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사회
비전투병, '꿀보직'과 '사노비' 사이 사적업무 수행으로 가득한 비전투병의 군복무
등록일 2017.09.03 20:13l최종 업데이트 2017.09.03 20:14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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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1일 군인권센터가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 등을 대상으로 ‘갑질’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7월말부터 8월초까지 복수의 병사들은 박 전 대장 부부가 텃밭 가꾸기 심부름부터 호출용 전자 팔찌 사용까지, 노예 부리듯 인권침해를 일삼았음을 인권센터에 알려왔다. 군내 인권침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비전투병을 대상으로 한 ‘갑질’은 최근 몇 년 사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전투병에 비해 안전하고 여유롭게 복무할 수 있으리란 통념과 달리, 비전투병 역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적 업무와 협박까지…이러려고 군대 왔나 자괴감 들어

  박찬주 전 대장의 관사와 집무실에서 근무한 공관병, 조리병, 보좌관들은 관사 관리와 사령관 보좌 등의 주어진 업무를 벗어나 사적인 업무에 동원됐다. 그들은 대장 가족의 빨래와 다림질, 냉장고 관리 등 집안일을 도맡았으며, 박 전 대장의 일과에 맞춰 생활하느라 장시간 근무에 시달렸다. 전화나 인터넷 사용은 물론 외출과 외박까지 통제받았으며, 근무 시 호출벨과 연결된 전자팔찌를 착용해야 했다. 박 전 대장의 부인 전 씨는 병사가 호출에 늦게 응할 경우 “한 번만 더 늦으면 영창에 보내겠다”며 협박도 했다. 박 전 대장이 육군참모차장으로 복무하던 2015년에는 부인 전 씨로 인한 스트레스 끝에 한 공관병이 자살을 시도했고, 또 다른 공관병은 공관을 뛰쳐나가 처벌 차원에서 최전방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폭로가 이어지자 군 검찰은 8월 4일 박찬주 전 대장을 형사입건했다. 7일에는 전 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됐다. 박 전 대장은 발 빠르게 전역을 지원했지만 국방부는 ‘정책연수’ 발령을 내려 현역 신분을 유지시켰다. 박 전 대장이 전역하게 되면 군 검찰 측 수사를 종료해야 하고, 민간검찰로는 정확한 수사에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박 전 대장은 8월 8일 군 검찰에 소환돼 16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군 검찰은 9일 박 전 대장이 쓰던 공관과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공관병들을 전수조사한 후 박 전 대장을 재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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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연합뉴스



  국방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전투병력 운영 실태에 관해 8월 4일부터 11일까지 7일 동안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공관병은 113명으로 전체 정원 198명 중 약 57%만 운영되고 있으며, 대다수가 육군으로 복무하고 있다. 또한 4개 부대에서 공관병을 대상으로 불합리한 업무 지시 및 질책이 이뤄지고 있었으며, 공관 4곳에서는 호출벨이 사용되고 있었다. 텃밭 관리나 가축 사육을 담당하는 공관병도 있었다.

  공관병, 운전병 등 비전투병에 대한 간부의 사적업무지시는 이전에도 여러 번 문제가 돼왔다. 2015년에는 최차규 전 공군참모총장의 아들이 클럽에 가기 위해 관용차와 운전병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샀다. 문병호 전 제39사단장은 자정에 만취한 채 들어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려올 것을 지시하고, 대화 도중 뺨을 때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지난 7월 보직해임 됐다. 그 밖에도 문 전 소장은 당번병에게 자신의 대학원 입학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라고 지시하거나, 사적인 일정에 운전병을 부리는 등 수하의 비전투병들을 수시로 부적절하게 동원해왔다.


“군내의 상식은 사회의 상식과 다르다”

  비전투병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병력을 의미하며, 공관병을 비롯해 여러 보직이 있다. 공관병은 고위 지휘관 숙소인 공관에 함께 거주하며 공관을 관리하거나, 지휘관 지시에 따르는 임무를 수행한다. 당번병은 지휘관 사무실 옆방에서 심부름이나 전령 업무를 수행한다. 이외에도 상관이나 그 가족의 스포츠 교습을 담당하는 ‘테니스병’과 ‘골프병’이 있지만, 공식 군 편제에는 없는 보직이다. 이번 전수조사에 따르면 현재 테니스병 육군 24명, 골프병 육·해·공군 각각 7명, 6명, 22명이 복무하고 있다. 간부 자녀들을 주로 가르치는 ‘과외병’도 대표적인 비전투병 중 하나다.

  공관병뿐 아니라 당번병, 과외병 등 여타 비전투병으로 복무했던 이들 역시 상관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공관병은 ‘솔거노비’, 당번병은 ‘외거노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년 정도 사단장의 당번병으로 근무했다는 이상원(경제 13) 씨는 고학력자 위주로 미리 당번병 후보 명단이 추려져있었고, 훈련소 수료 이후 면접을 통해 당번병이 됐다고 밝혔다. 이 씨 역시 상관으로부터 사적업무를 지시받으며 수치감을 느낀 적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번병의 업무는 ‘뒤치다꺼리’가 전부라며 “일반적으로 사적 업무라고 간주될 만한 일도 군대에서는 공적 업무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이번 사태에서 문제로 지적된 사안들 중 다수가 자신의 군복무 당시 자연스럽게 이뤄졌으며, 이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과외병이었던 정민준 씨(가명)는 군 복지시설에서 복무하며 장교 및 부사관 자녀들뿐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의 자녀에게도 과외를 해줬다. 정 씨는 행정상 파견병 신분으로 연대 본부중대에서 생활했다. 그는 “소속과 생활 공간이 달라 각종 부대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고, 명확한 상관이 없어 간부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8월 17일 국방부가 공관병 전면폐지를 포함한 비전투병 문제 개선방안을 국무총리실에 보고했다고 알려졌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상담지원간사는 “국방 수호라는 군의 목적에서 벗어난 공관병·테니스병·골프병 등은 당장 없어져야 한다”며, 필요시 간부 개인의 사비로 민간에서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리실은 국방부가 제출한 방안과 외교부, 경찰청 등의 대책을 고려한 후 종합적인 정부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비전투병 전반을 폐지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정민준 씨는 “벽지에 배치되는 군인의 자녀에게 교육기회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과외병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관병 폐지는 비전투병 대상의 인권침해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을까. 김형남 간사는 이번 공관병 갑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하급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간사는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복무 환경도 문제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박 전 대장 등 가해자로 지목된 간부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군이 인권침해 사안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데 있어 한계를 보여왔다”며, 군 외부에서 내부를 감찰하는 군인권보호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상원 씨는 상명하복의 문화에서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군 간부가 먼저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파견된 병사에게 온당한 업무 지시와 존중이 이뤄지는 군대문화 정착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