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 특집
논란의 인권주간, 왜 취소될 수밖에 없었나 인권센터,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에 미온적이라는 지적 제기돼
등록일 2017.10.20 22:30l최종 업데이트 2017.10.23 10:51l 최영락 기자(cyoungrak976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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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서울대 축제에서는 인권주간을 만날 수 없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에 대한 인권센터의 일방적 ‘퇴출’ 통보에 부당함을 느낀 학생들이 인권주간 참여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5회 차를 맞이하는 인권주간은 서울대 축제 기간에 인권센터가 운영하는 행사로, 인권부스, 영화제, 인권행진 등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이 중 인권주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권부스는 학생 단체 혹은 개인이 노동, 성소수자, 장애인권 등 다양한 주제의 부스를 직접 기획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학소위는 교수-학생 간 권력관계에 따른 인권침해를 주제로 부스를 기획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인권침해 경험을 제보하면, 이를 익명으로 각색해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학소위의 인권주간 퇴출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기획 초기부터 인권센터는 학소위의 기획안에 2차적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학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을 여과 없이 공개한다면 사건 당사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인권주간 기획단원은 “학소위 기획안이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인권센터가 아니라 인권주간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서 먼저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학소위는 인권센터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여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해 익명제보 형식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인권센터는 ‘익명제보’라는 표현이 고발성이 짙다며 단어 순화를 요청했고, 학소위는 ‘고구마 감별사’ 등으로 단어를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여 동안 쌓인 의견차는 해소되지 못했고, 결국 9월 14일 인권센터는 면담 자리에서 학소위에게 “부스 운영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결정을 알렸다. 기획안 수정에 대한 조언을 주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다. 김훈섭(사회복지 16) 학소위 위원장은 “수차례의 수정 요구를 전부 반영했음에도, 인권센터 측은 일방적으로 퇴출을 통보했다. 그 자리에서 퇴출 이유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학소위는 교내 성차별 문제를 다룬 팀 역시 학소위와 동일하게 익명제보와 사례 전시 형식을 기획했다며, 다른 참여 부스와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인권센터는 성차별과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는 다른 층위의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인권센터가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기 꺼려한다는 의심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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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터널에 인권센터의 학소위 '퇴출' 통보를 규탄하는 자보가 붙어있다. ⓒ김종현 사진기자      



  면담 다음날인 9월 15일, 학소위는 인권센터에 공개질의서를 보내 갑작스런 통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18일 인권센터는 “학소위가 제안한 기획서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노출했다”며 “문화행사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없도록 신중을 기하는 것은 센터의 중요한 의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학소위 측은 인권센터의 답변이 질의서에서 제시한 5가지 의문 중 어떤 것에도 답변을 주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학소위가 인권주간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며, 다른 인권주간 참가 단체들도 보이콧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인권주간 기획회의가 예정돼있던 19일, ‘인권가이드라인 특별위원회’, 장애인권 동아리 ‘턴투에이블’ 등 다수 단체는 인권주간 기획단 단체 메신저 방에서 퇴장한 후 기획회의에 불참했다. 이날 탈퇴하지 않았던 노동팀도 기획회의에 참여해 질의를 마치고 난 후 참여 중단을 결정했다. 이들은 인권센터가 회의 기간 동안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를 다루기 꺼려했으며, 참가 부스와 불통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최종적으로 인권주간 참가 부스 6팀 중 5팀이, 실무팀 3팀 중 2팀이 인권주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9일 인권센터는 인권주간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대신 인권주간에서 탈퇴한 단체들은 10월 11·12일 양일간 자체적으로 인권문화제와 인권 행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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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주간이 열리기로 예정돼있었던 10월 11-12일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꾸린 인권문화제가 열렸다. ⓒ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 사안,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기계적 평등’ 고수하지 말아야


  반면 인권센터 측은 “학소위 기획안의 주제나 내용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은 “학소위가 제보를 받아 모은 정보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공개할지 우려됐고, 대학 공동체 내에서 교수의 인권은 깎아내리면서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권센터는 학소위를 비롯해 인권주간 보이콧에 나섰던 단체들과 추후 소통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9월 27일 학소위와 인권가이드라인특별위원회 등 인권주간 탈퇴를 선언했던 일부 단체들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관악 여성주의학회 달’ 등이 모여 ‘서울대학교 학생인권을 위한 연대체(연대체)’가 결성됐다. 연대체는 이번 학소위 ‘퇴출’ 건뿐만 아니라, 지난 ‘인문대 팔만대장경 사건’ 등 학내 인권침해 사안에 인권센터가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는 자보를 작성했다. 연대체는 해당 자보에서 “인권센터가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공정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수와 학생 간 권력관계는 애초에 교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중재자인 인권센터가 기계적 평등을 고수해 실질적인 공정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권센터가 교수와 학생 간 권력관계를 간과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최근 있었던 사회학과 H 교수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속적인 폭언과 성희롱 등으로 학생인권을 침해해온 H 교수에게 인권센터는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한 바 있다. 백인범(사회 16) ‘H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 공동대표는 “이 권고대로라면 H 교수가 다시 강단으로 돌아오게 된다”며 “인권센터가 권력 불평등에 기초한 폭력과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다. 인권센터는 지난 8월 <대학신문> 전(前) 편집진에게 인권교육 이수를 권고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 3월 <대학신문>은 임경훈(정치외교학부) 전 주간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하며 1면을 백지로 발행했고, 이에 임 전 주간은 “학생기자단이 보낸 항의서가 사실관계 왜곡을 통해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들을 인권센터에 제소한 바 있다. 이경인(국문 15) <대학신문> 편집장은 “인권센터 권고 중에는 전(前) 편집진의 사과문 작성을 비롯해, <대학신문>이 언론 매체라는 점을 간과한 듯한 내용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가이드라인 특별위원회 방승현(지리 14) 위원은 “명예훼손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상대적 약자인 학생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 징계를 교수가 정한다? 심의 과정에 학생 참여 보장해야


  인권센터의 심의·의결 과정에 학생 참여를 보장해 공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인권센터 운영위원회(운영위)’는 15명 이내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임명직 2명은 학생위원(학부생 1명, 대학원생 1명)이다. 학생 참여를 비중 있게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밖에 당연직 6명은 전부 교수와 본부 보직자이며 학생위원에게 주어진 역할도 회계·예산 심의 등 행정적인 측면에 집중돼있다. 현 운영위 학생위원인 김민석(정치외교 14) 씨는 “개별 사안에 대한 학생 여론을 전달하기보다는 한 학기 한 번 열리는 운영위에서 큰 틀의 사업과 운영 보고만을 받으니, 명목상의 참여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김성민(생명과학 박사과정) 운영위원도 “최근 구체적인 사안에 학생위원이 참여한 적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건조사를 심의하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심의위원회’에는 학생대표자의 참여가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김성민 위원은 “대신 전문위원이나 실무자들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자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인권센터의 심의·의결 과정에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학교도 있다. 고려대 인권센터 조산새 연구원은 “심의위원회에 학생위원 2명을 둬 징계 요청의 심의권과 의결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실제로 교수-학생 간 인권침해 사안에서 이들이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국대, 중앙대 인권센터 측도 심의·의결을 담당하는 위원회에 학생위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H 교수 사건’ 대응에 참여했던 ‘사회학과 대학원 대책위원회’ 소속 김일환(사회학과 박사과정) 씨는 “서울대 인권센터 심의위원회는 전문가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학생들이 알기 어려운 구조다. 교수 징계까지도 교수들이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겠느냐”며 최종 결정에 대한 신뢰 및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위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생들의 참여 요구에 대해 인권센터 원경주 전문위원은 “인권감수성이 있는 전문가 및 교수로 심의위원회를 매 건마다 새롭게 꾸리고 있고, 조사 과정에서도 학생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학생대표를 심의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은 비밀유지와 개인의 부담감 등을 고려할 때 우려가 된다”고 밝혔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학생참여가 보장된 타 기관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권센터는 여전히 학내 인권의 중요한 보루이다. 김일환 씨는 “개별 사건에서 아쉬움은 남으나, 인권센터가 학내 인권실태 조사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등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구조적인 개선에 대해서는 인권센터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권센터가 다시금 학생들의 신임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학생이 인권센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