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특집
구치소에서 장애 인권을 외치다 장애인권운동가의 노역투쟁과 구치소의 현실
등록일 2017.09.04 15:48l최종 업데이트 2017.09.09 05:56l 한지민(jmhan111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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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옥순 사무총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공동행동)’ 이형숙 집행위원장, 이경호 전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 대표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장애인권운동 중 선고받은 벌금형에 저항하며 노역을 자진 선택한 것이다. 형법 제69조는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해 작업에 복무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 활동가는 장애등급제 희생자 추모행사, 광화문농성 3주년 행사, 의정부 시장실 점거 등에 참여해 각각 300만 원, 100만 원, 9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구치소 내 열악한 시설과 차별적인 대우를 견디다 못해 예정된 노역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구치소를 나와야 했다. 이경호 씨는 수감 이틀 만인 19일에, 이형숙 씨와 박옥순 씨는 24일에 출소했고, 모금 운동을 통해 모인 돈으로 남은 벌금을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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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박옥순 사무총장, 이경호 전 대표, 이형숙 집행위원장이 장애인권운동 중 선고받은 벌금형에 저항하며 자진노역을 선택했다. ⓒ비마이너



4번째 노역투쟁··· 경제적 의미 그 이상

  장애인권운동가들의 노역투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12월 최용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한 중증장애인활동가 8명은 장애등급제 폐지와 현병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애등급심사센터와 인권위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법원은 그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30-12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들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고액의 벌금을 납부하기 어려운 사람도, 선고의 부당함에 반발해 벌금을 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활동가들은 벌금을 내지 않아 지명수배 대상이 됐고, 결국 2012년 8월 검찰에 자진 출두해 노역 의사를 밝혔다. 2014년 3월에는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자진해 노역을 선택했다. 박 대표는 2012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화재로 사망한 장애인권운동가 故김주영 씨의 노제를 지내던 중 차선을 넘어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015년 12월에는 이형숙 집행위원장 등 3명이 벌금 대신 노역을 선택하며 수원구치소에 수감됐다. 2013년 용인시의 장애인 자립생활 예산 폐기에 항의하며 용인시청 청사 진입을 시도해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였다.
 
  어떤 이유로 장애인권운동가들은 노역을 선택할까. 우선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활동가에게 벌금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형숙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우리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소위 ‘벌금폭탄’을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등록 장애인 16.9%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다. 또한 조사 직전 1개월의 장애인 개인의 평균 수입액은 96만 3천 원으로 나타났다.

  벌금을 내기 여의치 않은 경우, 벌금형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노역장 복무만 있는 건 아니다.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집행에 관한 특례법(특례법)’에 따르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미납자는 노역장 복무를 사회봉사로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사회봉사를 신청하면 기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5년 이형숙 집행위원장은 1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지난 6월 의정부 장차연 소속 활동가 3명 역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봉사 신청이 기각됐다. 특례법은 질병 등의 사유로 사회봉사를 이행하기에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회봉사를 불허하고 있지만, 불허 사유 중 장애는 없다. 이 집행위원장은 “노인정에서 말벗하기, 책 읽어주기 등 장애인도 수행할 수 있는 활동을 마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전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며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장애인권운동가들은 인권을 위한 정당한 요구가 탄압받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도 노역투쟁을 선택한다. 박경석 대표는 노역투쟁에 대해 “단순히 벌금 문제를 해결하는 일 이상의 사회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가는 잘못된 제도와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는 배제한 채 단편적 행위에 대한 처벌만 거듭한다”며 장애인 활동가들이 범법 행위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쟁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작게는 금전 문제를 해결하고, 크게는 장애인권 문제에 대한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노역투쟁의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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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두부를 먹는 이형숙 집행위원장과 박옥순 사무총장 ⓒ비마이너



개선되지 않는 구치소 내 차별적인 환경

  많은 장애인권운동가들이 노역투쟁을 이어가지만,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첫 번째 난관은 노역을 선택한 활동가들이 구치소를 향하는 길에서 시작된다. 지난 7월 박옥순, 이형숙, 이경호 세 활동가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아 지명수배되던 중 자진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찾아갔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이유로 구치소로 가기 전 4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구치소의 시설과 활동가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차별적이었다. 활동가들이 머문 서울구치소의 경우 미결수는 1층에, 기결수는 3층에 유치된다. 하지만 구치소 내 엘리베이터가 없어 이형숙 집행위원장은 3층이 아닌 1층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학창시절부터 동일한 이유로 늘 1층에 머물러야 했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상처가 있을 수도 있는 장애인을 조금도 배려하지 못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휠체어 반입도 금지됐다. 이 집행위원장은 “구치소 내 의무관에게 전동휠체어 반입을 요청하자,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치소에서 고생하려고 들어온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구치소 내 차별적 대우를 힐난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휠체어가 필수적이지만, 휠체어 반입 금지에 따라 그의 이동권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구치소 내에서는 자신이 사용한 식기를 스스로 설거지해야 하는데 싱크대가 입식인 탓에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화장실에 설치된 간이 손잡이는 규격에 맞지 않아 사용이 힘들었고, 식사마저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인권위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야 전동휠체어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이형숙 집행위원장은 2015년 노역을 했던 경험과 비교했을 때 현재의 구치소 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박경석 대표 역시 2014년의 노역경험과 최근의 사례를 비교하며 같은 평을 내렸다. 2014년 당시 그는 토요일에 수감됐는데, 편의 제공을 허가할 의사가 없어 어떤 편의시설도 제공받지 못한 채 주말동안 방치돼야만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인권위에 제소했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 인권위가 긴급점검을 하고 나서야 욕창 방지를 위한 에어매트, 화장실 내 이동 편의시설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박 대표는 “구치소 내 장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는 전혀 없고, 장애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단편적인 대처가 이뤄진다”고 평가했다.


근본적인 사회구조 개선이 가장 절실해

  이형숙 집행위원장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인권을 침해받아도 되는 건 아니”라며 구치소에 들어간 장애인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치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사 과정과 구치소 수감 과정에서 겪은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지적하며, 공공기관 직원들이 기본적인 인권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경석 대표 역시 판결부터 노역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규정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노역밖에 없는 장애인에게 구치소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조차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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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숙 집행위원장은 구치소 내의 장애인에게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권운동가들은 “결국 잘못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장연 문애린 활동가는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질서에 부당함을 느끼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며, 투쟁의 이유는 고려하지 않고 투쟁 과정에 발생하는 불법행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구치소 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노역투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장애인권운동, 다 끝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