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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에서 사람길로? 보행중심도로 내건 서울로7017, 교통약자 배려 부족해
등록일 2017.09.03 14:44l최종 업데이트 2017.09.03 14:52l 박고은 기자(rmutt191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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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0일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7017(서울로)’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로7017은 ‘70년에 지어져 17년에 재탄생한 17개의 보행길’이라는 뜻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2012년 안전등급 D등급을 받고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안전공사를 거쳐 서울시민을 위한 보행길이자 도심 속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서울로 현상설계공모전 심사위원이었던 조경진 교수(환경대학원)는 이를 “차량중심도시에서 사람중심도시로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평가했다. 사람보다 차량의 이동이 중시되던 시대의 대표적인 고가도로가 보행중심도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21세기 도시는 보행·사람 중심의 가치를 추구한다”며 서울도 서울로를 통해 세계적 흐름에 동참했다고 평가했다. 과연 '보행중심도로' 서울로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을까? 개장 석 달 반이 8월 10일, 서울로를 찾아가 봤다.



교통약자가 배제된 ‘사람길’


  ‘찻길에서 사람길로’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서울로는 사전점검 단계에서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도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화분이 다수 배치돼 휠체어이용자의 이동에 제약이 많고, 점자블록이나 음성유도기 등 시각장애인 안내표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서울특별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우창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사전점검 이후 교통약자의 통행에 불편함이나 위험을 줄 요소가 상당부분 개선됐다고 밝혔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휠체어이용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시는 기둥을 따로 세워 버튼을 설치했고, 부딪힐 수 있는 높이에 있던 이정표도 올려 붙였다. 노약자 탑승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문도 투명한 유리창이 있는 것으로 바꿨다. 서울시 서울로사업운영팀 허준 씨에 따르면 개장 초기에는 오후 10시까지만 가동하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도 교통약자의 편의를 위해 현재 24시간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김남진 사무국장은 “여전히 서울로에서 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은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로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시작점과 교차로, 계단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설치돼있지 않다. 음성으로 현위치, 화장실, 동선, 방향 등을 안내하는 음성안내유도기가 이를 보완할 수 있지만, 진출입로에만 설치돼있어 그 수가 부족하다. 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안내판에 점자를 병기해야 하지만 청파동 방향 출입로 입구의 지도안내판에는 점자표기가 빠져있다. 안내책자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도서가 따로 구비되지 않았고, 장애인 화장실이나 경사로 등 장애인편의시설 역시 표시돼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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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난간은 약시인 시각장애인이 인지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약시 시각장애인들 또한 통행에 불편함이나 위험을 겪을 수 있다. 서울로의 투명한 유리난간은 약시인 시각장애인이 인지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서울시 장애인편의시설 매뉴얼은 색 띠 등으로 유리에 별도의 표시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서울로에는 실현되지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우창윤 의원은 화분 아랫부분에 노란색이나 주황색 띠를 둘러달라고 서울시 측에 요청했다. 서울로 보도와 화분이 같은 콘크리트 재질로 이뤄져, 약시 시각장애인들이 바닥과 장애물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청은 설계자의 반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우 의원은 “디자인을 과도하게 훼손할 수 없어 통행에 크게 방해가 되는 화분에만 표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실행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유로운 화분 배치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전점검 단계에서 문제가 지적된 후 서울시는 휠체어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도로폭을 확보하고, 화분 수를 줄여 배치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화분 사이 간격이 좁아 휠체어 이용자는 난간 가까이 접근할 수 없고, 통로를 안전하게 이용하기도 어렵다. 통행로 전체에 점자블록을 설치할 수도 없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의하면 점자블록을 일직선으로 보행로 전체에 설치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재 통행로는 화분배치로 인해 구불구불한 상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창윤 의원은 “서울로의 화분 배치는 공원의 관점에서는 아름답지만, 통행의 관점에서는 장애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경진 교수 역시 “설계자의 디자인 욕심이 강해 모든 이용자의 공평한 접근권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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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의 구불구불한 보행길은 휠체어이용자의 이동이나 점자블록 설치에 어려움을 준다.



서울로7017, 심미성 이전에 평등한 접근성 보장돼야


  김남진 사무국장은 “심미적인 디자인 이전에 모든 이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제시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를 의미한다.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배리어프리 디자인’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서울시가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면서도 서울로 일부에서는 배리어 프리 디자인도 충족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서울로가 도시 재생을 부각하기 위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침해한 부분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서울로를 시작으로 보행자 중심의 도로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16년 5월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가 제정됐고, 서울시는 2020년까지 보도와 차도 간 단차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밝혔다.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사람중심도시를 위한 계획에 서울로를 온전한 ‘사람길’로 닦아가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