다’며 선배의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처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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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CJ E&M 건물 앞에서 故이한빛 PD 시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대책위 페이스북


짧은 제작기간과 외주 관행이 만들어낸 ‘막장’ 방송업계


  청년유니온의 전진희 팀장은 앞서 지적한 방송업계 노동문제의 원인으로 우리나라 드라마의 특수성을 꼽았다. 외국에서는 한 편의 드라마가 45분 정도로 구성되고 주로 한 주에 한 회가 방송된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주로 한 주에 2회 편성되며 한 편이 60분을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주에 촬영해야 할 분량이 외국에 비해 월등히 많다. 또한 한국의 경우 제작시일 자체를 3-4개월 정도로 둬 제작 기간이 대체로 외국보다 짧다. ‘혼술남녀’의 경우 7월 5일에 촬영이 개시됐고 9월 5일에 처음 방영돼 고작 두 달의 사전제작 기간을 가졌다. 또한 시청률에 따라 기존에 계획된 드라마 총 횟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경우도 있어 제작상황 역시 유동적이다.


  이와 같은 특수성 때문에 소위 ‘쪽대본’이나 ‘생방송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 일이 비일비재하다. 쪽대본은 작가들이 촬영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급하게 쓴 한 쪽에서 두 쪽짜리 대본을 뜻하고 생방송 드라마는 방송 시간 직전에 촬영분을 준비해 바로 방송에 내보내는 드라마를 일컫는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한국의 드라마 제작관행은 곧바로 방송업계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로 이어진다. 최대한 빨리 많은 양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동시에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선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며 오랜 시간 높은 강도로 노동을 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송업계에서는 지금껏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를 관행으로 여겨왔다. 


  또한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외주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갑질도 존재한다. 실제로 ‘혼술남녀’의 경우에도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외주업체와의 일방적인 계약해지가 있었고 故이한빛 PD는 계약 해지와 계약금을 받으러 다니는 정리 임무를 맡아야 했다. 故이 씨의 유가족 대리인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정병욱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민법이 방송사와 외주업체 간의 계약을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귀책사유가 있다면 계약은 바로 해지당할 수 있기 때문에 외주업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 사실상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에서의 일방적인 계약해지는 결국 외주업체 직원들의 고용안정성을 크게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실성 없는 근로기준법과 표준계약서, NG!

  또 다른 문제는 현행법이 방송업계의 노동 착취구조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합의가 있을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59조에 따르면 흥행업의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했을 때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근로자에게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방송업계는 흥행업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59조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조항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59조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시간 연장에 관한 서면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방송사 측의 일방적인 근로시간 연장을 막기 어렵다. 서면합의 과정을 감시할 노동조합 등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방송업계 사용자는 노동자와 형식적인 합의를 거치면 노동시간에 상한선을 두지 않아도 된다.

  한편 방송제작 스태프의 권리를 보호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준계약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점도 문제로 제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를 제정하여 발표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 사용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표준계약서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5년 실시한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사와 스태프 간에 표준계약서를 적용하지 않은 경우는 65.5%이고 방송사와 독립 PD 사이에 표준계약서를 적용하지 않은 경우는 75%에 달했다. 표준계약서가 활용되지 않는 이유로는 자체계약서로 계약을 맺거나 구두계약을 하던 관행과 방송사가 표준계약서를 적용하기 귀찮아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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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적용 실태 ⓒ'2015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실태조사 보고서'



  작업환경을 규제하는 법 역시 미흡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유지, 증진하도록 적시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역시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들은 벌칙조항이 없어 강제력이 부족하고 방송업계에서는 이런 규정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방송업계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대책위는 노동실태 제보를 바탕으로 ▲표준근로계약을 통한 공정한 계약-노동 관행의 확립 ▲충분한 기획과 제작 기간의 확보를 통한 적정 노동시간의 보장 ▲경력-근무시간에 비례하는 임금보상체계의 확립 등의 제도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법적인 개선방안에 대해서 정병욱 변호사는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서 흥행업 종사자의 노동시간에 대해 최소한의 상한을 둘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이 강화돼야 하며 외주업체에 대한 보호 방안 역시 절실하다”라며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이런 제도적, 법적 개선 외에도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전진희 팀장은 “중장기적인 제도 도입과 더불어 방송업계 내부의 인식 개선이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다”라며 방송업계 관행과 조직 문화의 변화 등을 강조했다. 신입조연출을 죽음으로 내몬 방송업계 구조, 그리고 그를 둘러싼 법과 제도의 문제가 이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