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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를 탄 머글, 운동장 위의 마법사가 되다
등록일 2017.09.04 21:08l최종 업데이트 2017.09.13 18:24l 최영락 기자(cyoungrak976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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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자루 올려(Brooms up)!"


  심판이 소리를 지르자 앉아있던 선수들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리 사이에 낀 빗자루, 경기장 양 끝에 세워진 동그란 링, 끈으로 동여맨 머리. 훈련 중인 서울대 퀴디치팀의 모습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여름밤, 열띤 훈련은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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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밤, 서울대학교 퀴디치팀은 대운동장에서 전술 훈련을 하는 중이다.


  퀴디치는 소설 《해리포터》에 나온 가상의 스포츠로, 마법사가 빗자루에 올라타 공을 던져 득점을 하는 운동이다. 미국 대학가에서 이를 본뜬 스포츠 경기를 진행하면서, 마법사가 아닌 ‘머글’들의 퀴디치가 만들어졌다. 선수들은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없으니 빗자루를 잡고다리 사이에 낀 채 달리며, 한 팀당 7명의 선수가 출전해 양 팀이 맞붙는다. 한 팀은 골을 넣는 ‘추격꾼’과 공을 던져 그를 막는 ‘몰이꾼’, 골대 앞을 지키는 ‘파수꾼’, 마지막으로 ‘스니치’를 잡아 큰 점수를 낼 수 있는 ‘수색꾼’으로 구성된다. 경기는 수색꾼이 등 뒤에 작은 공을매단 스니치 역할의 선수를 잡으면 끝이 난다. 퀴디치팀 길상규 코치는 “빗자루를 타고 하는운동은 퀴디치밖에 없다”며 “퀴디치는 수비 면에서는 럭비, 전술 면에서는 축구, 손을 쓴다는 점에서는 핸드볼에 가까운 매력적인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퀴디치팀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 국적의 구성원들로 꾸려졌다. 이러한 다양성의 근간에는 퀴디치만의 독특한 규정인 ‘젠더 룰(Gender Rule)'이 있다. 젠더 룰이란 한 팀에 반드시 남성과 여성 모두가 포함돼야 한다는 규정이다. 선수들은 젠더 룰 덕분에 몸을 부딪치는 운동도 남녀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천수안(컴퓨터공학 14) 씨는 “남녀가 함께 경기를 즐김으로써 여성도 당당하게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며 젠더 룰의 가치를 강조했다.


  서울대 퀴디치팀은 한국 최초이자 유일의 퀴디치팀으로 성과도, 포부도 크다. 2017 아시안컵에서 2위에 올랐고, 내년 퀴디치 월드컵에서는 2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합을 맞출 상대팀이 없어 훈련은 녹록지 않다. 미국, 영국 및 유럽 등지에서는 퀴디치가 보편화됐지만, 한국에서는 서울대가 최초로 팀을 꾸린 이후 정식 팀을 찾아보기 어렵다. 퀴디치팀 주장 김수혁(기계항공 15) 씨는 “국내에서는 함께 경기할 팀을 구할 수 없어 주로 팀 내 자체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지하게 경기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퀴디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다짐을 전했다.


  훈련 내내 선수들은 기분 좋은 땀 냄새와 웃음으로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퀴디치팀은 학교에 생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천수안 씨의 말이 와닿았다. 이들이 꿋꿋이 흘리는 땀방울이야말로 운동장 위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비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