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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서울대'에 없는 것 소외된 외국인 학생의 학습권
등록일 2017.09.03 19:46l최종 업데이트 2017.09.04 09:00l 장은재 기자(kozk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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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현재 서울대학교에는 2,30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전체 재학생 28,000여 명의 약 8.2%에 육박하는 숫자다. 국제협력본부는 2010년 2차 국제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외국인 학생 유치에 힘써왔으나, 정작 외국인 학생들은 서울대 내에 자신들을 위한 강의 체계가 확립돼있지 않다고 말한다.



제한적인 영어 강의, 임의로 한국어로 바뀌는 경우도 잦아

 
  외국인 학생들은 영어 강의가 제한적으로 개설돼 수업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2017학년도 2학기 학부과정에 개설된 강의 3,497개 중 영어 강의는 343개로, 약 9.8%를 차지한다. 특히 전공 과목의 경우 영어 강의는 2,234개 중 171개(약 7.5%)로, 일부 학과에는 영어 강의가 아예 개설돼있지 않기도 하다. 제랄딘 팔라시오스(Geraldine Palacios, 물리 14) 씨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강좌를 듣는 일은 힘들다. 기본적인 단어부터 외워야 하고, 전날 미리 수업 내용을 번역해와야 조금이나마 강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 선택 시 우선적으로 영어 강의 여부를 고려한다며, “해양학을 복수전공하고 싶었지만 영어 강의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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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학년도 2학기 단과대별 전공 과목 개설 현황



  교양 과목 1,202개 중 영어 강의는 172개(약 14.3%)로, 전공 과목에 비해 상황은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러나 ‘외국어’, ‘수량의 분석과 추론’, ‘한국의 이해’ 영역에는 10개 이상의 영어 강의가 열리는 반면, ’인간과 사회’, ‘생명과 환경’ 영역에는 강의가 개설되지 않는 등 영역마다 영어 강의 수에 편차가 심하다. 또한 이론과 실험 수업이 함께 있는 실험 과목에서는 영어 강의라 하더라도 이론 수업은 영어로, 실험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교과목 개요만 봐서는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개설된 영어 강의마저 경쟁률이 높아 수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쯔베토미라 베코바(Tsvetomira Vekova, 국문 14) 서울대학교 외국인학생회(SISA) 학생회장에 따르면 “한국인 학생의 졸업 요건에 일정 학점 이상의 영어 강의를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영어 강의가 일반적으로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한국인 학생 사이에서도 영어 강의의 수요가 높다. 그는 “경영대의 한 과목에서는 영어 강의와 한국어 강의가 모두 개설되는데, 한국인 학생들이 영어 강의를 먼저 신청해서 보통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 강의를 듣게 된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영어 강의가 사전 공지 없이 종종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베코바 회장은 “외국인 수강생이 소수라면 강의 진행 언어가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온 교환학생 A 씨에 따르면, 영어 강의 첫 수업에서 교수가 A 씨를 보고 “여기 외국인 학생이 있으니 우리가 영어로 말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멕시코 출신 유학생 B 씨는 강의 진행 언어가 임의적으로 변경돼 학업 부담을 크게 느낀 결과, 한 학기 만에 물리학과 석사과정을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강의 진행 언어를 교수의 재량에 따라 바꾸는 것을 방지할 수단은 현재 마땅히 없다. 베코바 회장은 “익명 신고가 가능하긴 하지만, 외국인 수강생이 적다면 교수가 신고자를 알 수 있다”며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평가상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SISA는 지난 6월 9일 정기 포럼에서 ‘마이스누(mySNU)’ 강의평가에 강의가 어떤 언어로 진행됐는지 표기하는 항목을 추가해 달라고 국제협력본부에 요청했다. 이에 국제협력본부는 “논의 중에 있다”라고 답했을 뿐, 뚜렷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과장된 홍보와 빈약한 강의 체계, 해결은 지지부진


  영어 강의가 부족하다 보니, 교환학생과 달리 졸업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유학생의 경우 한국어 강의 수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의 상당수는 ‘한국어를 못해도 졸업할 수 있다’는 정보를 받고 서울대로 온다.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홍보물에 해당 문구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협정을 맺은 대학교의 홈페이지마다 홍보물의 내용이 다르기도 하다. 퀸즐랜드 대학교(The University of Queensland) 홈페이지에는 서울대 전체 강의의 15%가 영어 강의라고 나와있고, 셰필드 대학교(The University of Sheffield) 홈페이지에는 서울대 내에 800여 개의 영어 강의가 제공된다거나 모든 과목에 영어 강의가 포함돼있다고 나온다.


  실제로 외국인 학부생 모집 요강에 따르면 한국어 구사 능력은 필수 조건이 아니며, 영어와 한국어 중 하나의 공인어학시험 점수만 있어도 지원할 수 있다. 베코바 회장은 “많은 학생이 한국어를 전혀 못해도 공부할 수 있다고 알고 서울대로 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며 “한 외국인 학생은 영어 강의가 없는지 모르고 디자인학부에 입학해, 1년을 휴학하고 한국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과장 홍보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SISA를 통해 접수돼, 국제협력본부가 현재 홍보물 문구를 수정하고 있으나, 홍보물의 양이 많아 완료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또 10년 전부터 외국인 학생을 위한 강의 체계가 부실하다고 지적돼왔으나 아직까지 큰 진전은 없다. SISA는 ▲한국어 강의들 중 절대평가 비율을 늘려 영어 강의 수요를 줄이는 방안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을 구분해 평가하는 방안 ▲모든 강의에서 과제와 시험을 영어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으며, 외국인 학생 사이에서는 세 번째 방안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고 전했다. SISA는 매년 국제협력본부와의 포럼에서 위 방안들 중 하나를 실행할 것을 몇 년째 요구했지만, 국제협력본부는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만 되풀이해왔다.


  제랄딘 팔라시오스씨는 “서울대의 국제 대학 순위는 높으나, 외국인 학생의 처우는 그렇지 않다”며 외국인 학생을 위한 강의 체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학생이 서울대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강의 체계의 구조적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