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 > 특집
세계의 기운이 모였던 중심가, 화려한 폐허로 남다 철거를 앞둔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산업단지 세운상가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선혜 기자 (saraw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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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한복판에서 서울의 영욕을 함께한 근대서울의 목격자, 세운상가.

한국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가 군부독재를 하던 시절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평가를 받는다.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래도 박통 때가 먹고살긴 제일 좋았지’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 분들에게 대한민국의 중심은 여전히 종로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근대 서울의 한복판에서 최대 상업지구로 큰 활약을 했던 종로. 종로의 찬란한 발자취와 더불어 함께 기억될 한국 전자제품 산업의 기원,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 복합 상가 이자 ‘여기 명함이면 장가는 문제 없었다’라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용산과 테크노마트의 고향, 세운상가를 아십니까?

70년대 군부독재와 ‘불도저’ 김현옥의 잘못된 만남
마치 영화 필름의 한 장면처럼 찍힌 세운상가의 전경.
1960년대 말, 종로 한복판에 엄청난 화려함을 자랑하며 들어섰던 세운상가는 웅대한 규모와 초현대적 시설을 갖춘 서울시민의 자랑거리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점포 2천개와, 호텔 915개를 수용했던 이 상가는 ‘달리는 불도저’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개발에 미쳐있었던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과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의 합작품이다. 잠실종합운동장, 워커힐 힐탑바 등으로 유명한 김수근은 김현옥 시장이 무허가 판잣집들과 사창가로 인해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던 종로에서 퇴계로로 이어지던 지역의 재개발을 고민하고 있을 때 ‘세운상가계획’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운상가는 북쪽에서부터 종로-청계천로 간(A지구), 청계천-을지로간(B지구), 을지로-마른내길 간(C지구), 마른내길- 퇴계로 간(D지구) 으로 나뉜다. 주상복합건물의 특징을 살려 1~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아파트로 구성되는데 1층과 3층의 상가는 충무로, 종로의 상권과 직접 연계하는 백화점의 기능을 갖도록 하고 2층과 4층은 커피숍˙식당˙병원 같은 도시서비스 기능을 배치했다. 특히 3층에는 보행자용 도로를 설치하고, 지상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공간으로 배치한 것이 매우 획기적이었다. 5~13층에 위치한 상가아파트는 소설에 세운상가 아파트에 사는 서울 멋쟁이 독신남이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장면이 등장하고, 대기업 임원들과 정부 고위인사들, 유명 연예인들까지 앞다투어 입주를 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최고급아파트로 손꼽혔다.
2008년, 지금의 세운상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러나 세운상가의 영광은 너무도 짧았다. 당초의 구상과 실제의 건물군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건물이 지니는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설치 될 예정이었던 유리덮개(아트리움)는 실현되지 않았고, 5층에 만들겠다고 했던 인공대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한 철저하게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겠다는 당초의 구상과 이 건물군에서 의도했던 중점사항 1호인 공중도로 모두 기본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아 매우 흉측한 모습으로 완성됐다. 결국 남북으로 1000m에 달하는 세운상가는 북한산부터 종묘를 지나 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단절하고, 동시에 청량리-광화문-신촌으로 흐르고 있는 동서방향의 시가지 흐름을 차단시키는 위압적인 건물로 비난을 받게 됐다.
흉물로 남은 세운상가 8개 건물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1980년대 초부터 있었다. 1982년 ‘세운상가 도시환경정비구역’ 고시 이후 서울시는 95년 2월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세운상가부지 공원화’를 확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했던 손정목 씨는 ‘앞으로 어떤 시장도 어떤 의원도 이곳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근대식 건물을 다시 세우자는 제안을 못할 것이고, 허가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004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동남권 유통 상권을 기획하며 세운상가 재개발을 추진했다. 뒤이어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 자리에 3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을 세울 계획을 발표했다. 10년 전의 예상을 깨고,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권력은 역사·문화·환경이라는 가치들을 끌어들여 종로를 더욱 광범위한 개발의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이다.

철거는 예정대로, 대체 영업장 완공 지연에는 어설픈 대안 제시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세운상가 일대 지도
20년이 넘게 논의됐던 세운상가 처리문제는 2004년 ‘세운상가 4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 고시와 주민대표회의를 거친 이후 올해 초 서울시와 상인들의 의견조율을 통해 12월에 철거를 완료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올해 3월 소유권을 양도받은 서울시와 예지동 4구역 지주들 뿐이다. 지주들은 높이 150m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허가받은 대가로 현대상가 임대상인들의 영업보상금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주비용을 부담한다. 한편 서울시는 종묘 앞 현대상가부터 남산에 이르는 지역 지주들이 부담하는 철거비용과 추가적인 개발이익으로 그 땅을 공공녹지축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및 취득에 관한 법’(이하 공토법)이 적용되어 1차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현대상가와 세운4구역 상인들은 11월 중순까지 세운상가에서 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해야한다. 대다수의 상인들은 선분양제로 예약접수된 예지동 웅진부지와 장지동에 위치한 돈암동 유통상가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첫째, 12월 철거완료를 앞두고 11월에는 웅진부지에 상인들이 들어갈 장소가 마련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인근에 종묘가 있어서 문화재청에서 당초 계획한 4층 건물의 신축을 불허한 것이다. 결국 2층으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개발이 진행됐지만 결국 5개월 정도 완공이 늦춰졌져 입주 시점이 11월에서 내년 4월로 미뤄졌다. 둘째, 장지동 이주지역은 12월 19일 완공이 돼야 하는데 방대한 사업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4개월 정도 공사가 지연됐다. 결국 11월에 세운상가에서 떠나야 했던 상인들에게 당장 갈 곳이 없었진 것이다.
서울시는 3개월치 영업보상금을 지급했지만, 세운상가는 몇 십 년 동안 그 공간의 가치를 광고해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새로운 브랜드에 적응하는 시간이 길 것임을 감안하면 영업손실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강동희 세운상가 상인연합회장(48)은 “몇 개월 철거를 미뤄도 아무 손해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안 나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곳을 고향처럼 알고 살아온 상인들에게 단 몇 4개월 정도를 연장 해 주는 게 안 되느냐”며 철거를 무조건 강행하려는 서울시의 입장에 답답함을 내비쳤다. 서울시 이삼석 도심재정비담당관은 “웅진부지의 별관공사를 11월까지 끝내서 이주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장담 했지만 공사가 진행 중인 셔터내린 본관 뒤로 세운상가의 흔적을 찾아 올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초고층 건물 개발을 위한 녹지축 조성?
‘천박한 돈의 논리로는 생태를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참여연대 홍성태 정책위원장.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재개발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도심 한복판에 푸른 녹지축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선 직후 강북도심을 뜯어고쳐 녹지 100만평을 조성하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동대문 운동장에 2만평, 강서구 마곡지구에 30만평, 서울역 철로 위에 3만 9000여 평 규모녹지공원 조성과 함께 세운·대림상가 철거 후 지상에 녹지광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빠르게 추진 중이다.
참여연대 홍성태 정책위원장은 이러한 계획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세운상가 재개발에 찬성하며, 녹지축 조성이 환경개선효과나 도시경관 측면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그러나 “그 옆에 초고층건물을 짓는 것은 도심의 생태나 역사·문화 모두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녹지축 조성과 모순되는 초고층건물 건축 계획에 우려를 나타냈다. 덧붙여 그는 유권자인 서울시민들부터 신개발주의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역사나 환경과 같은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낸 전우용 교수는 “녹지와 콘크리트 초고층 건물을 구획화 하는 것이 이미 반(反)생태적인 발상“이라며 ”남산의 조망권과 사대문안의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 계획은 청계천 복원처럼 도리어 환경을 파괴하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도심재개발 계획에 녹지광장 조성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2층으로 제한됐던 재개발 건물의 높이 규정이 이명박 서울시장 이후 30층 이상으로 훌쩍 높아져온 것을 감안 할 때, 생태문화도시 서울을 찾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정책적, 의식적 변화들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멈춰진 시간 속으로 사라질 세운상가를 렌즈에 담다
이 연둣빛 새싹은 세운상가의 40년 흔적을 기억할까.

40년 동안 종로의 안방을 차지하며 영광과 비난을 동시에 맛보았던 세운상가는 70년대 박정희의 무모함을 나타내는 문화적 지표로 남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기형건물군은 70~80년대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이 꽃을 피운 의미 있는 장소다. 또한 20~30년이 넘게 이곳을 지켜온 상인들에게는 재래시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유대관계 속에서 서로 보완하는 문화를 만들어 올 수 있었던 삶의 터전이다. 용산이나 테크노마트 같은 신식 전자단지들이 번성한 지 오래지만, 세운상가는 방송장비나 병원 특수장비 부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단법인 ‘문화우리에서는 올해 초 제3회 도시경관기록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운상가를 선정, 시민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세운상가의 마지막 모습을 다양하게 촬영해 두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연구원 최미영 씨는 세운상가의 가치를 “정치적인 목적 아래 탄생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소멸하는 건축물로, 서울의 도시계획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거대한 상징물”로 평가했다. 기록보존을 하는데 사진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것은 ‘전문가 한 사람보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생산물이 더 가치 있다’는 평가 하에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한 매체를 택한 것이라고 한다. ‘부수지 않고 만드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화우리’의 소망처럼, 세운상가가 역사와 환경, 그리고 삶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