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특집
이렇게 좋은 걸 왜 몰랐을까? 기자의 생리컵 체험기
등록일 2017.09.03 15:05l최종 업데이트 2017.09.11 21:39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조회 수:4807

  여성환경연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지난 4월 여성 1,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 월경용품 사용실태’에 따르면 응답자 중 98%가 생리용품으로 일회용 생리대(생리대)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반면 다회용 면 생리대와 삽입형 일회용 생리대(탐폰) 사용자 는 각각 8.6%, 12.9%에 그쳤다. 조사는 대다수 여성들이 생리대를 주된, 혹은 유일한 생리용품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여성환경팀장은 “가부장적 성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성교육은 여성 생식기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친다”며 “다양한 생리용품을 알아보고 시도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기자 또한 초경 선물로 생리대를 받은 이후, 생리대를 생리용품의 고유명사처럼 여기며 사용해왔다. 그러나 생리대와 함께하는 6년은 힘들었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어 생리대가 피부에 쓸릴 때마다 염증이 발생했다. 생리대의 화학약품은 생리통을 심화시켰고, 생리대에서 나는 악취에도 영향을 줬다. 증상이 심할 때는 면 생리대를 시도해봤지만,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곧 포기하고 생리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유기농 면 생리대는 12개에 7천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최근 ‘릴리안’ 생리대의 안전성 논란이 촉발되면서 여성들 사이 대안 생리 용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생리컵은 아직 국내에 정식 수입 되지 않았지만, 지난달 초 식약처가 “빠른 시일 내 국내 생리컵 수입을 허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리컵은 질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실리콘 재질의 생리용품으로, 저렴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연 작은 실리콘 컵은 생리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용과 건강을 걱정할 필요 없는 생리를 꿈꾸며, 국내 수입될 예정인 생리컵 ‘페미사이클’을 직접 사용해봤다.


(1) 생리컵 비교 @menstrualcups.wordpress.com.jpg

생리컵의 종류는 색, 모양, 회사, 경도 등에 따라 다양하다. 일반적인 생리컵은 종모양이지만 왼쪽 아래 페미사이클은 조금 더 넓고 짧은 모양이고, 생리혈이 잘 새지 않는 장점이 있다. ⓒMenstrualcups.wordpress.com



21년 만에 알게 된 나의 자궁경부길이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생리컵은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주문해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는 다양한 형태, 색, 기업의 생리컵이 소개돼 있었지만, 본 적도 없는 물건을 모니터 상으로 판단해 고르기란 어렵고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느린 배송도 문제였다. 2년 차 생리컵 사용자 현호정 씨는 “생리가 끝나자마자 생리컵을 주문해야 다음 생리 전에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생리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던 기자는 자궁경부길이, 생리컵의 단단함과 크기, 세 가지를 기준으로 생리컵 고르기를 서둘렀다.

  짧은 자궁경부에 긴 생리컵을 사용하면 생리컵이 자궁경부와 닿아 아플 수 있고, 반대로 긴 자궁경부에 짧은 생리컵을 넣으면 나중에 빼내기 힘들기 때문에, 생리컵 선택 시 자궁경부길이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질에 손가락을 넣기 전 손톱을 짧게 잘라 뭉툭하게 만들고 비누로 깨끗이 씻어 상처와 감염에 대비했다. 하지만 자궁경부의 길이를 재는 일은 당혹스러웠다. 과거 탐폰 사용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질 입구를 찾았으나, 중지를 넣어 손가락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파악하는 과정은 불쾌했다. 단 한 번도 질에 손가락을 넣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청결이 중시되는 질과 일상생활을 하는 손이 닿는다는 사실이 찝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의 주저 끝에 손을 넣은 결과, 예상과는 반대로 아프지 않아 놀라웠다. 내 몸을 만지는 과정이 왜 고민스러웠던 걸까? 스스로 질 삽입에 대한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에 알게 됐지만, 자궁경부길이는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생리 시작 전 측정은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허탈하기보다는 성취감이 앞섰다. 지금까지 관심조차 없었던, 혹은 관심을 주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내 몸을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생리컵 넣기부터 교체하기까지…도전의 연속 

  공교롭게도 생리컵과 함께하는 첫 생리예정일이 3박 4일 멘토링 캠프 일정과 겹쳤다. 아직은 낯선 생리컵과 함께할 합숙이 걱정스러웠다. 고민도 잠시, 캠프에 늦지 않기 위해선 빨리 화장실에 들어가 생리컵을 착용해야 했다. 생리컵은 그대로 질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번 접어 삽입한 후, 질 내에서 생리컵이 펴져 생리혈을 받아내게 된다. 생리컵 접는 법은 'C폴드‘, ’7자 접기‘, ’펀치 다운‘ 등이 대표적이지만, 기자가 구매한 페미사이클의 경우 보통 생리컵보다 두꺼워 이를 적용하기 어려웠다. 결국 생리컵을 두 번 겹쳐 접는 ‘리비아폴드’ 방법으로 15분 만에 질에 넣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생리혈로 이미 질 내 수분이 충분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통 없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2) 생리컵 폴드 @레나컵.png

생리컵을 접는 법은 개인의 선호와 생리컵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 ⓒ레나컵공식홈페이지



  첫째 날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생리하는 느낌 자체가 들지 않았고, 생리대를 사용하며 느꼈던 불쾌함이 상당 부분 해결됐다. 캠퍼스 곳곳을 뛰어다니고, 화장실도 자주 가지 못했지만 문제 없었다. 생리대가 1회 평균 15~20ml의 생리혈을 흡수하는 데 비해, 페미사이클은 약 두 배의 생리혈을 담을 수 있어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마다 엉덩이를 쓸어 바지에 생리혈이 묻지 않았는지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튿날부터 이유 모를 복부압박감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고자 해도 관련 정보를 찾기는 힘들었다. 인터넷에 생리컵이 단단하면 방광압박이 생길 수 있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페미사이클은 생리컵 중에서도 부드러운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의문을 풀 수 없었다. 블로그 외에는 생리컵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고, 그마저도 정확히 내 몸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설명해주지 못했다. 실제로 전문 의료기관에서조차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7월 20일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생리컵 사용경험을 통해 본 월경 문화 집담회’의 한 생리컵 사용자는 “산부인과에서 생리컵에 대해 물었을 때 의사가 생리컵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지적했다. 

  생리가 끝나가면서 통증은 다소 완화됐으나, 공중화장실에서 생리컵을 교체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생리혈이 넘치거나 생리컵 내 세균이 번식하는 경우를 방지하려면 6시간에 한 번은 생리컵을 질에서 꺼내 씻어야 한다. 멘토링 캠프 중 하루의 대부분을 바깥에서 보냈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에서 하루에 두 번 이상 생리컵을 교체해야 했다. 세면대를 사용할 수 없어 500ml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후, 공중화장실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 생리컵과 손을 씻었다. 생리컵을 바닥에 떨어트리거나 한 번에 삽입하지 못하면 다시 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긴장한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야했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생리혈을 통해 내 몸을 바라보는 일

  원인모를 복통과 번거로움에도 생리컵의 이점들은 달콤했다. 다리를 벌리며 격한 운동을 할 수 있었고, 어떤 염증이나 간지러움도 없었으며, 환경에 대한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생리컵에 담긴 생리혈을 마주하며 내 몸을 바라보게 됐다. 생리혈의 양과 점도를 확인하며 스스로 몸을 점검하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호정 씨 역시 “생리컵을 쓰기 이전에는 생리혈이 오염됐다고 생각했지만, 생리컵에 담긴 피는 더럽거나 냄새나지 않았다”며 “생리혈이 청결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됐다”고 말했다. 


(3) 생리컵수입기사에 달린 댓글 @네이버뉴스.png

7월 초 생리컵 공식수입 기사에 달린 일부 댓글. 삽입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네이버뉴스



  생리컵은 생리와 생리하는 신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국내 생리컵 사용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구매방법의 어려움, 미흡한 홍보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건국대 윤김지영 교수(몸문화연구소)는 질 내 삽입형 생리용품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그는 “여성 순결 이데올로기가 생리컵 사용을 막는다”며 “질 내 삽입이 남성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통념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 했다. 삽입형 생리용품 외에도 생리대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생리용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팀장은 생리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는 사회적 인식을 지적했다. 여성이 생리대의 불편함을 호소하더라도, 여성이라면 응당치러야 할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개인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생리용품은 생리를 위한 도구일까 혹은 생리에 대한 족쇄일까? 적어도 기자에게 생리컵은 그동안의 족쇄를 벗어던지게 해준 훌륭한 생리용품이었다. 생리대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골칫거리였던 생리는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내 몸’이 됐다. 사회의 편견과는 달리 생리컵은 스스로의 신체를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주도권을 가져다준 도구였다. 기자는 앞으로도 생리컵과 함께 생리를 마주할 예정이다. 생리컵,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나 오늘 생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