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기고·칼럼
자리를 지키는 일
등록일 2017.09.06 14:19l최종 업데이트 2017.09.06 14:20l 박윤경 편집장(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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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쌀쌀해 이제는 얇은 가디건을 챙겨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43호인 “올 여름도 무지개가 뜰 거예요” 를 발행한 지 엊그제같은데, 올 가을에도 <서울대저널>이 ‘또’ 나왔습니다.


  발행을 준비하며 힘이 빠질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가장 강한 버팀목이 돼줬던 것들은 잘 보고 있다는 응원도, 기사에 대한 칭찬도 아니었습니다. 무심하게 “어쨌든 발행되긴 할 거 아냐?”라고 받아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곤 했습니다. 모든 분들의 사랑을 받진 못하더라도, 엄청난 독자 수를 자랑하진 않아도, 어찌됐든 많은 분들이 <서울대저널>은 올 여름도, 올 가을도, 올 겨울에도 배포될 언론이라고 생각해주신다는 것. <서울대저널>이 학내 자치언론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내서 발행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매 계절 <서울대저널>을 발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기사 내용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도, 재정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는 이전 편집장의 말이 와닿을 때가 많았습니다. 


  <서울대저널>은 지난 3월 전직 구성원에게 영업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받은 바 있습니다. <서울대저널>의 광고수주 업무를 담당했던 A 업체가 동문들께 연락드리는 과정에서 학생 기자로 자신을 소개했고, <서울대저널>의 데스크는 이에 동조하거나 적극 가담했다는 요지였습니다. 저와 신일식 전 편집장은 사기, 공문서부정행사, 개인정보보호법위반으로 고발됐고, 7월 18일 최종 각하됐다는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몇몇 동문 분들은 A 업체의 직원을 <서울대저널> 기자로 착각하셨을 수 있고, 저를 포함한 이전 데스크는 ‘재정상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시정을 요구해도 바뀌지 않더라’며 문제를 방관했습니다. 또 동문들과 독자 분들께 많은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저널>은 '완전무죄'였다고 밝힐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A 업체와의 계약이 중단되고, 143호는 남아있던 자금과 독자 여러분의 후원으로 발행할 수 있었지만, 이번 144호부터는 새로운 운영 방식을 찾아야 했습니다. 기자들이 영업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봤으나, 기사 작성에 주력하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 업체와 만나본 결과, 한 인쇄소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인쇄소가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영업 업무를 수행하며 <서울대저널>의 인쇄를 보장하고, 일정의 활동비를 <서울대저널>에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계약서에는 영업 업무 수행 시 <서울대저널> 구성원으로 소개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명시했고, 기존에 외주로 맡기던 디자인 업무는 재정상 <서울대저널>이 자체 수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당 방식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는 지켜봐야할 듯합니다. 막막하다 생각될 때도 있지만, “창간된 이래로 한 번도 재정이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OB들의 말을 들으면 또 그러려니 합니다. 매번 불안정했다면서 어쨌거나 오랜 시간 학내 자치언론의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학기 거쳐가는 편집장에 불과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일에 저도, <서울대저널>의 모든 기자와 PD들도 미약한 힘을 더하고자 합니다. 


  조금 억지일 수는 있겠으나, 생각해보면 <서울대저널>은 항상 자리를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 자리에 항상 있지만 누구도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지만 알리고 외쳐야만 새삼 그 자리를 확인받을 수 있는 것들. 이번 <서울대저널>도 ‘자리를 지키는 일’에 대한 보도를 담았습니다. 커버스토리인 장애인권운동과 특집 주제인 생리, 공관병과 MBC, 학생징계 투쟁과 사회학과 H 교수 등. 학내 자치언론의 자리를 지키며 독자 여러분과 ‘자리를 지키는 일’에 대해 계속해 고민하는 <서울대저널>이 되겠습니다. 푸념에 가까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