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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부시 되는 성?
등록일 2017.10.22 13:08l최종 업데이트 2017.10.22 13:08l 정영진 기자(dorlth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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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용품점이라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인적이 드문 후미진 뒷골목, 단색의 간판에 간결한 글씨체의 ‘성인용품’, 어두침침한 가게 내부 붉은 빛 조명 아래의 노골적인 성기 모양의 제품들, 가게 속 은밀하게 팔리던 성인용품. 기자에게 성인용품점은 흥미로운 공간이지만 방문하고 싶지는 않던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 취재를 통해 방문한 가게들은 기자의 예상과 달랐다. 큰 대로변에 위치하여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내부, 재미있게 성을 표현한 그림, 명품을 연상시키는 성인용품. 몇몇 손님들은 성인용품점을 카페로 착각하며 들어오기도 했었다. 또한 성인용품점에서는 단순히 성인용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 피규어, 파티 용품 등을 판매하고 파티와 세미나를 열었다.


  이러한 성인용품점들은 궁극적으로 성인용품 시장의 양지화를 통해 성문화에 대한 인식개선을 목표로삼고 있었다. 기존의 남성중심의 성인용품 가게를 탈피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성인용품점을 만들고자 하였다. 사용자의 몸에 부담이 적고 순한 식물성 콘돔을 판매하였으며 가격표와 수입품들의 원산지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소비자를 안심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개인의 체형에 따라 적합한 성인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소비자가 직접 만들 수 있는 공방을 운영하였다. 이를 통해 개인이 주체가 되는 성생활을 지향하여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기자 본인도 촬영을 하며 처음 성인용품점을 방문했을 땐 살짝 민망했다. 그러나 겉으로 태연한 척하며 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취재를 진행했다. 취재를 하면서 달라져가는 성문화를 접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현재 성인용품과 관련된 사업은 ‘향락 산업’으로 지정되어 있어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의 초기 자본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성인용품점은 한국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특유의 터부시되는 문화로 인해 상권 분석을 무시하고 외진 곳에서 가게를 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특히 성인용품점 방문 후기나 성인용품 사용 후기 등의 동영상 조회수는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성에 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터부시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인가.


  성인용품점에서 진행하는 세미나에는 20, 30대 뿐만 아니라 60, 70대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세미나에 참가한 한 70대의 노인은 부인과 사별한 후 도구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며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기존의 성이 가족 구성과 직결되었다면 요즘에는 관계에서 얻는 성적 욕구와 개인 스스로 채우는 성적 욕구가 분리돼서 나타난다"고 설명하며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설명했다.


  처음엔 단순히 성인용품점의 양지화 현상에 흥미를 느껴 취재를 시작했지만, 취재를 할수록 성을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성과 관련된 사람들의 흥미와 욕구는 높은데도 불구하고 겉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양상에 대해 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의 변화로 접근하는 연구는 더욱 재미있었다. 단순히 열풍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취재를 통해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기자에게 이번 호를 준비하며 가장 값졌던 것 같다.