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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잡고" 매튜 워처스 감독의 '런던 프라이드(2014)'
등록일 2017.09.02 15:11l최종 업데이트 2017.09.06 14:45l 송재인 기자(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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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 15, 서울광장에서 18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성적 다양성과 성소수자 운동 지지를 상징하는 무지개는 올해 조금 다양한 색으로, 그러나 선명한 빛으로 여름 하늘을 장식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알바노조’,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다양한 정체성의 단체를 퍼레이드 부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갖가지 색의 목소리들이 연대라는 틀 아래 축제의 현장을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올 여름 서울의 무지개만큼 빛나는 연대를 다룬 영화가 있다. 영화런던 프라이드. 영화는 1984 장기 파업 투쟁에 돌입한 영국 광부노조와 이를 지지하는 성소수자 단체간의 연대를 다룬다. 그러나 연대는 빈틈없이 완벽한 모범답안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연대는 어딘가 엉성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벅찬 동화처럼 다가온다



레즈비언도, 게이도, 광부도 아닌 너와  


  1984 영국의 대처(Thatcher) 정부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탄광을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광부들은 장기 파업을 선언했다. 런던 성소수자 모임의 마크는 소식을 접하고 일원들에게 광부를 위한 모금을 제안한다. “우리가 받아온 차별과 억압을 지금 광부들이 받고 있다 연대의 의무를 제시하는 마크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광부들이 우리를 번이라도 도운 적이 있냐며 되묻고, 누군가는 매일같이 자신을 끔찍하게 조롱했던 이들이 바로 광부들이라고 말한다. 연대의 필요성을 묻는 날선 눈빛들에 마크가 제시한함께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느슨한 답은, 일원들에게 가닿지 못한 채 힘을 잃는다


  결국 7명의 인원으로 시작한 'LGSM(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광부를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 매일같이 모금활동을 진행하지만, 정작 모금액을 전달받고자 하는 단체를 찾지 못한다. 성소수자 단체의 모금은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처음으로 승낙을 한 곳은 웨일스의 작은 탄광촌. 말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고, LGSM 성소수자 단체인 줄 모른 채 후원을 승낙한 것이다. 집단의 연대는 필연이라기보다 우스운 우연에서 시작한다


  웨일스 광부 대표 다이와 LGSM 런던에서 처음 만난 날, 두 집단은 짐짓 민망한 털어놓는다. “당신들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게이들이에요.” “당신도 내가 처음 만난 광부예요.” 짐짓 무례해보이는 두 집단의 인사말은 서로에 대한 인식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서로를 이름이 아닌 광부, 게이, 레즈비언으로 명명하고 이해하는 집단에는 여전한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손을 내밀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있다


  이후 모금액이 증가하고 LGSM 웨일스에 가장 많은 모금액을 전달한 단체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두 집단의 간극을 좁히지는 못한다. 웨일스의 마을 회관으로 초청된 LGSM 온기 없이 적대감만 가득한 마을 사람들의 눈을 마주한다. “감사 편지만 받았으면 됐지, 여긴 온대?” “변태들(perverts) 돈까지 받아야해?” 그날 숙소에서 LGSM 연대의 필요성, 아니 최소한 가능성에 대해 자문한다


  다음날 저녁 회관의 온도는 전날과 사뭇 달라진다. LGSM 게이 조나단은 직접 디스코 음악을 선곡해 멋들어진 춤을 추고, 마을 사람들은 시선을 뺏긴다. 남자가 춤추는 건 처음 본다며 신이 난 웨일스 여성들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를 웨일스의 청년들은 조나단에게 다가가 서툰 부탁을 한다. “춤을 가르쳐주세요.” 회관을 채운 음악과 몸짓 속에서 LGSM 웨일스 사람들 사이 새로운 색의 대화가 싹튼다. 웨일스의 호호할머니 그웬은 레즈비언 텔라에게레즈비언에 대해 말도 되는 얘길 들었어. 레즈비언은 진짜 다 채식주의자야?”라고 묻고, 스텔라는 미소를 지으며나는 엄격한 비건이라 답한다. 웨일스의 주부 게일은 게이 부부에게부부라고요? 그럼 집안일은 누가 하죠?”라고 묻는다. 날선 말을 들을까 걱정하던 게이 부부는 오히려 게일의 질문에 안도한다. 옅은 편견이 묻어나는 질문들에도 성소수자들은 한층 누그러진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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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의 디스코 춤은 마을회관의 분위기를, 나아가 탄광촌 남성들의 술자리 문화를 바꿔놓는다. ⓒ영화사 '진진'



  두 집단은 서로의 진부한 일상을 캐물으며 서로에게 붙이는 수식어를 늘려 간다. 춤을 추는 게이, 채식을 하는 레즈비언, 집안일을 나눠하는 게이 부부. 서로를 집단의 이름으로 부르던 이들은 장황한 수식어가 붙은 자신에게 맞는 이름을 입는다. 이름이 늘어날수록 견고한 테두리는 무색해지고 집단을 둘러싼 편견과 두려움도 한 꺼풀씩 벗겨진다. 남은 게이도, 레즈비언도, 광부도 아닌 너와 내가 맞잡은 손이다



유쾌하고 단단하게 맞잡은  


  순탄해보이던 연대는 파업이 장기화되며 위기를 맞는다. 이전부터 LGSM 적대적이었던 일부 광부들은 이를 기점으로 파업 투쟁만으로도 벅차다며,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소수자들은 우릴 돕는 척하지만 자신들의 인권만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연대에 회의적이던 성소수자들도 점차 자신을 드러낸다. 게이는게이들은 에이즈로 매일 죽어나가는데 광부를 걱정할 때냐 LGSM 일원 게딘을 무차별 폭행한다. 외부의 비난 속에서 결국 광부 측은 마을 사람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LGSM 모금액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연대는 허무한 끝을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모금이 중단된 이후에도 여전히 두 집단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도리어 더욱 견고하게 잡고 있다. LGSM 로고가 박힌 차를 타고 시위 현장으로 향하던 웨일스 사람들은 지나가던 운전자로부터 혐오 섞인 질문을 듣는다. “당신들 설마 레즈비언이요?” 웨일스 위원장은 묵직한 농담을 던지며 방을 날린다. “맞아요. 스완지에 레즈비언 파티하러 갑니다.” 차별과 혐오의 장면들에서 두 집단은 무르고 여리기만 약자가 아니라, 단단하고 유쾌한 연대의 주체들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 연대의 주체가 확장된다. 웨일스 광부를 비롯한 전국의 광부노조가 대거 1985 런던의 성소수자 행진에 참여한 것이다. LGSM과 광부들은 참가 단체 중 인원이 가장 많아 행렬의 선두에 서게 되고, 각자의 깃발을 들고 행진을 준비한다. 이내 각종 광부노조의 깃발과 성소수자 인권을 외치는 깃발이 뒤섞이고, 서로가 서로의 자긍심이 된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 끊임없이 연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되물으면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이들은, 마침내 자긍심으로 가득한 축제를 맞이한다. 우스운 우연에서 시작해 엉성한 악수를 거쳐 한 편의 동화로 거듭난 그들의 연대는, 어쩌면 결국 필연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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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런던의 성소수자 행진은 자긍심으로 가득한 축제였다.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