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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삶을 넘어 죽음까지 결정할 권리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박진노 법제이사에게 연명의료결정법을 묻다
등록일 2017.09.01 17:34l최종 업데이트 2017.09.04 17:17l 유서희 기자(cow11035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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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법제이사 박진노씨 ⓒ최한종 사진기자



  연명의료결정법은 생존 가능성이 낮은 환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의지가 있거나 가족이 결정한 경우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법으로, 2016년 1월 입법됐다. 하지만 시행은 순조롭지 않다. 각계에서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았으며,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인 84.4%, 의료진 66.4%가 연명의료결정법을 모른다고 답했을 정도로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박진노 법제이사(보바스기념병원 내과전문의)를 만나 연명의료결정법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물었다.



법령이 생소한 개념들을 많이 담고 있다. 독자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


①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  

  혼동될 수 있지만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임종 전 환자의 통증조절과 정서적 지원 등 살아있는 환자의 상태에 초점을 둔 의료행위다. 반면 연명의료는 현재 환자의 상태를 봤을 때 치료가 유의미한지를 따져 의료행위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 행위를 말한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를 법에서 함께 다루는 경우 호스피스가 임종기에만 하는 의료서비스로 오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② 말기환자와 임종기 환자
  남은 수명을 기준으로 환자를 구분하는 개념이다. 다른 국가들은 중증 상태로 넘어간 환자 모두를 말기 환자로 보며, 이들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한국 의료계에서 ‘말기’라는 용어는 정식 명칭이 아니고, 생명연장을 떠나 환자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을 때 사용된다. 따라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외국과 달리 거의 죽음에 다다른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말기와 임종기가 혼동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③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문서로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임종기에 이를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원하는지 여부를 작성해두는 것으로, 의료진과의 상의 없이 쓸 수 있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이 인식된 시점에 의사 또는 의료코디네이터와의 상의를 통해 작성한다. 다른 국가들은 연명의료계획서를 가족과 함께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본인만 작성 가능하다. 다만 작성 시기에 이르면 환자 본인이 직접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기 때문에, 해당 경우에만 가족 2명 이상의 증거 제시, 가족 전원의 동의 등 절차를 거쳐 작성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개념상의 혼란, 대리인 문제 등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한 논란이 많다던데?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된 혼란을 정리하려면 법의 제정 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대법원은 처음으로 식물인간상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이를 계기로 연명의료결정법이 발의됐다. 법이 몇 년 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를 합해 법안을 구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당시에는 우선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기 때문에 개념상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듯싶다.


  연명의료결정법에 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지만,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환자가 자신의 죽음, 연명의료결정 등을 되뇌며 고민하는 과정이 과연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법이 대리인 선임과정을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행 법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동의서를 작성할 때 대리인 선임을 신청할 수 있지만 하위법령으로 갈수록 대리인의 역할이 축소돼 거의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대리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환자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작성할 때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고,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작성된 서류가 환자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도 큰 문제라고 들었다. 어떤 상황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호스피스는 ‘임종 돌보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임종을 편하게 해주는 것에 더해 간호·종교 서비스 등 폭넓은 호스피스 서비스가 보장돼야 한다. 정부의 목표치보다 호스피스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시설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야만 호스피스 서비스 질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복잡한 행정절차도 문제다. 국가연명의료기관에 처리사항들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해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에 집중할 시간과 노력이 낭비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인력이 국가적으로 보장되지도 않아 병원이 전적으로 부담해야한다. 관련 서류들을 행정기관과 의료기관이 함께 열람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해,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의료진과 환자의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 판단을 담당하는 윤리위원회도 문제가 있다. 환자 대부분은 연명의료에 관한 사안으로 윤리위원회를 찾는다. 지역 병원이 공영윤리위원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 윤리위원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사안은 대부분 판단이 유보된다. 판단을 기다리는 사이에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시스템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환자를 위해 장려해야 할 대리인 제도를 오히려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다. 법적 분쟁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대리인을 규정하는 법이 없어 아직 대리인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 의료인뿐만 아니라 전 국민 차원의 문제 제기가 이뤄져야 대리인 제도가 법조항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독신 인구가 많아지고, 연명의료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질환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미리 작성하지 못해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연명의료를 불가피하게 만들어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연명의료관련 내용들이 미리 잘 정립이 된다면 미래의 충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전망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는 한계가 있다. 제도를 먼저 시행한 다른 국가들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작성한 사람보다 더 많았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연명의료계획서를 가족 혹은 대리인도 작성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