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 특집
발걸음 돌린 피해자, 인권센터가 다시 잡으려면 세심한 피해자 대응과 폐쇄적 구조 개선이 과제
등록일 2017.10.19 17:30l최종 업데이트 2017.10.23 10:50l 김종현 기자(akdtkd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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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주간 무산으로 촉발된 인권센터 개혁 여론이 여느 때보다 강하다. 2012년, 기존 성희롱·성폭력상담소가 확장돼 설립된 인권센터는 그동안 학내 구성원 인권 보호에 앞장서왔다. 많은 학생들은 인권침해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인권센터를 떠올린다. 2016년만 해도 2,200여 건의 상담이 인권센터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인권센터는 교수-학생 간 사안에 교수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피해자 입장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대저널〉은 인권센터 신고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꼈던 학생들에게 제보를 요청했다. 이들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인권센터에서 희망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러지 못했던 피해자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왜 더 이상 인권센터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일까.



피해자에게 상처 줬던 조사와 사후조치


  제보자들이 인권센터에 등을 돌리게 된 배경으로는, 자신의 입장이 사건 처리에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느낀 측면이 가장 컸다. 여러 제보자들은 인권센터가 사건 해결에 미흡했거나, 피해자 입장을 등한시한 채 인권센터의 판단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 처리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인권센터가 조사·심의에 속도를 내지 않아 피해자의 감정소모가 커지고, 심지어는 가해자에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기도 했다. 한 제보에 따르면 피해자가 최초로 신고한 지 반년이 넘어서야 인권센터는 최종결정을 발표했다. 그 결과 가해자에게 수 일 간의 정학처분을 내릴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가해자의 졸업으로 징계가 불가능해졌고, 가해자는 유료 인권교육만을 이수했다. 피해자 요구와 달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늦어져, 신고 3개월 후 열린 단체 행사에 가해자는 참여하고, 피해자는 불참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해당 제보자는 “사건이 시급히 해결되지 못해 피해자가 먼저 집단을 나온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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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8동 화장실에 부착된 안내스티커



  하지만 접수되는 사건에 비해 인권센터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인력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인권센터는 사건을 접수 순서대로 처리하되, 사안의 시급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조정하기도 한다. 인권센터 전문위원 측은 “피해자 보호가 위급한 사건의 경우 공간분리 등 임시보호 조치를 먼저 하고, 사건을 신속히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몇몇 사건은 불가피하게 뒤로 밀린다. 또한 인권센터가 사법기관이 아니라 ‘권고기관’이기에 갖는 한계도 있다. 참고인 혹은 가해자가 조사에 비협조적일 경우, 인권센터는 이들을 강제로 불러들일 수 없어 종종 조사가 더뎌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은 피해자가 당한 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전락시켜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앞선 두 제보자에 따르면, 사건의 피해자는 인권센터로부터 각각 ‘더 시급한 사건들이 밀려 있어 처리가 늦어졌다’, ‘이 사건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본 사건을 다룰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해명을 들은 바 있다. 제보자는 “인권센터가 ‘처리해야 할 서류’로 (자신의) 사건을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사건 처리가 지연돼 가해자에게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건 우선순위를 당초 잘못 설정했다는 방증이 된다.


  피해자와 인권센터 간 의견불일치는 가해자 처벌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더 두드러졌다. 인권센터는 가해자 징계 등의 조치를 정하기 위해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지만, 최종 결정에 피해자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인권센터 전문위원 측은 “피해자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나, 피해자의 요구가 가해 행위에 비해 다소 과중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인권센터가 가해자 처벌에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문제는 인권센터가 피해자를 설득하는 방법과 맥락이 당사자에겐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제보는 소규모 집단 내에서 구성원 여럿을 대상으로 성희롱이 발생했었다며, “인권센터는 (피해자 요구보다 축소된) 가해자 처분 조치를 따르도록 설득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자기객관화’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해 재발을 우려한 피해자의 입장은 인권센터의 중재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제보자는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다시 접촉할 자신이 없었지만, 인권센터에겐 공간분리 종료 후 피해를 방지할 대책이 부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인권센터는 ‘성폭행과 비교해 사건(성희롱)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설득을 계속했고, 중재안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피해자들에게 이는 2차 가해로 다가왔다. 끝내 피해자들이 인권센터와 연락을 중단해, 중재 절차는 잠정 보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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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당사자가 작성하는 서약서 중 '당사자의 권리' 부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건을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권센터의 대응에 따라 피해자의 신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요구를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어도, 인권기관은 그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대신 지속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내며 최선의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부소장은 “피해자의 분노와 가해자 처벌 요구는 인권에 대한 요구다. 이를 마냥 억제해야 한다는 응답은 피해자를 돕는 데 유익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권센터 전문위원 측은 “피해자의 감정을 고려하려 최대한 노력하지만 당사자는 미흡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를 유념하며 전문위원들도 지속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물고 물렸던 진술, 그러나 반론 못한 신고인


  피해자에게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아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1월 큰 논란을 일으킨 인문대 ‘스캔노예 사건’ 얘기다. ‘스캔노예 사건’의 신고인 A 씨는 인권센터가 본인의 진술과 배치되는 참고인들의 진술을 교차검증 없이 증거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그와 함께 스캔 작업을 수행한 참고인들은 ‘A 씨를 제외한 인원들은 스캔 작업을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 반면 A 씨는 가해 교수가 자료 공유가 아닌 단순 개인 목적으로 제자들에게 스캔을 강요했으며, 본인이 함께 강요받은 학생들을 대표해 교수에게 항의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인권센터 심의위원회는 참고인 진술을 근거로 스캔 작업이 참여인원 모두에게 부당하게 강제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함께 스캔 작업을 수행했던 B 씨는 참고인들의 진술이 당시 상황과 모순된다고 증언했다. 인권센터 조사 당시 B 씨는 개인적인 이유로 참고인으로서 진술하길 거부했다. B 씨는 “교수가 스캔 결과물을 (스캔한 학생들에게) 직접 공유한 적이 없다. 그래서 교수가 모르게 필요한 스캔자료를 반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와 A 씨는 학계 진출을 원했기 때문에 (스캔 작업 동원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A 씨는 조사 당시 참고인들의 반론 내용을 알 수 있었다면 그에 대해 재반론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센터는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참고인의 진술 원본을 서로에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정제되지 않은 진술을 상호 공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신원노출과 2차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엇갈리는 진술이 나왔을 때엔 정확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김혜정 부소장은 “피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센터 측은 “조사 과정에서 재질문과 재진술, 추가진술의 기회를 제공해 당사자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다. 한편 A 씨는 “인권센터는 최종권고문 결정 뒤에도 신고인이 이의제기할 창구가 열려있다고 하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전문위원은 나에게 재심청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열린’ 인권센터로


  피해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권센터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할까. 먼저 인권센터가 사건 해결 가능성과 한계 모두를 설명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혜정 부소장은 “인권센터가 피해자를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고, 어디부턴 도울 수 없는지 명확히 밝혀줘야 피해자도 신고를 통해 거두려는 목표를 확실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가 지닌 제도적 한계를 피해자 또한 인식함으로써 불필요한 기대와 실망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 및 조사인력이 고질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또한 해결해야 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현재 4명이다. 인권 문제 해결에는 관련자에 대한 지속적인 연락과 사후조치가 수반되며, 당사자의 감정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업무를 과중하게 만든다. 2012년 인권센터 설립 당시부터 ‘(사건 담당) 전문위원이 4명밖에 되지 않아 상담 업무를 담당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대학신문〉, “서울대 인권센터 본격 업무 시작”). ‘인권가이드라인 특별위원회’ 방승현(지리 14) 위원은 “학내 구성원 인권보호라는 설립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인권센터에 대한 지원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밀유지 원칙하에 심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관행도 한편으로는 인권센터의 대외적 신뢰도를 저해할 수 있다. 현재 인권센터는 개별 사안의 최종결정문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학이 상대적으로 좁은 공동체다 보니 작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당사자가 특정되는 위험을 방지하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건이 공개되지 않아 학내 구성원이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스캔노예 사건’처럼 크게 공론화된 사건에 대해서도, 비당사자로서는 인권센터 조사 결과와 최종결정 근거를 알 방도가 없다.


  일부 사건을 익명으로, 또는 유형화해 공개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김혜정 부소장은 “인권침해 사례를 학내 구성원이 공유함으로써, 공동체가 인권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실증적인 사례를 남겨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당사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철저한 익명화가 필요하다. “해당 인권침해 사안의 골자와, 인권센터의 판단 기준 및 결정 내용이 공개의 핵심”이라고 김 부소장은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특별시 등에서는 인권침해 사례 일부를 익명화해 공개하고, 사건 처리 사례들을 담은 결정례집을 발간하기도 한다. 방승현 위원도 “인권센터가 (인권문제 해결에) 독점적 권위를 가지는 구조에서 벗어나, 사건 해석과 징계 기준이 학내 구성원의 공론화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 위원은 그럼으로써 “개별 사건의 특수한 맥락이 고려될 수 있고, 구성원 개개인이 인권 개념을 체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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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사건 내용을 익명화해 공개하고,
인권위의 입장을 밝힌다. ⓒ국가인권위원회



  한 제보자는 “사건이 끝나고 보니 인권센터와 싸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김혜정 부소장은 “대학 인권센터는 학내 구성원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상처를 보듬고 지지해주리라 믿었던 인권센터에서, 실망과 분노를 안고 떠난 피해자들이 있었다. 학내 구성원이 진정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인지 인권센터 스스로 물을 차례다.



학생이 인권센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